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변호사니까 믿었죠.”
최근 한 변호사와 관련한 피해 제보를 받으면서 여러 번 들었던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피해자들이 왜 그렇게 큰돈을 맡겼는지를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취재가 이어질수록 이 짧은 한마디가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들은 한 사람만 믿었던 것이 아니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믿었다.
오랜 공부를 했을 것이고, 엄격한 자격시험을 통과했을 것이며, 법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적어도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계약서의 작은 글씨를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복잡한 법률 절차를 알지 못해도 전문가가 알아서 제대로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사실 전문가란 그런 존재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프로페셔널(professional)’이라는 말의 뿌리를 따라가면 라틴어 profitērī에 닿는다. ‘공개적으로 선언하다’, ‘공언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후 일정한 지식과 훈련을 갖춘 전문 직업을 의미하는 말로 발전했다.
어원을 생각해 보면 ‘전문가’라는 이름에는 처음부터 공적인 성격이 들어 있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와 언론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의 이름 앞에 직함을 붙이는 순간 사실상 사회를 향해 하나의 선언을 하는 셈이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자격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기준과 책임을 지키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문가를 믿는다.
아픈 사람이 의사를 찾아가는 것은 의사의 개인적인 성품을 미리 알아서가 아니다. 법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것도 그 변호사와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재산을 회계사에게 맡기고, 중요한 거래를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 개인을 알기 전에 그 직업이 쌓아온 신뢰를 먼저 믿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전문가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남기는 상처는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클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다.
조금 거친 표현이지만 전문직 사회에도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한두 사람의 무책임한 행동과 발언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온 직업의 신뢰를 순식간에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한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면 사람들은 “그 변호사를 믿을 수 없다”에서 멈추지 않는다.
“변호사들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으로 번진다.
의사도, 회계사도,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한다. 의뢰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챙기는 변호사가 있고, 늦은 밤까지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있으며, 숫자 하나의 오류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장부를 들여다보는 회계사가 있다. 기사 한 줄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수없이 전화하는 기자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성실함이 수십 년에 걸쳐 한 직업의 신뢰를 만든다.
그런데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부정직한 행동, 무책임한 말 한마디면 충분할 때가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대가를 잘못한 당사자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얼마 전 한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열심히 일하는 대다수 변호사들이 있는데 일부 변호사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변호사 전체가 욕을 먹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누구의 것인가.
자격증을 가진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이름인지 모른다.
내 명함에 찍힌 ‘변호사’라는 세 글자는 나 혼자 만든 이름이 아니다. 앞선 수많은 법조인이 쌓아온 신뢰 위에서 사용하는 이름이다. ‘의사’도, ‘회계사’도, ‘언론인’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전문가에게는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직업의 이름을 지켜야 할 책임도 있다.
전문가에게 높은 윤리 기준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전문가는 일반인보다 많이 알고 있다. 정보의 차이가 있고 경험의 차이가 있다. 의뢰인은 전문가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간다. 바로 그 지식의 차이가 전문가에게 권한을 주고 신뢰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만큼 책임도 커야 한다.
전문지식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이 프로페셔널의 특권이어서는 안 된다. 그 지식 때문에 자신을 믿고 찾아온 사람에게 더 정직하고, 더 신중하고, 더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한마디를 다시 생각한다.
“변호사니까 믿었습니다.”
참 무거운 말이다.
그 말 속에는 돈을 맡겼다는 의미만 들어 있지 않다. 자신의 사업을, 가족을, 신분을, 때로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맡겼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사회적 자산이다.
자격증은 한 사람에게 전문가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 사회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바라볼 때마다 한 번쯤 그 이름의 무게를 생각했으면 한다.
전문가라는 이름은 특권이 아니라 신뢰이며, 그 신뢰를 지키겠다는 사회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