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양 차이는 거의 없어 … 죽·이유식처럼 곱게 갈 땐 벗기는 게 유리
냉장고 채소 칸에 넣어 둔 당근을 꺼낼 때마다 껍질을 벗겨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흙만 깨끗이 씻어내면 껍질째 먹어도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껍질을 벗기든 그대로 두든 영양 면에서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요리에 따라서는 껍질을 벗기는 편이 맛과 모양을 살리는 데 유리하다.
당근은 집에 두고 먹기 가장 편한 채소 가운데 하나다. 아삭한 식감에 쓰임새가 넓고, 냉장고에서도 오래 버틴다. 손질이 귀찮다면 마트에서 이미 껍질을 벗겨 파는 제품을 고르면 된다. 고민은 껍질이 그대로 붙은 당근을 한 봉지 사 왔을 때 시작된다.
■ 껍질째 먹으려면 솔로 문질러 씻어야
결론부터 말하면 당근 껍질을 반드시 벗길 필요는 없다. 실제로 껍질째 즐겨 먹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만 당근은 땅속에서 자라는 뿌리채소다. 껍질을 그대로 먹을 생각이라면 흐르는 물에 씻거나 솔로 문질러 흙을 말끔히 털어내야 한다. 부엌에 채소 전용 솔을 하나 마련해 두면 편리하다. 감자나 무 같은 다른 뿌리채소를 씻을 때도 두루 쓸 수 있다.
이는 당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농산물을 먹기 전에 깨끗이 씻는 습관은 식중독 같은 질병 위험을 낮추고 잔류 농약 노출도 줄여준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미 실천하고 있는 기본 수칙이기도 하다.
영양소는 껍질 유무와 관계없이 충분히 챙길 수 있다. 당근에는 식이섬유와 칼륨, 그리고 항산화 성분인 베타카로틴(beta carotene)이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몸속에서 비타민A로 바뀌어 눈 건강과 면역력 유지를 돕는다.
베타카로틴은 기름에 녹는 지용성 성분이다. 그래서 생으로 먹을 때보다 기름에 살짝 볶거나 익혀 먹을 때 몸에 더 잘 흡수된다. 열을 가하면 단단한 세포벽이 부드러워져 영양소가 빠져나오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당근을 식용유나 참기름에 볶아 반찬으로 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껍질을 벗길지 말지는 결국 개인 취향의 문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오히려 손질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당근을 멀리하는 쪽이 더 손해다. 껍질 벗기는 수고를 덜면 미 농무부(USDA)가 권장하는 하루 과일·채소 섭취량을 채우기도 한결 수월해진다.
■ 식감과 모양이 중요할 땐 벗겨야
그렇다고 필러가 아예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안전 문제와 별개로, 요리 관점에서는 껍질을 벗길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근 껍질은 속살과 식감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어떤 요리에 쓰느냐에 따라 껍질만 따로 도드라질 수 있다. 품종에 따라서는 껍질이 속살보다 질기거나 까끌까끌하고, 쓴맛이 나기도 한다.
찜 요리나 일부 생식 요리에는 껍질을 벗긴 당근이 잘 어울린다. 접시에 담았을 때 색과 식감을 고르게 맞추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다.
곱게 갈아야 하는 음식이라면 껍질을 벗기는 편이 낫다. 부드러운 죽이나 아기 이유식이 대표적이다. 껍질이 섞이면 질감이 거칠어질 수 있어서다.
■ 주스·오븐 구이엔 껍질째가 제격
반대로 껍질을 남겨 두는 편이 나은 요리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스와 오븐 구이다. 큼직하게 썰어 넣는 투박한 요리라면 껍질이 오히려 보기에도 좋고 먹는 재미를 더한다.
육수나 소스처럼 마지막에 체에 걸러내는 음식도 굳이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다. 어차피 건더기는 모두 걸러지기 때문이다.
겉면 상태를 보고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표면이 매끈해 솔로 쉽게 닦이는 당근이라면 국이나 볶음 요리에 껍질째 넣어도 충분하다. 껍질을 버리지 않으니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드는 것도 장점이다.
■ 벗긴 껍질, 디스포저에 넣으면 안 돼
껍질을 벗겼다면 뒤처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당근 껍질을 싱크대 음식물 분쇄기(디스포저)에 넣으면 배수관이 막힐 수 있다.
벗긴 껍질은 키친타월이나 비닐봉지에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버리면 뒷정리가 깔끔하다. 텃밭을 가꾸는 가정이라면 퇴비로 활용해도 좋다.
■ 잎은 떼고 비닐에 담아 냉장 보관
껍질 손질만큼 중요한 것이 보관이다. 잎이 달린 당근을 샀다면 잎부터 잘라내는 것이 좋다. 잎이 뿌리의 수분을 계속 빨아들여 당근이 금세 마르고 탄력을 잃기 때문이다.
당근은 물기를 닦아 비닐봉지나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 채소 칸에 넣어 두면 몇 주 동안 아삭함을 유지한다. 사과나 배와는 떨어뜨려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들 과일은 익어 가면서 에틸렌(ethylene)이라는 기체를 내뿜는다. 다른 과일·채소를 빨리 익게 만드는 성분이다. 당근에는 쓴맛을 낼 수 있다.
껍질을 미리 벗겨 두면 표면이 쉽게 마르고 하얗게 변한다. 껍질은 먹기 직전에 벗기는 것이 신선도를 지키는 방법이다.
한꺼번에 많이 샀다면 냉동 보관도 가능하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끓는 물에 잠깐 데친 뒤 찬물에 식혀 물기를 빼고 얼리면 된다. 이렇게 얼린 당근은 해동하지 않고 바로 볶음이나 국에 넣어 쓸 수 있다.
■ 김밥·잡채부터 갈비찜까지
당근은 껍질을 벗기든 그대로 두든 한식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김밥이나 잡채에 채 썰어 넣으면 색감이 살아난다. 볶음밥이나 카레에 잘게 다져 넣으면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먹는다.
갈비찜이나 닭볶음탕처럼 오래 끓이는 요리에는 큼직하게 썰어 넣으면 된다. 당근의 단맛이 양념에 배어들어 맛이 한층 깊어진다. 채 썬 당근에 부침가루를 묻혀 부치는 당근전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반찬이다. 계란말이나 어묵볶음에 곱게 다져 넣어도 잘 어울린다.
장 봐 온 당근은 겉면부터 살펴보면 된다. 매끈하면 솔로 씻어 껍질째, 거칠거나 곱게 갈 요리라면 껍질을 벗겨 쓰는 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