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가 의뢰인의 돈을 맡는다는 것은 단순한 보관이 아니다. 법과 직업윤리, 그리고 사람 사이의 신뢰를 함께 맡는 일이다. 특히 에스크로 계좌의 돈은 변호사의 돈이 아니다. 고객의 돈이고, 거래 상대방의 돈이며, 정해진 목적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돈이다.
그런데 캐롤튼 ‘더 김 로펌(THE KIM LAW FIRM)’ 김환균 변호사를 둘러싼 제보들을 보면, 바로 그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무너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업체를 팔고 받은 에스크로 수표가 잔고 부족으로 부도났다는 피해자가 여럿이다. 바이어가 맡긴 5만 달러는 계좌가 폐쇄된 뒤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는 제보가 나왔다. 개인 투자금이나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에스크로 수표가 사용됐다는 주장도 있다.
더 심각한 제보도 있다. 사업체 매각대금에서 SBA 대출을 대신 갚아주겠다며 15만 달러를 떼어 갔지만, 2년 가까이 지나도록 대출이 상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30만 달러짜리 에스크로 수표를 받고도 김 변호사의 부탁으로 1년 넘게 입금을 미뤘다고 한다.
이 모든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안의 본질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순한 회계 착오나 ‘깜빡한 실수’로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의뢰인의 돈을 맡아두는 계좌에서 사적인 채무나 투자금을 갚고, 다른 돈으로 앞선 구멍을 메우는 식의 ‘돌려막기’가 있었다면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뿌리부터 무너뜨리는 행위다.
에스크로의 핵심은 돈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어가 맡긴 돈은 클로징 때 셀러에게 지급돼야 한다. 변호사가 개인 사정으로 먼저 쓰고 나중에 채워 넣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그런데 수표가 반복해서 부도났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있어야 할 돈은 어디로 갔는가. 왜 피해자들에게 돈을 갚겠다는 약속이 반복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는가.
DK 미디어 보도 이후 일부 투자 피해가 해결됐다는 제보가 나온 점도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돈이 마련됐다면 왜 에스크로 피해자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는가. 누구의 돈으로 누구의 피해를 먼저 막은 것인가. 만약 새 돈으로 앞선 피해를 갚는 방식이 반복됐다면 그 자금 흐름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피해 규모는 300만 달러에 육박한다는 제보까지 나오고 있다. 노후를 위해 가게를 판 부부, 평생 일군 사업체를 정리한 업주, 투자금을 맡긴 사람, 돈을 빌려준 지인, 그리고 이민 업무를 맡긴 의뢰인까지 피해 형태도 다양하다.
더욱 참담한 것은 많은 피해자들이 “변호사니까 믿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년 넘게 한인사회에서 활동한 변호사라는 이름은 신뢰의 보증수표처럼 작용했다. 바로 그 신뢰 때문에 피해자들은 수표 입금을 미뤄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고, 대출 상환을 맡겼으며, 수십만 달러를 에스크로 계좌에 넣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개인 간 금전 분쟁이 아니다. 한인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법률 서비스에 대한 신뢰 자체를 흔드는 사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명 없는 침묵도, 반복되는 약속도 아니다.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밝히고 피해자들에게 책임 있게 설명하며, 반환해야 할 돈을 반환하는 것이다.
경찰과 텍사스 변호사협회 역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어떤 돈이 언제 들어왔고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에스크로 계좌가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더욱 안타까운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비슷한 피해와 의심스러운 에스크로 자금 처리에 관한 제보가 수년 전 사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런 사실이 조금 더 일찍 알려졌다면, 이후 또 다른 선량한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물론 피해자에게 제보와 신고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일 수도 있고, 변호사를 상대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침묵은 피해를 끝내지 못한다. 오히려 같은 일이 반복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이번 보도도 피해자들이 계약서와 수표, 은행 기록, 문자메시지를 들고 용기 있게 제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사람의 제보가 또 다른 피해자를 찾게 했고, 흩어져 있던 피해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했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혼자 끌어안고 있어서는 안 된다. 경찰과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필요한 경우 변호사협회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언론에도 사실과 자료를 토대로 알려야 한다.
제보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일이 아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일이다.
에스크로는 단순한 은행 계좌가 아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마지막 신뢰선이다. 그 선을 넘었다는 의혹이 있다면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책임은 끝까지 물어야 하고,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침묵의 고리 역시 이제는 끊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