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짧아지는 계절의 로우라이트 인테리어

창밖은 아직 푸른데 거실은 벌써 어둑하다. 천장의 큰 등을 켜는 순간 방 안은 사무실처럼 하얗게 질리고, 저녁의 여운은 그대로 사라진다. 서머타임이 끝나면서 달라스의 해는 오후 5시 반 무렵이면 저문다. 퇴근길은 어느새 밤길이 됐다.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시간을 조명 아래서 보내는 계절이다.
영국 인테리어 매거진 Livingetc는 올가을 홈 무드로 ‘로우라이트 룸(Low-light Room)’을 꼽았다. 무작정 어둡게 지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천장 하나에 의존하던 빛을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여러 개로 나누고, 온도를 낮추자는 것이다. 수면을 방해하는 차가운 LED 빛에 대한 경계, 그리고 다크 아카데미아와 모던 헤리티지 같은 인테리어 흐름이 이 변화를 밀어 올렸다. 가구 하나 들이지 않고도 계절을 갈아입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바로 조명이다.
▶ 거실 (Living Room) | 빛의 웅덩이를 만든다
영국 조명 브랜드 존 컬렌(John Cullen Lighting)의 디자인 디렉터 루크 토머스는 “여러 광원을 서로 다른 높이에 겹쳐 낮은 위치에 부드러운 빛의 웅덩이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소파 옆 플로어 램프, 콘솔 위 테이블 램프, 책장 선반의 작은 간접등까지 세 개의 높이를 갖추면 천장등 없이도 거실은 충분히 밝다.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놓이면서 공간에 깊이가 생기고, 같은 거실이 낮과 밤에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TV를 볼 때는 화면 뒤편에 은은한 간접등 하나만 남겨두는 것도 방법이다.
Tip. 저녁 7시 이후에는 천장등을 끄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보자. 그때부터 어느 구석이 어둡고 어디가 지나치게 밝은지 한눈에 보인다.

▶ 테이블 램프 (Statement Lamp) | 커다란 램프 하나의 힘
광원을 여러 개 두라는 말이 작은 램프를 곳곳에 늘어놓으라는 뜻은 아니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그중 한 자리를 존재감 있는 크기의 램프로 채우는 방식을 즐겨 쓴다. 소파 옆이나 콘솔 위에 큰 램프 하나를 두면, 불을 켰을 때는 조명이 되고 껐을 때는 그 자체로 오브제가 된다. 다만 기준은 받침이 되는 가구다. 가느다란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육중한 램프는 불안해 보인다. 램프와 테이블의 비례가 맞아야 비로소 보기에 편안하다.
Tip. 갓은 패브릭이나 직조 소재를 고르자. 빛이 한 번 걸러져 더 부드럽게 퍼진다. Southern Living 역시 패브릭 갓을 올해의 조명 트렌드로 꼽았다.
▶ 주방 (Kitchen) | 일하는 빛과 머무는 빛을 나눈다
밝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가장 강한 공간이 주방이다. 하지만 요리할 때와 식사를 마친 뒤 차 한잔을 마실 때 필요한 빛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조리용 조명과 분위기 조명을 각각 따로 켜고 끌 수 있게 나누라고 권한다. 요리할 때는 상부장 아래에 단 LED 바 조명이 도마와 조리대를 환하게 비춘다. 설거지까지 끝난 저녁에는 천장등을 끄고 이 LED 바만 켜두면, 주방 전체가 은은한 간접조명 아래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같은 주방이 시간에 따라 작업 공간과 쉼의 공간을 오가게 되는 것이다.
Tip. 배선 공사가 부담스럽다면 스마트 전구나 스마트 플러그에 ‘조리 모드’와 ‘저녁 모드’를 따로 저장해두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 침실 (Bedroom) | 숫자로 고르는 따뜻함
침실 조명의 핵심은 밝기보다 색온도다. 전구 포장에 적힌 ‘K(켈빈)’ 수치가 낮을수록 빛은 노랗고 따뜻해진다. 루크 토머스는 “2700K 안팎의 웜화이트 LED가 훨씬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고 말한다. 여기에 디머를 더하면 잠들기 전 한 시간 동안 빛을 서서히 낮출 수 있다. 밝기를 줄일수록 색까지 촛불처럼 붉어지는 ‘딤투웜(dim-to-warm)’ 전구를 고르면 그 변화가 더 자연스럽다. 잠자리에서 책을 읽는다면 머리맡에 각도가 조절되는 독서등 하나를 따로 두자.
Tip. 한 방 안에서는 색온도를 통일하자. 2700K와 4000K 전구가 섞이면 아무리 좋은 조명도 어수선해 보인다.

▶ 복도와 욕실 (Hallway & Bath) | 한밤의 동선을 위한 낮은 빛
새벽에 물을 마시러 나설 때 천장등을 켜는 순간 잠은 완전히 달아난다. 디자이너들은 복도와 계단에 발목 높이의 모션 센서 조명을 따로 달아두라고 권한다. 바닥만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면 길을 찾기에 충분하다. 욕실도 마찬가지다. 거울 위 메인 조명과 별개로 세면대 아래나 수납장 밑에 낮은 간접등을 더하면 저녁 반신욕 시간이 호텔 스파처럼 바뀐다. 배선이 어렵다면 접착식 무선 센서등이 손쉬운 대안이다.
Tip. Southern Living은 충전식 무선 조명을 “앞으로도 계속될 트렌드”로 꼽았다. 콘센트가 없는 복도 콘솔이나 욕실 선반에 하나씩 두기 좋다.

● 우리 집 빛 온도, 이렇게 맞춘다
- 거실과 침실 같은 휴식 공간: 2700K 이하의 웜화이트
- 주방 작업대: 조금 더 밝은 3000K 안팎
- 복도와 욕실 야간등: 발목 높이, 최소한의 밝기
- 한 공간 안에서는 같은 색온도로 통일
- 해가 진 뒤에는 천장등보다 눈높이 아래 광원 먼저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은 집이 가장 오래 불을 밝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 밝게가 아니라 더 낮게, 천장 하나가 아니라 낮은 곳 여러 군데로. 창밖이 일찍 어두워지는 만큼, 집 안의 저녁은 그만큼 길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