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이란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일상에 가려 보지 못했던 내 마음의 풍경을 다시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계절이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을의 고향을 찾아가곤 합니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서 바라본 산은 붉고 노란 빛으로 물들고, 호수는 깊어진 하늘을 품은 채 고요히 빛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가로지르는 낭만과 지성을 상징하는 찰스강이 보이고 보스턴의 낭만 다운타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메인 주를 찾기 위해 찾은 보스턴은 도시의 분주함 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가장 우아하게 악수를 나누는 곳입니다. 대도시의 활기찬 소음 속에서도, 한 걸음만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수백 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멈춰 선 채 여행자를 반겨주는 곳입니다.
보스턴을 출발하여 95번 하이웨이를 따라 메인 주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여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붉고 노란 단풍은 바쁜 일상 속 뜻밖의 선물이 되어주며 가을의 풍성함을 더합니다. 어느새 메인 주에 다다르고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르는 곳을 잠시 지나 마운트 데저트 섬(Mount Desert Island) 도착했음을 느낄 즈음에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 사인이 보입니다. 메인주의 거친 해안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해안가 작은 마을이 바다의 짠 내음과 계절의 오묘함이 함께 머물고 있는 가을의 고향 ‘바 하버(BarHabor)’에 도착하게 됩니다.
10월 중순의 메인 주는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말을 거는 곳입니다. 굽이진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풍경을 닮아가듯, 서두르던 생각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단풍과 바다, 오래된 숲의 풍경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듭니다. 보스턴에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메인주의 마운트 데저트 섬 안에 있는 조그만 마을인 바 하버에 도착하면 세상은 마치 오래된 수채화 한 폭처럼 고요하고 깊은 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대서양을 좁은 물길을 수놓은 항구를 따라 산책하며 작은 상점과 카페를 둘러보고, 바다 위에 정박한 배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바 하버만의 소박한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정박된 배들 사이로 바라보이는 조그만 섬인 바 아일랜드(Bar Island)를 방문하는 일은 이곳 만이 선사하는 즐거움입니다. 바 아일랜드로 이어지는 바닷길은 자연이 하루에 두 번씩 바다 한가운데에 감춰 두었던 길을 열어 주는 신비로운 장소입니다. 밀물 때는 바다 아래 잠겨 있던 길이 썰물이 되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닷물이 물러난 자리에는 모래와
자갈이 이어진 길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바 아일랜드 트레일을 따라 섬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메인 주는 미국에서도 랍스터로 가장 유명한 곳입니다. 바 하버의 차갑고 청명한 바닷가에서 바람에 얼굴을 스치며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잔잔한 파도에 흔들리는 풍경 속에서 통째로 쪄낸 메인 랍스터를 먹는 그 자체로 특별한 여행의 추억이 됩니다. 갓 쪄낸 붉은 랍스터의 달콤하고 탱글탱글 한 살을 녹인 버터에 살짝 찍어 먹으면, 화려한 양념 없이도 대서양 바다의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바다와 마을이 만나는 바 하버는 아카디아 국립공원 여행의 중심이 되는 아름다운 해안 마을입니다.
이곳에서 약간의 눈을 돌리면 가을이 바다를 만나는 곳인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캐딜락 마운틴 (Cadillac Mountain)을 만나게 되는데, 정상에 서면 프렌치맨 베이와 수많은 섬과 더불어 구불구불한 해안선이 파노라마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27마일의 파크 루프 로드(Park Loop Road)를 따라 운전을 하면서 메인 주의 거친 해안과 이어지는 단풍 숲을 만나며 이곳이 왜 가을의 고향인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바 하버는 곧 겨울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이곳을 감싸고 있는 나무들은 자신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색을 아낌없이 내어놓고 하늘을 품은 바다는 풍성함을 우리에게 베풀고 있습니다. 이곳에 모인 많은 여행자들에게 그 찬란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려는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은 떠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떠나기 전까지 온 마음을 다해 빛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메인주의 가을 속에서 계절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아름다움까지 조용히 배워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