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스팍 쇼핑몰에 가을이 내려앉았다. 할로윈이 코앞이라 펌킨패치를 찾은 아이들이 많았다. 나뭇가지에는 앙증맞은 트리하우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호박으로 꾸민 장식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님들은 휴대전화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담느라 바빴다. 호박으로 만든 작은 오두막집이 단연 인기였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앞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누군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들에게 빨리 서라고 소리치더니 카메라를 들이대며 웃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리는데, 부모는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가 찍은 사진에는 멋쩍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겼다. 남의 차례를 가로챘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쇼핑몰 입구에는 두 겹의 문이 있었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하면 다시 안쪽 문을 지나야 하는 구조였다. 마침 휠체어를 탄 남자가 문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과 낯선 남자가 바깥쪽 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고 그를 기다렸다. 나는 얼른 안으로 들어가 안쪽 문을 붙들었다. 뒤이어 오던 젊은 여자가 반대쪽 문을 잡아주었다. 누가 열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역할 분담을 한 적도 없는데, 마치 여러 번 호흡을 맞춰 본 사람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우리는 휠체어가 두개의 문을 지나갈 때까지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그분이 우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눈웃음을 나누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불과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금전까지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예약해 둔 브런치 식당으로 향했다. ‘브레드 위너’에서 유명하다는 빵과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앞 테이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노부부가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손주를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이체어에 앉은 아이는 작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더 많았다. 노부부는 아이를 챙기느라 식사 내내 분주했다. 아이가 자꾸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활짝 펼치며 ‘Peekaboo’를 해주었다. 아이의 비타민 같은 웃음에 신이 난 건 오히려 나였다. 식사를 하다 느닷없이 시작된 놀이에 아이도 나도 즐거웠다.
식사를 마친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허리를 굽혀 아이가 바닥에 흘린 것들을 줍기 시작했다. 큼직한 조각만 대충 집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빵 부스러기까지 주웠다.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굽히기를 여러 번 한 할머니는 아이 앉았던 자리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식당에서 음식을 흘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질러 놓은 자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손님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건 식당 직원의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어질러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도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솔선수범한 할머니의 성숙한 태도에 존경심마저 들었다. 놀랍게도 할머니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손주와 놀아 주어서 고맙다며 인사를 했다. 뜻밖의 인사에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식당을 많이 다녔어도 아이가 흘린 음식물을 이렇게 꼼꼼히 치우고 가는 분은 처음 봤어요. 정말 최고세요.” 하며 양쪽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었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칭찬이었지만, 짧은 인사 속에 기분 좋은 웃음이 오갔다.
애티튜드(Attitude)는 사람의 태도와 몸가짐을 뜻하는 말이다. 짧은 단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 담겨 있다. 배운 지식이나 경제적 형편,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드러나는 것이 있다. 쇼핑 카트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일, 식당에서 아이들이 흘린 음식물을 줍는 일 등은 하지 않는다고 벌받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이 드러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애쓴다.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가르치고 더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예의범절은 어디에서 배울까. 아이들은 어른이 가르치는 대로만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익힌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인 것이다.
브런치 식당에서 만난 아이는 할머니가 왜 허리를 굽혔는지 모르겠지만, 좀 더 자라면 자신이 흘린 것을 스스로 줍고,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문을 잡아 주는 어른으로 자랄지도 모른다. 사람은 저마다 세상에 자신의 자리를 만든다. 누군가는 남보다 먼저 차지하려 애쓰고, 누군가는 기꺼이 비켜 줌으로 빛난다. 오두막집 앞에서 찍힌 수많은 사진보다 정작 내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들이었다.
할로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어떤 분장을 하고 나타날까? 귀신이든 마녀든 상관없다. 남의 차례를 빼앗지 않고,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 줄 줄 안다면 그보다 예쁜 모습이 어디 있을까. 나도 이제 처마 밑에 할로윈 등을 켜고, 동네 꼬마들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