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아들이 집을 샀다. 그 문장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쉽게 다 말할 수 없는 시간이 길게 눌려 있었다. 집을 산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 하나를 마련하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기쁨보다 먼저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처음 아이를 품에 안았던 날의 체온과, 아무것도 모르던 작은 손이 내 손을 붙잡던 감각. 그리고 내 뒤를 따라오던 발걸음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앞서 걷기 시작하던 시간들이 겹쳐졌다. 이 한 문장이 단순한 현재의 소식이 아니라 지나온 모든 날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론처럼 느껴졌다.
결혼 5년이라는 시간과 아이가 태어난 지 2년 10개월이라는 또 다른 시간, 그리고 큰애가 집을 떠난 지 5년. 서로 다른 시간들이 한 사람의 삶 위에 겹겹이 쌓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며 지금에 이르렀다. 시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무게와 방향을 가지고 인간의 삶을 밀어 올린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힘으로 한 사람을 다음 자리로 옮겨놓는다.
결혼 전 그는 부모의 집에서 살았다. 집은 애써 지키지 않아도 언제나 자리를 내어주는 공간이었다. 돌아오면 늘 같은 온도로 맞아주는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배경을 떠나 스스로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자리. 더 이상 기대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밝혀야 하는 자리. 스스로 풍경이 되어야 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
인생의 시간표를 따라 순서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흐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순서를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택과 포기, 그리고 흔들림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큰애가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은 숫자로 다가왔고, 선택은 언제나 부담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멈추고 돌아설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다 알지 못하지만, 그 시간들이 아들을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집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견디고 버텨낸 시간의 형태인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어진 집 투어는 단순히 집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긴 여정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문을 열고 닫으며 가능성과 포기를 반복하던 그 시간 끝에서 큰애는 마침내 한 달 전, 각종 서류와 숫자, 서명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하나의 공간을 얻어냈다. 그 짧은 성취의 순간 뒤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시간의 두께가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말없이 자라고 있었다. 부모가 고민과 선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동안에도 아이는 또 한 번의 성장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삶은 언제나 어떤 일에 몰두해 있는 사이에도 다른 차원의 시간 속에서 함께 자라고 변해간다.
갑각류가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듯 인간 역시 어떤 경계를 넘을 때 비로소 이전의 자신을 벗어나게 된다. 그 경계는 편안하지 않다. 선택과 불안이 겹치는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큰애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마련하는 이 모든 과정을 지나오며 이미 여러 번의 허물을 벗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그 분명한 변화들이 그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집은 단순한 부동산의 결과가 아니라 한 사람이 감당해온 시간의 형태이기에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 순서가 사실은 결코 쉽게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장하다. 또한 그 안에 스며 있는 노력과 긴장이 느껴져 마음 한편이 찡해져 온다. 어쩌면 큰애는 이제야 비로소 삶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의 ‘세금’을 제대로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금전적인 지불이 아니라 책임과 선택, 그리고 버텨냄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시간의 대가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 공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집은 가구로 채워질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서로를 향한 마음,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의 온기로 서서히 깊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이 집이 빛이 가득한 집이 되기를 바란다. 외부의 빛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빛으로 채워지는 집.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둠을 밀어내고, 다시 돌아오고 싶게 만드는 온기로 남는 집. 그 빛은 크지 않아도 된다. 다만 꺼지지 않는 것이면 충분하다.
이사하는 날, 나는 집 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문턱 앞에 서서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문턱은 낮았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쉽게 넘을 수 없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한 발짝만 내딛으면 여전히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자리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한 발짝을 멈추는 것이 비로소 아이의 삶을 온전히 건네주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무도 듣지 못할 기도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올렸다.
이 집안에 사랑이 쌓이기를.
서로를 붙잡고 버티는 시간이 지나가기를.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
마침내 스스로 빛을 내는 사람이 되기를.
그 빛이 모여, 이 집이 오래도록 따뜻한 집으로 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