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식품·서비스·주거 전방위 확산 …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현실로 다가오나

휘발유값이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선 지 오래다. 장을 보러 가면 토마토 값이 1년 전보다 40% 가까이 올랐고, 커피 가격도 18%나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이란 전쟁 때문”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잇따라 공개된 경제 지표들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물가 상승이 전쟁과 기름값을 훌쩍 뛰어넘어 경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전쟁은 도화선에 불을 붙였을 뿐, 불길은 이미 사방으로 번지고 있다.
이틀 연속 쏟아진 충격 지표
노동통계국(BLS)은 이틀 연속 시장을 놀라게 했다. 13일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Producer Price Index)는 4월 한 달간 계절 조정 기준 1.4% 올랐다. 전문가들의 예상치(0.5%)를 세 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였고, 앞서 상향 조정된 3월 상승폭(0.7%)의 두 배에 달했다. 월간 기준으로는 2022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연간 기준으로는 6% 올라 2022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루 전인 12일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가 공개됐다. 4월 CPI는 한 달 새 0.6% 올랐고, 연간 상승률은 3.8%에 달했다. 이는 2023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2.8%로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았다.
두 지표 모두 시장 예상을 뛰어넘었다. 물가가 전문가들의 예측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고 신호다. 경제학자들이 모델로 잡아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불씨, 하지만 불길은 이미 더 넓게 번졌다
물가 급등의 출발점은 에너지다. PPI 상승분의 4분의 3이 에너지 부문의 7.8% 상승에서 비롯됐다. 그 중 40% 이상은 휘발유 가격이 한 달 새 15.6% 폭등한 데 따른 것이다. 주유소 가격은 갤런당 4달러를 훌쩍 넘었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원유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국제유가는 연초 대비 약 78% 치솟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14일 현재).
문제는 에너지 충격이 다른 분야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운송비가 오르면 모든 상품의 물류 비용이 늘어난다. 생산 원가가 오르면 기업들은 그 비용을 소비자 가격에 얹는다. 이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됐다.
서비스 물가지수는 4월 한 달 새 1.2% 올랐다. 2022년 3월 이후 월간 최대 상승폭이다. 상승분의 3분의 2는 교역 서비스 부문의 2.7% 상승에서 나왔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비용이 유통·도매 단계에서 가격에 본격 전가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읽힌다. 기계·장비 도매 마진도 3.5% 뛰었다.
장바구니부터 월세까지…생활 물가 전방위 타격
가계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되는 것은 식품 가격이다. 집에서 먹는 식료품 가격은 4월 한 달 새 0.7% 올랐다. 2022년 8월 이후 월간 최대 상승폭이다. 연간으로는 2.9% 비싸졌다.
품목별로 보면 쇠고기 다짐육이 4월에만 2.7% 올라 1년 전보다 14.5% 비싸졌다. 소 사육 비용 급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여름 바비큐 시즌을 앞두고 핫도그 가격도 한 달 새 5.8% 뛰어 1년 전보다 10.7% 올랐다.
관세의 직격탄을 맞은 품목도 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토마토는 4월 한 달 새 15.1% 폭등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39.7% 비싸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산 토마토에 20.9%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커피는 국제 공급 부족 우려까지 겹쳐 4월에 2% 오르며 연간 상승률이 18.5%에 달했다.
주거 비용도 심상치 않다. 주거 관련 물가는 4월에 0.6% 올라 연간 3.3% 상승을 기록했다. 호텔 등 숙박비는 한 달 새 2.4% 뛰었고, 1년 전보다 4.6% 비싸졌다. 임차인 보험료도 연간 7.2% 올랐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귀속 임대료(Owners’ Equivalent Rent)’로 불리는 주거비 산정 방식이 실제 가격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 셧다운 기간 동안 관련 데이터 수집이 중단되면서 수치가 왜곡됐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재도 마찬가지다. 창문 커튼·블라인드 같은 창호 제품은 1년 새 8.2% 올랐고, 그릇·수저 세트는 연간 15.4% 상승했다. 보석류는 4월 한 달 새 3.7% 올라 1년 전보다 16.1% 비싸졌다. 시계도 연간 8.8% 올랐다. 신발은 4월에만 1.4% 뛰어 연간 4.2% 상승했다.
서비스 분야에서도 지출 부담이 커졌다. 영상 스트리밍 및 게임 구독료는 4월에 2.1% 올라 연간 16.6% 상승했다. 배달 서비스 비용은 4월 한 달에만 4.3% 뛰었고, 1년 전보다 13.6% 비싸졌다.
월가도 흔들린다…장기 인플레이션 우려 확산
이번 물가 지표의 충격은 금융시장에도 즉각 반영됐다. PPI가 발표된 13일 나스닥 종합지수는 0.71% 하락했고 S&P500도 0.16% 내렸다. 최근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반도체·메모리 종목들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인텔이 6.8%, 샌디스크가 6.2%, 마이크론이 3.6% 각각 하락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4.462%로 지난해 7월 이후 최고 종가를 기록했다.
다만 14일에는 분위기가 반전됐다. 시스코 시스템즈의 깜짝 실적 발표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따른 미중 정상회담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다우존스는 300포인트 이상 오르며 5만 선을 회복했고, 나스닥과 S&P500도 각각 0.88%, 0.74%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반등이 물가 압력 자체를 해소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낙관하기 이르다는 반응이다.
채권 시장에서는 여전히 경고 신호가 나오고 있다. 물가연동국채(TIPS)와 일반 국채의 금리 차이인 손익분기 인플레이션율이 최근 2022년 10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향후 5년간 연평균 물가 상승률을 약 2.7%로 예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10년 기대 인플레이션도 2.5%까지 올라 202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준, 진퇴양난에 빠지다
연준은 현재 기준금리를 3.5~3.75% 범위에서 유지하고 있다. 물가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를 내리기도 어렵고,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PPI 발표 이후 시장에서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치는 비율은 39%까지 올라갔고, 금리 인하 기대는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여기에 차기 연준 의장 후보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더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낙점한 케빈 워시(Kevin Warsh)는 인준 절차를 밟고 있다. 그는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연준이 주로 참고하는 물가 지표보다 낮은 수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비둘기파적 입장을 보인 바 있어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에 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압박해왔다.
연준 내부에서도 딜레마는 깊다.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아지면 기업들이 앞으로 비용이 더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미리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경기를 더욱 옥죌 수 있다. 미시건대학교 소비자심리지수가 최근 사상 최저치에 근접한 예비 수치를 기록한 것은 이 같은 소비 심리 악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서 현실로 가는가
경제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다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다. 경기는 침체되는데 물가는 오히려 오르는 최악의 조합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 경제를 뒤흔들었던 바로 그 현상이다.
아직 공식적인 경기 침체 선언이 나온 것은 아니다. 고용 시장은 여전히 탄탄하다는 평가다. 하지만 물가 압력이 지속되면서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투자가 위축되는 연쇄 반응이 이미 시작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에는 1970년대와 다른 성격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이란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충격, 트럼프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정책, 코로나 이후 재편 중인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의 구조적 상승이 한꺼번에 맞물려 있다. 이 요인들 중 어느 하나도 단기간에 해소될 성질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면 기름값은 어느 정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오른 관세 장벽과 재편된 공급망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주거비와 서비스 가격의 상승 관성도 마찬가지다. 이번 물가 상승이 단기 충격으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고물가 시대의 서막이 될지는 앞으로 몇 달간의 지표가 가를 것이다.
유광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