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도 물가는 ‘통제’, 고용·소비 유지 … S&P 500 7,000선 회복의 의미

이란과의 군사 충돌로 시작된 중동발 위기가 2주간의 휴전을 거쳐 이란 항구 봉쇄로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제는 거센 충격에 직면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가는 급등과 하락을 반복했고 달라스 인근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갤런당 3달러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주요 경제 지표들은 시장 예상을 잇따라 밑돌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안도감을 확인시켜줬다. 증시의 대표 지수인 S&P 500은 7,000선을 다시 넘어섰다.
지난 2월 28일 전쟁이 발발한 이후 6주간 주식·채권·원자재 시장은 롤러코스터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휴전 선언과 함께 물가·고용·기업실적이 잇따라 예상보다 양호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현재의 충격 자체보다, 이 충격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통제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전→휴전→봉쇄 … 충격의 시간
전쟁 초기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주식과 채권, 원자재 시장이 동시에 흔들리며 전형적인 ‘리스크 오프(위험자산 회피)’ 흐름이 나타났다.
이후 약 2주간의 휴전이 이어지면서 확전 우려는 일정 부분 진정됐고, 미국이 이란 항구 봉쇄라는 새로운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봉쇄는 긴장을 다시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시장에는 ‘통제 가능한 충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시장은 이를 전면전 확대 신호가 아니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제한적 압박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무제한 확전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휴전 이후 국제 유가는 한 주 만에 약 15% 하락하는 등 변동성이 일부 완화됐다.
◈물가에서 유가만 올랐을 뿐이다

14일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 BLS)이 발표한 3월 생산자물가지수(Producer Price Index, PPI)는 전월 대비 0.5% 상승에 그쳤다. 금융정보업체 다우존스(Dow Jones)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1.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전쟁의 직격탄을 맞은 에너지 부문은 크게 올랐다. 휘발유는 한 달 사이 15.7% 급등했고, 디젤은 42%, 항공유는 30.7% 상승하며 공급 충격의 여파를 그대로 반영했다.
하지만 시장이 주목한 것은 ‘상승의 범위’였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0.1% 오르는 데 그쳐 예상치(0.5%)를 크게 밑돌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서비스 물가는 전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전쟁으로 특정 품목 가격은 급등했지만, 경제 전반으로 인플레이션이 확산되지는 않은 것이다. 기업들이 비용 상승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대신 스스로 감내하고 있다는 신호도 확인됐다. 단기적으로 기업 수익성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폭발’하지 않고 ‘지연’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앞서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됐다. 전체 CPI는 전월 대비 0.9% 올랐지만,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6% 상승에 그쳐 시장 예상치(2.7%)를 밑돌았다. 연간 기준으로는 전체 PPI가 4% 올라 2023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전문가들은 에너지라는 특정 항목에 상승세가 집중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 기준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3월 연간 기준 약 3.1%, 근원 기준 3.5%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2월(전체 2.8%, 근원 3.0%)보다 높아지기는 했지만, 에너지 급등 영향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고용과 소비, 흔들리지 않았다
시장 반등의 또 다른 핵심은 경제의 기초 체력이 유지됐다는 점이다.
4월 11일로 끝난 주간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만 7,000건으로 전주의 21만 8,000건에서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이코노미스트들의 예상치인 21만 5,000건도 밑돌았다.
수치 자체가 낮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변동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전쟁이라는 대형 악재 속에서도 기업들이 인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이 유지된다는 것은 곧 소비의 기반이 유지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실업급여를 받는 지속 청구 건수는 4월 4일 기준 182만 건으로 전주(179만 건)에서 소폭 늘었지만,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은 양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형 은행들, 혼란을 실적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과 시장 혼란이 가계와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이 된 반면, 대형 금융기관들은 오히려 이 혼란을 실적으로 바꿨다.
JP모건체이스(JPMorgan Chase), 시티그룹(Citigroup), 웰스파고(Wells Fargo) 3개 대형 은행의 올해 1분기 순이익 합계는 275억 3,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7% 늘었다.
JP모건은 1분기 순이익 165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13% 증가했다. 전문가 예상치(152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깜짝 실적’이었다.
전쟁 여파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채권·주식·원자재 거래량이 늘었고, 채권 부문 수입은 전년 대비 21%, 주식 부문은 17% 각각 늘었다. 투자은행 부문 수수료 수입도 28% 증가했는데, 기업 인수·합병(M&A) 자문과 기업공개(IPO) 관련 거래가 늘어난 덕이었다.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1분기 중 미국 경제는 회복력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면서도 “복합적인 위험 요소들이 경제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정학적 불안, 인플레이션, 인공지능(AI) 리스크 등이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웰스파고의 찰리 샤프(Charlie Scharf) CEO는 “저소득층 소비자들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했다.
웰스파고 고객들이 전쟁 이전보다 연료비로 25~30%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는 통계도 내놨다. 마이크 산토마시모(Mike Santomassimo) 웰스파고 CFO는 “전반적인 소비는 여전히 탄탄하지만 에너지 가격이 다른 생활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JP모건의 신용카드 소비 지출은 전년 대비 9% 늘었지만, 신용카드 잔액(빚)이 늘고 예금 증가세는 둔화됐다. 소상공인 대출도 전년보다 10% 줄었다. 대형 은행들이 높은 수익성을 기록한 이면에, 일반 가계의 조용한 어려움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체감은 아직 ‘현재진행형’
시장의 낙관론이 곧바로 체감 경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스 인근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갤런당 3달러 중반대(일부 주유소는 4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쟁 이전 대비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 비용 상승은 물류비를 밀어 올리고, 이는 식료품 가격과 외식비, 각종 서비스 요금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실제 일부 업종에서는 원가 부담을 이유로 가격 인상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배달업, 운송업, 건설업 등 연료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부담이 더 크게 체감되며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 방문 등을 계획했던 한인 동포들은 치솟은 항공료(유류할증비)에 계획을 변경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최악은 지났다”는 기대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지표는 S&P 500의 7,000선 회복이다. 이는 단순한 반등이 아니라 시장이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금리가 당장 오를 가능성이 낮고, 물가가 통제 가능한 수준이며, 기업 실적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위험자산 선호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연준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25% 안팎으로 보고 있으며, 연준 당국자들도 물가가 연내에 목표치인 2%를 향해 점진적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핵심 변수는 역시 에너지와 전쟁의 향방이다. 연초 대비 약 70% 높은 수준인 국제 유가가 재급등한다면 물가와 소비는 동시에 압박을 받고, 중동 정세가 재격화될 경우 시장의 낙관론도 빠르게 꺾일 수 있다. 반면 휴전이 장기화된다면 에너지 가격이 서서히 안정되면서 하반기 물가 흐름도 개선될 여지가 생긴다.
지금의 상승은 ‘문제가 해결됐다’는 신호라기보다 ‘최악은 지나갔다’는 기대에 가깝다. 그리고 시장은 늘 그렇듯, 그 기대를 먼저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