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해고에도 칭찬받고 주가 오르는 기현상, 기업 전반 도미노 현상 우려

달라스에서 물류기업에 다니는 한인 직장인 C씨는 요즘 출근길이 무겁다. 지난해 말 회사가 다른 기업과 합병된 이후, 지난달 동료 300여 명이 한꺼번에 짐을 쌌다. C씨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리에 앉을 때마다 같은 생각이 반복된다.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른다.”
이 불안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다. ‘메가 레이오프(mega-layoff·대규모 감원)’가 새로운 경영 공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한때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일자리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있다.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 파장은 텍사스 한인 사회에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밀려오고 있다.
◈ 잘라도 칭찬받는 시대
주요 기업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동시다발적이다. 메타(Meta)는 오는 5월 20일 전체 직원의 10%인 8,000명에게 해고를 통보할 예정이다. 올해 AI 인프라에만 최대 1,350억 달러를 쏟아부을 계획이며, 채용 예정이던 6,000개 자리도 함께 취소했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는 창사 51년 만에 처음으로 전체 직원의 약 7%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제안했으며, 목표에 미치지 못할 경우 실제 해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나이키(Nike)는 올해만 두 번째 감원으로 1,400명을 추가로 내보냈고, 핀테크 기업 블록(Block)은 전체 인력의 40%인 4,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오라클(Oracle)과 스냅(Snap)도 최근 수주 사이에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감원 추적 사이트 레이오프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에만 4만 5,800명의 기술직 감원이 발표됐다. 2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시장의 반응이다. 블록이 40% 감원을 발표한 직후 주가는 오히려 올랐고, 스냅도 1,000명 해고를 발표한 날 주가가 8% 뛰었다. 블록의 최고재무책임자 아미리타 아후자는 WSJ 인터뷰에서 감원 직후 다른 기업 경영진들이 줄줄이 연락해 “어떻게 했는지 따라 하고 싶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것이 새로운 업계 표준이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답했다.
인사 전문가 베스 스타인버그는 “몇몇 기업이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칭찬을 받으면, 다른 기업 경영진들도 ‘우리도 해야 한다’고 말하게 된다”며 도미노 효과를 경고했다.
◈ AI가 원인인가, 명분인가
기업들은 앞다퉈 AI를 감원의 이유로 내세우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4개사가 올해 AI 관련 자본 지출로 총 6,740억 달러를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메타의 부채비율은 5년 전 8%에서 지난해 39%로 급등했고, 아마존은 올해 중으로 보유하고 있던 모든 현금을 소진할 것으로 보인다. WSJ은 빅테크들이 사실상 AI 투자를 위해 사람을 반도체 칩으로 교환하고 있으며, 서로 뒤처지지 않으려는 치킨게임 속에서 인력 감축이 효율의 증거처럼 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털 샤인캐피털(Shine Capital) 창업자 모 코이프만은 “대부분의 기업은 인력의 30~50%를 줄여도 성과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AI가 팬데믹 시기 과잉채용 후유증을 정리하는 데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소나(Sonar)의 CEO 타리크 샤우카트는 “채용을 늦추는 건 이해하지만 40% 감원이 AI 때문이라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전 IBM 엔지니어 마이클 막시밀리언(53)은 더 냉정하다. “1년 후에 AI 라이선스를 더 사면 되는데 왜 사람을 새로 뽑겠느냐”며 2026년 말까지 많은 기술 기업들이 인력의 20~50%를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메타는 이번 주 직원들의 키보드 입력, 마우스 움직임, 클릭 위치를 추적하는 도구를 도입했다. “차세대 AI 모델이 컴퓨터 사용 방법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었지만, 직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내부 게시판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은 이것이었다. “너무 불편하다. 어떻게 거부하냐.”
WSJ은 대규모 감원이 단기 효율 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지만, 인재 유출과 사기 저하, AI에 대한 대중의 반감 확산이라는 부작용도 동반한다고 경고했다.
◈ 대졸 학력도 더 이상 안전판이 아니다
이번 감원의 직격탄은 화이트칼라 직종이다. 경제학자 가드 레바논의 노동부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최근 12개월간 34세 이하 대졸자 실업률이 2년제 전문대 졸업자 실업률인 4.1%에 나란히 맞닿았고 이제는 이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한때 고용 안정의 상징이던 대졸 학력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류·유통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콘퍼런스보드(Conference Board) 수석 이코노미스트 다나 피터슨은 “팬데믹 시기 인력을 대거 늘린 물류·창고 업종에서도 감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C씨가 몸담은 업종이 정확히 여기에 해당한다.
피터슨은 의료 분야 등 일부를 제외하면 다른 업종들은 “아무도 뽑지 않고, 아무도 내보내지 않는” 채용 정체 상태라고 분석했다. 뽑지도, 자르지도 않는 이 정체 상태가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위기라는 것이다. 오라클의 직원 1인당 연간 매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스냅의 직원 수는 코로나 이전보다 65%나 많았다. 이런 기업들에서의 감원은 AI와 무관하게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수십만 명의 일자리가 동시에 사라질 때 그 충격이 소비 위축과 경제 심리 악화로 이어져 결국 투표장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AI를 피하려 하지 말고 먼저 다루는 사람이 돼라”는 것이다.
첫째, AI 도구 활용 능력을 키워야 한다. 챗GPT, 클로드(Claude),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Copilot) 같은 도구를 실제 업무에 접목한 경험이 있는 직원과 없는 직원의 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코세라(Coursera)·유데미(Udemy)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기초부터 익힐 수 있다. 핵심은 “AI가 내 일을 빼앗는다”가 아니라 “AI를 써서 내가 더 빠르게 일한다”는 관점의 전환이다.
둘째,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을 강화해야 한다. 대인관계, 현장 판단, 고객 신뢰 구축은 당분간 자동화가 어렵다. WSJ도 “사람만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고 고객을 상대하며 AI가 안전하게 사용되는지 감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셋째, 수입원을 다각화해야 한다. 업워크(Upwork)·파이버(Fiverr) 같은 프리랜서 플랫폼, 온라인 강의, 소규모 컨설팅을 통한 부업이 리스크를 줄이는 완충재가 된다. 넷째,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해고는 갑자기 오지만, 다음 일자리는 미리 쌓아둔 인맥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 자녀 세대를 위한 중장기 전략
“안정적인 대기업”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의료·헬스케어, 사이버보안, 배관·전기 같은 숙련 기술직은 AI 대체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피터슨은 “의료 분야는 다른 업종과 달리 여전히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졸업장보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해졌다. 실제 프로젝트 경험, 인턴십, 오픈소스 기여가 이력서보다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무엇보다 AI를 도구로 다루는 능력이 새로운 스펙이 됐다. AI를 잘 쓰고, AI의 실수를 잡아내며, 팀 생산성을 높이는 사람은 오히려 몸값이 올라가고 있다.
◈ 불안은 현실이다, 그러나 선택지는 있다
이번 감원 물결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이프만은 “대부분의 기업은 인력의 30~50%를 줄여도 성과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고, 2026년 말까지 기술 기업들이 인력의 20~50%를 줄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같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며 뒤따르는 사람과 변화를 이해하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 지금은 그 갈림길에 서 있는 시점이다. C씨의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준비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