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협상 평행선·해협 통제권 갈등 여전 … 휘발유·항공료 등 실생활 물가 압박 지속

미국과 이란은 4월 7일 밤 파키스탄의 중재로 2주간의 휴전에 전격 합의했다. 38일간 이어진 군사 충돌이 일시 중단되면서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뉴욕증시 다우존스 지수는 하루 만에 1,325포인트 급등해 1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6% 이상 폭락했다. S&P 500은 2.5%, 나스닥은 2.8% 올랐다. 시장은 ‘최악은 피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안도감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명분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봉쇄했다.
유가는 반등해 WTI 기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브렌트유도 배럴당 98달러대로 올라섰다. 휴전 발표 이틀째인 9일 기준, 하루 수백 척이 오가던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고작 4척에 불과했다.
전쟁은 멈췄지만, 세계 에너지 시장은 여전히 전쟁의 긴장 위에 놓여 있다.
◈ 휴전의 조건과 드러나는 균열
이번 휴전은 ‘종전’이 아닌 ‘조건부 정지’에 가깝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조건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하고 즉각적이며 안전한 개방”을 명시했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락치(Abbas Araghchi)는 이에 동의하면서도 “이란 군과의 조율 및 기술적 제한 고려”라는 단서를 달았다. 실질적인 통제권은 여전히 이란이 쥐고 있다는 선언이었다.
UAE 국영석유회사 아드녹(ADNOC) CEO 술탄 아흐메드 알 자베르(Sultan Ahmed Al Jaber)는 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 있지 않다. 통항이 제한되고, 조건이 붙고,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항행의 자유가 아니라 강압”이라고 직격했다. 현재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 약 230척이 페르시아만 안에서 출항을 기다리며 묶여 있다.
총성도 멈추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헤즈볼라를 상대로 공습을 계속했고,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에 로켓을 쏘아 올렸다.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는 “휴전 협정이 세 차례 위반됐다”며 “일방적 휴전은 비합리적”이라고 선언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레바논 공습이 멈추지 않으면 “유감스러운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 전략 무기가 된 호르무즈 해협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얻은 가장 큰 전략적 자산은 미사일이 아니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었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이 좁은 해협을 통과한다. 이란이 이 길목을 틀어쥐자 국제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67달러에서 최고 117달러까지 치솟았다.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유 공급 차질이었다.
중동연구소(Middle East Institute) 이란 전문가 알렉스 바탄카(Alex Vatanka)는 “이란이 호르무즈를 통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터득했다”며 “트럼프가 같은 시도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은 통행 허가에 더해 통행료까지 요구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이 유조선 한 척당 100만~200만 달러(약 14억~29억 원)를 암호화폐로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자본 경제학(Capital Economics) 수석 이코노미스트 닐 셰어링(Neil Shearing)은 이 통행료가 원유 비용에 배럴당 약 1달러를 추가하는 효과를 낸다며 “사실상 해상 항로의 부분적 국유화”라고 지적했다.
해협 통제권은 이란이 앞으로 미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 이슬라마바드 담판, 핵 문제가 최대 쟁점
4월 11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47년 만에 미·이란 최고위급 직접 대화가 열린다.
미국은 JD 밴스(JD Vance) 부통령이 스티브 위트코프(Steve Witkoff),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와 함께 협상단을 이끈다. 이란은 갈리바프 의장과 아락치 외무장관이 대표로 나선다.
그러나 양측의 입장 차는 극명하다. 미국은 핵 농축 완전 중단, 고농축 우라늄 반출, 미사일 프로그램 제한을 요구한다.
이란은 핵 농축 권리 인정, 대이란 제재 전면 해제, 역내 미군 철수를 10개항 제안에 담았다. 특히 이란이 이스파한 지하 시설과 나탄즈에 보유 중인 고농축 우라늄 약 408kg의 처리 방안이 최대 난제다.
백악관 대변인 캐럴라인 레빗(Karoline Leavitt)은 핵 문제를 “대통령이 물러서지 않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했다.
퀸시연구소(Quincy Institute) 수석 부소장 트리타 파르시(Trita Parsi)는 “이란의 협상 틀이 담판의 기초가 됐다는 것 자체가 테헤란의 중요한 외교적 승리”라며 “미국은 더 이상 조건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게 하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전 미 국무부 이란 담당 전문가 앨런 에어(Alan Eyre)는 “트럼프가 지금 얻을 수 있는 합의는 전쟁을 선택하기 전 테이블에 있던 것보다 못하다”고 짚었다.
◈ 시장 반응: 안도 뒤의 불안
휴전 소식에 금융시장은 환호했지만 그 열기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급락했던 유가가 빠르게 반등하자 투자자들도 상황을 신중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ING 은행 분석가들은 “중동 교전이 계속되고 휴전 전망이 악화되면서 호르무즈 불확실성이 다시 초점이 됐다”고 진단했다.
맥쿼리(Macquarie) 전략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요구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를 감안하면 유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SSEC 경영대학원 자무스 림(Jamus Lim) 교수는 원유 가격이 올여름 말까지 배럴당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파르타 코모디티즈(Sparta Commodities) 시니어 분석가 준 고(June Goh)는 “적어도 향후 1년 안에 전쟁 전 수준인 75달러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10년물 국채 금리는 4.2%로 내려앉았고,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도 6.44%에서 6.38%로 소폭 하락했다. 유가 불안이 지속되는 한 물가 압력이 꺾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 한인 동포 지갑에 미치는 직접적 여파
이 전쟁의 파장은 중동과 멀리 떨어진 이곳 한인 동포들의 일상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가장 직접적인 체감 지표는 휘발유다. 9일 기준 전국 평균 가격은 갤런당 4.17달러로 전쟁 전보다 1달러 이상 올랐다. 텍사스는 갤런당 3.87달러로 전국 평균보다는 낮은 편이다. 연료 정보 앱 가스버디(Gas Buddy) 분석가 패트릭 드 한(Patrick De Haan)은 가격 상승의 85~90%가 호르무즈 봉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디젤은 1년 사이 61% 뛰었다.
항공료도 크게 올랐다. 항공유 가격이 갤런당 2.50달러에서 4.81달러로 두 배 가까이 뛰면서 국제선 평균 왕복 운임은 전쟁 전 774달러에서 998달러로 약 29% 상승했다.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실제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최소 한 달에서 두 달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드 한 분석가는 “이 롤러코스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2주의 시계가 돌고 있다.
이번 휴전은 끝이 아니라 다음 국면으로 가기 위한 중간 정지다.
호르무즈는 여전히 이란의 손 안에 있다. 핵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담판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트럼프는 언제든 공습 재개 카드를 꺼낼 수 있고, 미군은 “언제든 공세로 전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상태다.
지금 세계는 불완전한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균형은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