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 반, 기적소리에 잠이 깼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가 살았던 집은 기찻길과 가까워서 밤낮없이 울리는 기적소리와 지축을 흔들며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익숙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소리를 머스탱 팍으로 이사 와 다시 듣게 되었다. 경적 금지라는 경고를 무시한 채 기적을 울리고 달아나는 기차가 개구쟁이 친구들 같았다. 그 소리는 메말라가던 감성에 단비처럼 스며들었고, 유년의 모퉁이에 풍경처럼 남은 역과 기차, 가족과 이웃, 친구들과의 추억을 흔들곤 했다. 소환된 추억이 시가 되는 신새벽이 좋다.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넉 달 전, 창원에서 열린 제3회 ‘세계디카시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마산행 KTX에 올랐다. 기차가 너무 빨라 창밖 풍경을 즐기진 못했지만, 기차를 탔다는 사실만으로 벅차게 좋았다. 마산역 광장에 서 있는 이은상의 시비가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고파’는 왜 읽을 때마다 뭉클한 것일까. 시인은 떠났지만, 시는 남아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 행사에는 한국디카시인협회 텍사스지부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낯익은 분도 계셨고 분위기도 한결 편했다. ‘디카시의 세계화와 K-문학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나는 ‘디지털 시대가 낳은 문학계의 아이돌, 디카시’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발표문에 “내년에는 미뤄왔던 지부 창립을 추진하고, 디카시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건강과 여건을 이유로 미뤄왔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성에서 시작된 디카시는 이제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로 확산하였고, 해외 지부가 생기고 다카시를 창작하는 사람도 늘었다. 여기저기 공모전과 등단제도가 생기고, 일부 신문에서는 신춘 문예에 디카시를 포함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마침내 4월 14일, 한국디카시인협회 텍사스지부 창립식을 열게 되었다. 2023년 7월, 지부 인준과 지부장 위촉을 받았으니 적잖이 늦은 셈이다. 세월이 갈수록 창립식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 창립은 혼인신고만 하고 살던 부부가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 앞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도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혔다. 친정 같은 달라스한인문학회와는 협력 관계를 이어갈 생각이다.
필자가 달라스에 디카시를 처음 소개한 것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대면 활동이 어렵던 시기에 달라스한인문학회 단체 카톡방에 디카시를 소개하고 ‘디카시 콘테스트’를 열었다. 스물아홉 명이 육십여 편의 작품을 올렸고 참가자 모두가 심사위원이 되어 우수작을 뽑고 상금도 나누었다. 작품성이나 경쟁을 떠나 새로운 시 놀이에 함께 웃고 즐긴 시간이었다. 이듬해 『달라스문학』에 디카시 코너를 마련하여 회원들의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고, 2023년에는 텍사스 최초로 디카시 공모전을 열어 오늘에 이르렀다.
코비드-19가 확산할 무렵 달라스 코윈 카톡방에서도 디카시를 설명하고 미니 콘테스트를 열었다. 2021년에는 세계한민족여성재단 코위너문화위원회 줌 미팅에서 제안했던 디카시 공모전이 채택되어 온라인으로 행사를 했다. 1회 심사를 맡았는데, 각국에서 많은 분이 참여하여 놀랐고 보람을 느꼈다. 그 공모전은 연례 국제행사로 자리 잡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미주한국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미주문학』 에 디카시 신인상이 신설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 모든 일에 미력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기쁘다.
디카시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감흥을 일으키는 형상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사물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5행 이내의 문자로 완성하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디카시는 디지털 시대가 낳은 문학계의 아이돌이라고 생각한다. SNS에 올린 작품에 독자들이 즉각 반응하고 그 속에서 소통과 공감, 나아가 독자층이 형성된다. 아이돌이 팬들과 소통하며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 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아이돌이 음악과 춤, 영상과 패션을 결합한 종합예술의 결정체라면, 디카시는 이미지와 언어가 결합한 융합 예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빠른 리듬 속에서 짧은 집중으로 감정을 압축해 내는 아이돌의 음악처럼, 디카시는 긴 사유보다는 순간 포착과 찰나의 깨달음을 압축하여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둘은 닮았다. 나는 사진과 시가 만나 생성하는 짧고도 깊은 울림을 좋아한다. 그것이 디카시가 가진 장점이다.
텍사스지부는 주 전역을 아우르는 만큼 부담이 컸다. 앞으로 디카시 강연과 공모전, 작품집 출간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디카시를 접할 수 있도록 애써 볼 생각이다. 신인 발굴은 물론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길도 모색 중이다. 문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손안에 있다. 모두 함께 디카시라는 씨앗을 심어 보면 어떨까. 아무쪼록 그 씨앗이 잘 뿌리내려 좋은 나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