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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고대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Last updated: 10월 18, 2025 5: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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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쉬는 일’이라고 말하겠다. “아니 쉬는 일이 가장 쉽지, 뭐가 어려워?”라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건 대학만의 특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교수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 같다. 어려운 ‘쉬는 일’이라. 학교에서 수업을 끝내고 집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쉬면 될 것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문제는 학교에서 생각하던 논문 생각이 떠나지 않고 이것을 마무리 짓는 일, 제출해야 할 논문 마감일, 학생 연구를 비평해주는 일, 마감일에 맞춰 연구비 신청하는 일, 다음날 수업 계획 등등에 생각이 항상 머물러있어 편히 쉴 수 없다는 데 있다. 퇴근하고도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초조해지고 저녁 후에 티브이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거나 할 때도 계속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심지어 일을 떠나려고 여행을 가도 책이며 공부할 논문들을 가방에 잔뜩 집어넣어야 안심이 된다. 그렇다고 그걸 다 읽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운동할 때 또 그림을 그릴 때 잠깐씩 일을 잊을 때가 있지만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던 날들이 있었든가 생각해보니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은 내 삶의 중심이었고 내 휴식이다. 그러니 가끔은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에 걸쳐 8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그 일을 다 잊어버리고 쉴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을 해서다. 


최근에 작가 한강의 시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다가 이 시인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여서 이런 시를 짓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전업 작가로 살면서 작품을 쓰다 보면 언제 쉬는 시간인지 언제 일하는 시간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지고 24시간 작품 생각만 하게 되지 않을까?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같은 대작을 쓰면서는 제주도에 따로 집을 빌려 몇 년간 글을 썼다는데 그러다 보면 일에서 벗어나 긴장을 풀어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듯이 말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안 하고 싶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 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

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아마도 시인은 저녁 무렵 저녁 배달시켜서 서랍에 넣어 두었으리라. 책상에서 글을 쓰다가 배달 음식을 받아 글을 쓰던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다시 글로 돌아간 것이 자연스럽다. 조금 있다가 일을 멈추고 저녁을 꺼내 옆으로 간다. 옆방이라도 좋다. 책상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이, 지금 하던 일과 생각을 멈추는 것이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작가의 퇴근이 되리라. 너무 늦게 일하면 저녁을 거를 수도 있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저녁이 식기 전에) 책상에서 컴퓨터를 닫고 옆방으로 혹은 책상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이제 일에서 멀어져 저녁을 먹으면 하루가 가벼워지고 휴식을 할 수 있고 직장에서 퇴근하는 것이 된다. 같은 방에서라도 일에서 멀어지며 하루를 끝내고 퇴근하는 직장인 같이 쉴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방에서 내일 출근을 하듯이 일을 시작하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퇴근이란 것을 하면서 일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


‘서랍에 넣어두는 저녁’ 대신에 작가의 ‘시’로 대치하면 퇴근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저녁을 먹는 일은 소설과 다른 시를 생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첫 시집의 제목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일까? 시집 제목의 시가 시집에 없는 이유가 이 시집이 작가의 서랍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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