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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밥상 차리기

Last updated: 7월 6, 2023 3: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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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무기로 물을 뿜었다. 종이 행주로 물이 뿌려진 식탁을 꼼꼼히 닦았다. 

가족 수만큼 식판을 배치하고 수저받침을 놓았다. 식기 세척기에서 꺼낸 후 광이 나도록 더 닦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뚜껑을 덮어 놓은 생선 전용 프라이팬 속에서 고등어가 지글거리며 익어가고, 가스레인지 위 뚝배기에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찌개 위로 보드라운 두부가 들썩거렸다.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썰어 넣었더니 더 먹음직해 보였다. 

전기밥솥이 친절하게 밥이 다 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압력 손잡이를 돌리고 뚜껑을 여니 하얀 김이 쏟아져 올라왔다. 구수한 밥 내음. 식탁을 차릴 준비가 되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생각을 못 했다. 우리의 휴가가 끝나고 각자의 직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그 만만찮은 일이 시작되었다. 

밥상 차리기.

결혼 전엔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다. 

장거리 여행을 다녀야 하는 직업이라 집에 오면 흐드러지게 잠을 자는 딸에게 부엌일까지 시키기 싫었는지 어머니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밥을 안 해본 채 결혼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면 서둘러 빵을 굽고 달걀 프라이를 만들었다. 아침엔 간단한 음식만 먹으면 좋겠지만, 남편은 밥을 더 좋아했다. 당연히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다. 직장에 지각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면 진땀이 나곤 했다. 퇴근이 남편보다 늦었지만, 저녁 준비도 내 몫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거의 매일 저녁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콩나물국은 어떻게 끓여요?”

“글쎄, 적당히 넣으라면 얼마큼 넣는 거예요?”

‘간을 적당히 해서 알맞게 끓여라.’와 같은 지침은 요리 초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나 다름없었다. 알려주시는 내용을 빼곡히 수첩에 적었지만, 갈 길은 멀었다. 

퇴근 후 8시경부터 시작한 저녁 준비는 빨라야 9시 반쯤 끝나고 식사 후 뒷정리까지 마치면 11시가 되었다. 주말마다 음식 재료를 잔뜩 사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도 일이었다. 

재료를 다듬고 씻어 알맞은 크기로 써는 것도, 불 조절을 잘해서 태우지 않고 익히는 것도 새색시에게는 도전이었다. 요리에 감이 없는 데다 손도 느리고 둔해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쩔쩔맸다. 이 일을 매일 끼니때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심지어 평생 해야 한다는 것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는 밥상 차리기에 최선을 다하셨다.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외출하시는 법은 없었다. 

밥을 지어 먹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덕에 나는 매일 아침 따뜻한 새 밥에 새 반찬을 먹고 학교에 갔다. 

화려한 요리는 아니었지만, 음식의 맛이 조화롭게 어울렸고 간도 적당해 가족들은 밥 한 그릇을 비우고 더 먹기 일쑤였다. 식 간에는 소박한 간식들을 내셨다. 옥수수, 부침개, 고구마, 식혜, 다양한 제철 과일 등 먹거리는 항상 충분했다. 

어머니는 애정 표현이 서툰 편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그날 일들을 조잘조잘 얘기해도 보통은 대답 없이 듣기만 하셨다. 생각해 보면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상하게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입맛을 잃은 아버지께는 미나리를 듬뿍 넣은 게 찌개를, 시험 기간에 핼쑥해진 내게는 조개 미역국을,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는 동생에게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내놓으셨다.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조용히 상에 올리는 것으로 관심을 나타내신 셈인데, 그것은 최고의 위안이 되곤 했다.

나도 밥상을 차려 온 지 30년이 되어간다. 큰아들이 독립해 나간 후 10인용 전기밥솥을 5인용으로 바꾼 것 말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며칠에 한 번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오늘 저녁은 뭐 해먹이나 고심한다. 신혼 때부터 어머니 레시피를 적어 온 수첩엔 이제 제법 많은 요리 비책이 올라가 있다. 

국물 얼룩이나 조미료 자국이 여기저기 묻어있긴 하지만, 두 아이는 그 수첩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제는 음식 솜씨가 조금 늘었고 엄마 음식이 최고라는 찬사도 가끔 듣는다. 

객관적으로 그 정도는 아닌 게 자명하니 자식들에게는 엄마 음식이 최고인가 보다. 아들은 저녁 메뉴가 뭐냐고 자주 묻는 편이다. 그럴 땐 가끔 어머니의 열심을 떠올린다. 가족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배고픈 갓난아기에게 따뜻한 젖을 물리는 것만큼 절실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배를 채우고 마음을 채워 세상과 다시금 마주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이요, 따뜻한 응원가 같은 것이 아닐까.

구운 고등어 한 마리를 아들이 거의 혼자 먹어버렸지만, 그걸 바라보는 일은 흐뭇했다. 자식들에게는 비밀이지만, 여전히 밥상 차리는 일은 버겁고 재미없다. 어쩌면 우리 어머니도 무한 반복되는 그 일이 지겨우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재미없는 일로 가족이 행복하고, 그 모습 보는 것도 보람이 되니 밥상 차리기는 힘닿는 날까지 계속될 것 같다.  얻는 것이 많아 차마 버릴 수 없는 일이다. 

 

백경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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