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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몸에 초록불이 켜졌다

Last updated: 10월 15, 2021 9: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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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에 초록 불이 켜졌다!”

 

“자, 누워요. 무릎을 세우고 두 발은 벽에 붙이세요. 두 손은 앞으로 뻗고 ‘흐~읍’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고 짧게 ‘파’소리를 내며 숨을 아랫배로 뱉는 동시에 숨을 멈추고 윗몸을 일으키세요.”

순간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지난 시간에는 못했다. 아니, 안 되었다.

“언니는 왜 안 하는데?”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선생님은 호통을 쳤다. 멋쩍어 죽겠다는 내 표정에서조차 서성거림을 봤는지 선생님은 재차 목소리를 높인다. “된다, 할 수 있다고!”

호통치는 소리에 놀라 큰 소리로 “흐~읍, 파”하고 숨을 뱉어내고 윗몸을 일으켰다. “오! 되네.” 드디어 해냈다. 됐다. 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집이 묵은 고집을 해체하는 순간이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도 일어난 듯 기염을 토해내고 말았다. 

윗몸 일으키기는 고등학교 때 체력검사 이후 해본 적이 없었다. 짝이 양발을 눌러주고 남들 몰래 살짝살짝 등을 밀어주어도 몇 개 못 하고 손을 들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윗몸 일으키기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웬일이란 말인가. 이보다 더 신통한 일이 또 있을까. 멋진 일이었다. 

운동 시작하고 겨우 일곱 번째 날에, 그것도 누군가가 발을 눌러주지 않아도 혼자서 올라오고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심지어 올라가고 내려가는 중간중간 멈추게 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직은 근육이 허술해서 마지막까지 잡고 있지 못하고 털썩 땅에 떨어지고 말지만, 머지않은 날에 마무리도 근사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지하는 법을 알아야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다. 숨을 참으면서 이루어내는 동작은 더 깊은 동작으로 이어져 더 많은 근육이 몸 안에서 일을 하게 한다. 

내 몸은 나를 만나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몸 안에도 수많은 멋진 근육이 있을텐데 그걸 알아보는 감식안이 내겐 없으니 매일 불려 나오는 근육들만 혹사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뭉쳐서 난동을 부리는 것 아닌가. 자주, 아주 자주 선생님은 내게 야단을 친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피 튀기겠다!” 얼굴이 벌게져서 이마에 핏줄이 솟아오를 때마다 터질까 무섭다고 한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고함을 친다. 엉뚱하게 열심인 게 보기가 민망했지 싶다. 

아직도 쓸데없이 쓸데없는 일에 열심인 걸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용을 쓰고 살았나 보다. 하지만 오십여 년 세월을 무지막지하게 살았으니 하루아침에 고쳐질 리 만무다. 

 

저질체력이라는 생각이 몸의 한계점을 미리 정해놓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안 될 거라는 생각으로 몸의 소리를 차단하고 살아왔다. 여기저기 꾹꾹 쑤셔대며 몸이 대화를 걸어오는 것도 모르고 아프다고만 했다. 

한국 다녀올 때마다 파스라는 파스는 종류별로 다 사다 싸놓고 주섬주섬 붙이고 살았다. 여기 주물러줘 저기 좀 주물러 줘 하며 옆에 있는 사람 많이 귀찮게 했다. 성의 없이 해준다고 성질은 또 얼마나 부렸던가. 

마사지 기계에 안마기까지 사 나르다가 그걸로도 부족해 가게 뒤 편에 중국 사람이 하는 마사지샵으로 남편한테 끌려가기도 했었다. 

 

나 스스로 근육을 단련해서 스스로 반듯하게 설 생각을 못 하고 남에게 기계에 약에 의존하며 살았다. 너무나도 중국스럽게 생긴 아주 낯선 사내에게 몸을 맡기고 누워 아프게 훑고 내려가는 손맛에 “시원해 시원해”를 남발하다 단잠을 잔 날도 있었다. 

무심했던 나를 책망이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닫아걸고 있던 몸이 조금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몸의 자세와 체형은 물론, 하체근육만 보아도 그 사람의 삶이 그려진다는 선생님은 어설펐던 내 동작에 자신감이 생기면 바로 알아차린다. 

“바로 그거, 그게 바로 내 것, 꼭 기억하세요!” 이 말을 들을 땐 잊고 있었던 정인의 목소리라도 들은 듯 마냥 반갑고 설렌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의 고집이 하나씩 풀리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은 황홀하다. 

첫돌을 맞던 그 날, 첫 아이가 달음박질하는 모습을 보던 것만큼이나 경이롭다. 촛불이 꺼져가던 방안이 갑자기 백열전구가 켜진 듯 마음이 환해진다.  

 

요즘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들떠있다. 내 몸과 사랑하는 중이다. 무뎌진 나를 갈아 세우기 위해 갓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몸의 소리에 성실히 경청한다. 깊게 숨을 뱉어내며 시도 때도 없이 나서는 어깨에서 뽕을 빼 다리미로 누르고 조이기만 했던 마음의 응어리는 풀어내고 헐거워진 나사는 조인다. 

잘 내려오고 잘 넘어지기 위해 좋은 것들을 먹이고 들려주며 걷고 서고 앉는 모든 자세에도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나이듦이라는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결한 삶이라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숨어있는 잔 근육을 만나는 일은 생경하다. 몸이 바로 인생이다. 큰 근육으로만 살수도 있지만, 작은 근육을 찾아내 함께 갈 수 있다면 삶의 질은 더욱 풍성해질 것 같다. 

삶도 꿈만 좇는 큰 걸음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있는 소소한 것들과 교류하며 걷는다면 더 값진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가을이다. 이 가을은 세상에 둘도 없는 가을이 될 거 같다.

 

칼갈이 스다께씨 / 김미희

 

이민 오십 년을 지내오는 동안

칼날을 세우며 살고 있는 스다께 씨

연장궤 위에 숫돌을 올려놓고

무디어진 가위 쌍날에 진검승부를 건다

 

육전(陸戰)의 뒷골목을 쓸고 온 이 빠진 날

온갖 풍문으로 서슬 퍼레진 날

헛된 욕망으로 탕진한 날

젊은 날, 그 날들을 갈아

절제된 손놀림으로 세워지는 서슬

한 치의 오차도 허락되지 않게 날을 핥는

검은 테 속의 매서운 눈은 언제나 시리다

 

무딘 것이 날을 세우는 일은

누군가를 다스리겠다는 것 아닌가

속내에 갈아 둔 날 행여 열릴라

아예 입 꽉 다물고

쌍날 세우는 소리로 만족해야 하는 침묵

 

이 날도 세운 한 날로

일상의 자투리 한쪽 받아 쥐며

굽신 절을 남기면 어떠랴

승부는 언제나 스다께씨 손을 들어주고 있으니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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