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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백수白壽 잔치

Last updated: 4월 27, 2024 6: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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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라는 단어가 이렇게 슬픈 것인지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자꾸 쇠약해 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어머니’라는 단어 속에 숨어있는 사랑보다 더 위대하고 거룩한 ‘희생’이란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요즘은 문득문득 (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를 되뇌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는 마음 때문인가 봅니다. 울먹이며 부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 첫 소절부터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이 핑 돌다가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에서는 끝내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맙니다.

자식한테 위대하지 않은 어머니는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에 어머니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로 99세, 백수가 되신 우리 어머니, 강옥순 권사님. 한 세기를 꽉 채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일찍 여의시고 4남 3녀를 혼자서 기르느라 정말 애쓰셨습니다. 이제는 비록 늙고 힘은 없지만, 그래도 기도 소리만큼은 여전히 세상을 울리고도 남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유일한 ‘영웅’이셨습니다.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오신 긴 세월, ‘희로애락’이 파놓은 깊은 주름살 속으로 자식들의 나이테가 보입니다. 당신의 의무는 오래전에 끝이 났고 이젠 자식들의 의무만 남은 이 자리에서 자식들은 무릎 꿇어 감사의 절을 올리고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합니다.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오늘까지 저희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말없이 몸소 가르치시고 일깨워주신 사랑,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의롭게 살아가며 어머니께 받았던 그 사랑 실천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저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어머니.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머니가 저의 어머니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친구 어머님의 백수 잔치에 다녀왔다. 구순이 되셨을 때는 “어머니”라는 시를 지어서 읽어드렸는데 백수 연에는 어머니께 올리는 편지를 친구의 마음을 담아 써서 읽어 드렸다. 

이민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난 친구는 이제 삼십 년 지기가 되었다. 이만하면 고향 친구, 소꿉친구 비슷한 관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어 마다하지 않고 나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백수 잔치에 다녀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많은 분이 나와 같을 거로 생각한다. 백 세 시대라고는 해도 가까이 계신 분이 백수를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경사는 동네잔치를 벌여야 한다. 가마솥 두세 개쯤 큰 마당 한복판에 걸어 놓고 그 위로 천막을 치고 동네 떠나가라 만국기 휘날리며 풍악을 울려야 마땅하다. 종일 국숫물이 가마솥에서 끓어 넘치고 기름 냄새와 함께 막걸리에 젖은 웃음소리가 이웃 동네까지 퍼져야 한다. 

비록 손자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백수를 맞은 친구 어머니의 웃는 모습은 여전히 순수하고 예뻤다. 맑고 경쾌했다. 다섯 번이나 성경을 필사 하신 이력이 말해주듯 거대했고 존경스러웠다.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곁을 지켜 주신 어머니도 한때는 가엾은 여자, 연약한 여자. 눈물 많은 여자였을 것이다. 자식들 하나둘 생기면서 꿈 많던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너무 따뜻해서 도리어 슬프고, 또 무거운 엄마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가 자식들 무서워 울 수도 없는 여자가 되었을 것이고 함부로 아플 수도 없는 여자가 되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혼자되신 어머니는 홀로 세상과 맞서기 위해 터미네이터가 되어 팔십 여년을 엄마로 살아온 것이다. 사는 게 버거워 주저앉고 싶은 때도 많았을 텐데 그땐 어떤 생각으로 버텼을까 궁금했다. 달리듯 걸어도 지치지 않던 날은 어느덧 저문 지 오래됐고 헐렁해진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도 자주 서서 가쁜 숨을 돌려야 하는 날이 된 것이다. 

그렇게 친구 어머니는 주름살 가득한 할머니가 되고 증조할머니가 되었지만, 태초부터 엄마였던 사람처럼 여전히 자식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다. 

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살아오셨길래 아무나 맞을 수 없는 백수를 온전하게 맞으셨을까. 얼마나 많은 것을 참고 인내하며 살아야 했을까. 필시 기쁘고 행복함 만으로 가득한 삶은 아니었을 것인데 참으로 존경스럽다. 

나는 연회가 이어지는 내내 벙글거리는 친구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리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를 떠올릴까 궁금했다. 

나는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름 지혜롭게 자식 둘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빈 깡통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시끄러워서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음악을 별로라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이만큼 살다 보니 조용한 게 좋다. 속 시끄럽게 하거나 귀 아프게 하는 소리는 피하고 싶다. 빈 깡통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우그러지지 않았기에 감정 쓰레기통도 되어 줄 수 있었던 것일 텐데, 그건 감사한 일이 아닐까 싶다. 더러 남 보기에 비었는지 모르지만, 우그러지지 않아 공명한 소리를 내며 순한 마음으로 살다 보면 하늘이 정해준 그날까지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백수가 아니면 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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