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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로나, 페스트, 에볼라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KTN Online
Last updated: 6월 5, 2026 1: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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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편집국장 유광진

아직도 기억한다. 2020년 봄, 달라스의 거리가 텅 비었던 그 날들을.

교회 문이 닫히고, 아이들 학교가 멈추고, 요양원에 계시는 노부모님께 선뜻 찾아가지 못하던 그 막막함. 마스크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이 약국 저 약국을 전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인 식당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오랫동안 함께 예배드리던 성도들과 화면으로만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그 고립감과 두려움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지금 아프리카 콩고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또 시작인가”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면서도, 이번만큼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알베르 카뮈가 먼저 경고했다

1947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소설 《페스트(La Peste)》를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직후, 전쟁의 상처가 유럽 전역에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소설의 배경은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Oran). 어느 날 갑자기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도시 전체가 외부와 단절된다. 사람들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설마, 우리 도시에서, 설마 이 시대에. 그러나 죽음은 멈추지 않는다.

소설 속 주인공 리외(Rieux) 박사는 탈출도, 도망도 선택하지 않는다.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환자 곁을 지키고,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의 곁에는 처음엔 이방인이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함께 싸운다.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전염병을 단순한 의학적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실존적 시련으로 그렸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읽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수십 년 동안 가구와 침구 속에서, 방과 지하실과 트렁크와 손수건과 서류 더미 속에서 참을성 있게 잠들어 있다가, 언젠가 다시 쥐들을 깨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카뮈가 이 글을 쓴 것은 80년도 더 전이다. 그런데 지금, 이 문장이 뉴스 헤드라인처럼 읽힌다.

역사는 반복된다 — 에볼라의 귀환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에서 처음 발견됐다. 그 후 50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을 반복해서 강타했다. 2014~2016년 서아프리카 대유행 때는 11개국으로 번져 1만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도 세계는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2026년 다시 콩고 동부에서 에볼라가 번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6월 초 현재 의심 사례 1,077건, 사망자 238명으로 집계됐다. 확진 사례만 125건, 확진 사망자 17명이며, 5월 27일에는 두 차례 음성 판정을 거친 첫 번째 완치 퇴원 사례도 나왔다. 그러나 전체 상황은 여전히 악화 중이다. 우간다에서도 콩고에서 유입된 확진 사례 2건과 사망자 1명이 보고되며 인접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치료 시설이 불에 타거나 총격을 받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번 에볼라가 특히 우려스러운 이유가 있다. 이번에 퍼지고 있는 균주는 ‘분디부교(Bundibugyo)’ 계통으로, 2019년 승인된 기존 에볼라 백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자이르(Zaire) 균주용으로 개발된 백신이기 때문이다. 분디부교 균주에 대해서는 현재 승인된 백신도, 검증된 치료제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발병 지역인 콩고 동부는 수십 년째 내전과 무장 반군이 활동하는 곳이다. 의료진이 현장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다.

“아프리카 얘기잖아요”라고 넘길 수 없는 이유

처음에는 콩고가 멀고 직항도 없기에 우리 일상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런데 코로나19도 처음엔 그랬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의 원인 불명 폐렴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던가. 불과 석 달 만에 달라스 학교가 문을 닫았다.

WHO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행기 한 편이면 바이러스는 지구 반대편에 닿는다. 국제선 항공편이 오가는 한, 어떤 감염병도 특정 대륙만의 문제로 머물지 않는다. 코로나19가 그것을 온몸으로 가르쳐줬다.

공포가 아니라 준비

공포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의 시간 동안 반대로 행동했다.

교회 문이 닫혔을 때 누군가는 주차장에서 예배를 드렸고, 식당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온 동네가 테이크아웃 줄을 섰다. 마스크가 귀하던 시절, 이웃집 문 앞에 조용히 봉투를 놓고 간 손이 있었다. 말 한마디 없이도 “우리 여기 있다”는 것을 서로 알았다.

그것이 달라스 한인 커뮤니티의 힘이었다.

에볼라가 우리 문 앞까지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상이 또다시 흔들리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다시 그렇게 할 것이다.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것. 그것이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가 오랫동안 몸으로 익혀온 방식이다.

카뮈는 페스트균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카뮈는 이런 글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경멸할 것보다 감탄할 것이 더 많다(There are more things to admire in men than to despise).”

우리가 바로 그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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