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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두 헌법 아래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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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7월 17, 2026 1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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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편집국장 유광진

잊혔던 하루, 되돌아온 하루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는 이날이 올해 18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돌아왔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됐다. 새롭게 출발하는 나라가 어떤 국가가 될 것인지, 권력의 주인은 누구인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약속이 세상에 선포된 날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전쟁과 가난, 독재와 민주화의 격랑을 지나왔다. 헌법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나 헌법이 품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시민의 자유는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제헌절은 조금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문득 지갑 속 두 장의 신분증을 떠올려본다. 하나는 미국 운전면허증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이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필자의 지갑 안에는 여전히 대한민국 주민등록증이 남아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준다.

다른 역사, 같은 질문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미국의 헌법 질서와 법체계 안에서 살아간다. 지난 독립기념일에 우리는 태극기와 성조기, 두 깃발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정체성을 생각했다.

그 두 깃발 뒤에는 두 나라의 헌법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며,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미국 헌법 역시 “We the People”, 곧 “우리 국민은”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두 헌법은 서로 다른 역사 속에서 태어났지만 같은 원칙을 품고 있다. 국가는 권력자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원칙이다.

종이 위의 자유, 법 위의 권력

헌법은 법률가들만의 문서가 아니다.

마음 놓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신앙에 따라 예배드릴 수 있는 자유, 정부를 비판하고 부당한 권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 헌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헌법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권력에 선을 긋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동시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한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 그것이 법치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헌법과 법치는 권력자보다 평범한 시민에게 더 중요하다. 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평범한 시민이 국가와 권력 앞에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강한 방패는 법이기 때문이다.

법치는 권력자와 시민 모두가 같은 법 아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이 사람과 진영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이다.

우리가 사는 곳의 민주주의

두 헌법 아래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는 헌법이 보장한 자유를 누리면서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한 책임도 다하고 있는가.

한인사회는 한국의 정치와 사회 문제에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도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선거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우리의 재산세와 자녀 교육, 지역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의회와 교육위원회에는 무관심하지 않은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구경꾼으로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주의는 선거일 하루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동네와 학교, 시청과 주의회에서 매일 만들어진다.

헌법도 저절로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문장이 적혀 있어도 그것을 지키려는 시민이 없다면 자유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절차가 불편해도 원칙을 지키고, 자신에게 불리해도 법을 존중하며, 권력이 정해진 선을 넘을 때 침묵하지 않는 시민이 있을 때 헌법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다음 세대에게 남길 약속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경험해왔다.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일할 자유, 말할 자유, 신앙의 자유,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웠다.

이제 그 가치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도 있다.

한인 이민 1세대는 자녀들에게 더 좋은 교육과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주어야 할 것은 경제적 기반만이 아니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것,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도 법의 원칙은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자유는 시민의 책임과 참여를 통해 지켜진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제헌절은 오래전 헌법이 만들어진 날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권력은 여전히 법 아래에 있는지, 시민의 자유와 권리는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 우리는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날이다.

헌법은 종이 위에 있을 때가 아니라 시민의 양심과 행동 속에 있을 때 살아 있다.

7월 17일, 다시 돌아온 제헌절이 우리에게 묻는다.

두 헌법 아래 사는 우리는 그 헌법이 지켜온 자유를 누리면서, 그 자유를 지킬 책임에 얼마나 충실한가.

TAGGED:KTN 편집국장 유광진데스크칼럼제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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