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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명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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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4월 20, 2026 8: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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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

  우리 집 홈통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 자재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드나들며 자기가 살 공간을 견고하게 구축했다. 나무 위에 지으면 안전하고 좋을 텐데, 왜 하필 물 내려가는 홈통에 짓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급기야 알을 낳았다. 몇 개를 낳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새알 하나가 홈통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고 앞에 노른자와 깨진 껍질이 널브러졌다. 더러운 꼴 못 보는 남편이 출근하려다 그 광경을 보았다. 새를 쫓아보려 홈통을 빗자루로 탁탁 쳤지만, 새는 잠시 위쪽으로 날아갔다가 일 분도 안 되어 제 자리로 돌아왔다. 몸짓이 불안해 보였다. 새가 쉽게 물러서지 않자, 남편은 퇴근 후 새집을 치워버리겠다고 호기를 부렸다.

  어미 새는 종일 지붕과 울타리를 오가며 지저귀었다. 노래가 아니라 잃은 알 때문에 우는 것 같았다. 울타리 끝에 위태롭게 앉아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기도 했다. 새끼 잃은 어미 심정이 미물이라고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얼기설기 지은 둥지에서 알을 품는 어미 새의 모성은 인간이 휘두르는 빗자루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새집 치우기를 포기하고 잘살라고 축복해 주었다.

  새 이름이 “우는비둘기(Mourning dove)”라는 걸 그즈음에 알게 됐다. 그 새도 누군가 명명해 준 이름이 있었다. 검색해 보니 “비둘기과에 속하며 울음소리가 애도하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서 애도비둘기라고도 부른다”라고 적혀있었다. 새 울음을 제대로 파악한 듯했다. 새는 그저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머무는 거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했다.

  “명명하다”라는 말에는 사물에게 이름을 지어 준다는 뜻도 있다. 이름은 보이지 않던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름에는 저마다 의미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내 이름을 지을 때 어질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 “인애”라고 지었던 것처럼 말이다. 새는 알을 품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미 새도 새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줄까. 그렇다면 분명히 잘되기를 바라는 염원과 애정을 담아서 지었을 것이다.

근간, 지인 세 분이 소천하셨다. 죽음은 예고 없이 한 사람의 시간을 멈춘다. 부재의 눈물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쉽게 삭지 않는다. 속울음은 쉬지 않고 일렁이다 땅속에 묻힐 때쯤 지워질 것이다. 그래서 애도하는 거 아닐까, 애도비둘기처럼.

  지난 14일, 한국디카시인협회 텍사스지부 창립식이 있었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고 힘들었다. 운전을 못 하니 이번에도 딸내미가 고생했다. 행사의 여왕이라고 누군가 명명해 준 이름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행사를 위해 한국에서 김종회 교수님과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님이 오셨다. 한 분은 은사님이고 한 분은 글 벗이다. 행사에 초대한 분 모두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들이었다. 소중한 인연들이 디카시라는 이름으로 모여 나누고 축하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디카시를 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3년 7월, 한국디카시인협회로부터 지부 인준을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창립식이 늦어졌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수님께 미국 오시는 길에 창립을 도와주십사 부탁드렸다. 긴 얘기 짧게 하면, 혼인신고만 하고 살다가 결혼식을 올린 거다. 나는 한국디카시인협회 텍사스지부장이라는 이름을 명명 받았다. 한동안 그 이름으로 살게 될 것 같다. 직책이 주는 무게가 있다. 절대 가볍지 않다. 그래서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임기를 마쳤을 때도, 북텍사스이북도민회 회장 임기를 마쳤을 때도 이제 단체장은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있는 직책도 내려놓아야 할 나이에 하나를 더 얹었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피할 길은 없다. 그래서 기꺼이 감당해 보려 한다.

  살면서 수많은 이름으로 살아왔다. 딸, 아내, 엄마, 며느리, 학생, 선생님, 시인, 수필가…. 그 이름 속에서 나는 늘 나를 낮추고 맞추고 섬기며 살았다. 이름이 요구하는 자리로 조금씩 옮겨갔다. 단체장이라는 이름은 누군가의 기대를 품고, 방향을 제시하고, 지키고 세워가는 자리다. 그래서 명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날이 흐렸다. 간간이 비도 뿌렸다. 단체를 이끄는 건 그 날씨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두렵지만 영원한 내 편들이 응원해 주었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온 삶에도 흐린 날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간, 버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던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야생화의 봄을 생각했다. 돌보지 않아도 뿌리내리고 해마다 다시 일어나 피어오르는 그 힘을 믿었다. 불루보닛은 가까이서 보면 작고 여린데 멀리서 보면 들판을 바다처럼 바꾸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배우고 싶다. 한 송이가 아니라 함께 피어야 비로소 풍경이 되는 꽃. 버티고, 때를 기다리고, 피어오르기를 소망한다. 댈러스뿐만 아니라 인근 도시에 디카시라는 씨앗을 뿌리고 확산하기를 바란다.

  우는비둘기가 날아올랐다. 나도 새로운 이름 쪽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우는비둘기처럼 조용히 견디되, 블루보닛처럼 끝내 함께 피어나는 쪽으로.

TAGGED:박인애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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