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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백경혜] 떠나갈 나에게

Last updated: 6월 8, 2024 2: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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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시간을 운전하여 내슈빌에 왔다.

 
댈러스에서 주간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670마일 달려온 이곳에서 아들을 만났다. 기숙사를 비워야 하는 방학
때마다 오는데
, 어쩌다 두 아들이 같은 대학에 다니게 되어서 칠 년째 오가는 중이다. 가져올 짐이 많다는 핑계를
대지만
, 사실 오고 싶어서 온다. 울창한 숲 가운데로 고속도로가 나 있어서 긴 시간 운전도 할 만하다. 카페인 짱짱한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볼륨을 한껏 높인 음악 속에 잠겨서 한적한 도로 위를 날아갈 듯 달리는 것에는 묘미가 있다
. 드라이브하는 동안 나는 낯선
땅에서 애면글면 살아내느라 쪼그라든 가슴 깊은 곳에서 팔팔한 마음 한 움큼을 끄집어올린다
. 그것을 생기나 패기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

 
기품 있고 활기찬 캠퍼스도 볼거리다. 시내에 있는 대학인데도 여름밤엔 수백 종의 나무들 사이로 반딧불이 떠다니는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캠퍼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쇼트 팬츠에 스니커즈를 신은 학생들과 섞여 앉아 있으면 안 나오던 글이 슬슬 풀리기도 한다
. 젊음은 일종의 에너지인가 보다.

 

 
아들 방은 동굴 같았다. 책상 주변만 동그랗게 치웠고 주변으로 빨아야 할 옷가지며 잡동사니가 쌓여 있었다. 그나마 다 먹은 음식 봉지와
투고 박스들은 치웠다는데
, 여기서 건강하게 잘 있어 준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이불을 걷어 세탁하고 창틀의
먼지를 닦았다
. 제출 기한이 임박해야 집중이 되어 느지막이 숙제를 시작하는데, 코딩이 안 풀릴 땐 며칠이고
하얗게 밤을 새웠다고 했다
. 하여간 다 커서도 아슬아슬하게 군다. 책상 위엔 몬스터 인형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 비디오 게임 속 캐릭터다. “얘네들이 널 지켜줬구나?” 하니 “응, 얘도…” 하며 모니터 아래 누워있는
또 다른 몬스터를 일으켜 앉혔다
.

 
아들은 185센티가 넘는 키에 큰 체구다. 거구의 아들이 상상 속 몬스터에게 위안받으며 치열하게 공부하는 걸 상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몸이 자라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잡지 못한 걸까
. 온화한 성품의 작은아들은 햇볕에 널었다 들여온 솜이불 같아서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아들 마음속에 살고 있는 어린이가
천천히 떠나도 나는 좋을 것 같다
.

 

 
아들도 참 이쁘다. 꼬물거리는 입에 조그만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먹이고 잠 못 들어 칭얼거릴 땐 품에 안아 흔들며 자장가를
불러 재운 것은 아들이나 딸이나 마찬가지다
. 잘 먹고 순조롭게 자라는지, 친구는 잘 사귀는지, 공부 안 하고 빈둥대지는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정성껏 키우는
것도 매한가지다
. 그런데 다 자란 딸과 친한 엄마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반면, 아들과 친한 엄마는 어쩐지
눈총을 받는 것 같다
. 어떤 이는 “서운하게 할 날이 머지않았으니, 마음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거다
.”라고 충고한다. 그 아들에게 마마보이 프레임을 씌우기도 한다. 딸을 키웠어도 무척 친했을
터인데
, 다소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억울해도 별수 없다. 반은 맞는 얘기 같으니까. 큰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 아들은 가족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 달라진 태도에 적응이 안 돼
한동안 어리둥절하고 섭섭했다
.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임을 결국엔 배우게 되었다. 여자아이였다면 비교적 유연하게
자기를 설명했을까
. 아들이 딸보다 더 단호하고 확고하게 독립해 가는 건 사회적 요구와 남성 호르몬이 한몫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둥지가 좁아지면 다 자란 새는 둥지를 떠나야 하리라. 깃털을 단장하고 데이트를 나서는
새가 둥지까지 돌 볼 여유는 없을 것이다
. 자기 인생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으니 이왕이면 훨훨 날아가 멋지게 자기를 어필하기 바란다. 부모를 떠나 독립된 사회의
일원이 된 자식은 정서적
,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 자신의 문제들을 스스로 극복해야만 강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것은 딸과 아들에게 예외가
없다
.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아진 탓인지 요즘은 부모들도 많이 변했다. 자식만 바라보며 사는 엄마를
주변에선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 아들에게 집착하는 홀어머니 사연 같은 건 이제 사라져가는 옛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아들 엄마에 대한 편견도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 부모도 자식이 제때 떠나줘야 편하다. 모처럼 자유를 얻은 부모도
날개를 펼치고 멀리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 마음속을 들여다보자. 팔딱거리는 열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

 

 
파이널 시험을 마치고 온 아들이 의자를 한껏 젖히고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 슬슬 기숙사 짐을 싸야 하지만, 좀 놀게 놔둔다. 작은아들도 여문 청년이 되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 그때까지는 같은 둥지에서 살아온 정을 오롯이 나누고 싶다. 그리고 때가 되면 둘째도 기쁘게
떠나보낼 테다
. 가끔은 숲속에 한데 모여 흥겹게 노닐기도 하겠지. 하지만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의 궤도를 쫓으며 행복을 지지해 줄 것이다.

 
내일도 에너지 드링크를 몇 모금 들이켜고, 두고 온 내 둥지를 향해 신나게 날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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