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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우리 앞집 아줌마, 캔디

Last updated: 6월 14, 2019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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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자의 세상 엿보기’(peek through the window)

올해 오월엔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았다. 동남아시아 몬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비에 흐드러지게 피는 것은 장미만이 아니다. 채소밭 잡초들도 덩달아 쑥쑥 자라고, 포도나 오이 넝쿨은 이미 자신들의 구역을 넓힌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작년에 심은 접시꽃이 오랜만에 꽃을 피웠다. 난 지인들에게 이 귀한 팥죽색 접시꽃 사진을 보내면서 ‘도도한 그녀’라 명명했다. 뭐든지 흔하지 않은 것은 다른 법인가 보다.

이번 주말 남편은 피정을 떠나고 집에는 강아지와 나만 있다. 하늘은 드높고 들판에 야생화는 여름을 향하여 그린 그린 하고 있다. 모처럼 훌쩍 자란 케일을 수확하려고 뒷마당으로 나서는데, 못 보던 염소가 뒷집 마당과의 경계선에서 풀을 뜯고 있다. 자세히 보니 3마리인데 두 마리는 하얀색이고 1마리는 검은색이다. 이윽고 한 놈이 우리마당으로 건너와 풀을 뜯다가 나를 보더니 뒤따라온다.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애완용염소 임이 틀림없다. 곧이어 두 마리도 우리 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난 비록 크지는 않지만 염소 뿔을 보곤 줄행랑을 치는데, 이녀석들은 나무옆에 자란 쑥들을 점령하더니 곧바로 옆마당 장미꽃밭을 지나 앞마당 까지 와서 정원을 쑥대밭을 만들려고 한다. 대책이 안서기는 염소나 나나 마찬가지여서 난 무조건 앞집으로 달려갔다.

캔디는 저녁을 만들다 말고 나와서 상황을 눈치 채곤 우리 집 뒷마당으로 따라 나선다. 염소가 달아난 걸 알게 된 뒷집 린다도 자기네 뒷마당에 나와 있다. 손에는 아기 염소용 커다란 우유병이 들려있다. 캔디는 한 마리 씩 차례대로 안아서 린다에게 건네준다. 린다는 이 염소들이 아직 베이비 여서 아무 곳이나 가려고 한다며 엄살을 부린다. 린다와 캔디는 마치 애완용 강아지처럼 염소들이 몹시 귀여운 모양이어서 한참 동안이나 염소에 관한 수다를 떨고 있다.

캔디는 바로 우리 앞집 여자이다. 미국여자 치곤 작은 키에 화장기라곤 없는 수수한 얼굴인데 아주 부지런하고 동물들을 좋아한다. 송아지만한 개를 세 마리나 키우고 그것도 모자라 닭, 당나귀, 말 두 마리, 소 몇 마리등, 동물가족이 많다. 작년엔 염소 두 마리를 사서 마치 아기들처럼 플레이 팬 안에 넣어두고 키웠다. 고풍스런 집안에 새끼염소 두 마리가 풍길 내음과 소음을 생각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낼 일이다. 진정한 컨트리 우먼이다. 어려서부터 컨트리에서 자랐다는 그녀는 정원이나 채소밭 가꾸는 것부터 동물농장 관리 까지 못하는 것이없다. 처음에 재미로 시작한 무공해 달걀 판매도 이제는 없어서 못 판다. 가까운 이웃들이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농장구경도 하고 달걀을 사가는 것이다.

이렇게 겉으론 보기엔 영락없는 시골아낙인데 집안엘 들어서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집처럼 얼마나 근사하고 깔끔한지 부촌의 모델 하우스를 보는 것 같다. 실내장식도 훌룡할 뿐더러 아웃도어 키친에, 올림픽 사이즈처럼 큰 수영장에, 게스트 하우스까지 있는데,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다 청소를 하고 관리를 한다. 그래서 인지 캔디의 옷차림은 늘 밀짚모자에 셔츠와 작업복 바지, 목이긴 장화 차림이다. 닭이나 소 모이를 주거나 잔디를 깍거나 하는 집안일 역시 모두 그녀의 일이다. 소방서 대장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캔디 남편은 늘 맥주캔을 들고 다니며 유유자적하고 가끔 헤이(hey)를 사다주는 정도인데, 남편은 잔디 깎는 캔디를 보면, 캔디 남편인 탐을 엄청 부러워한다.

요즈음 한국티브이를 보면 대부분의 선전이 건강식품이나 화장품에 관한 것이다. 성형왕국 답게 성형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자신을 관리 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며, 전 세계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각종 화장품들을 사라고 아우성이다. 과연 서울에 가면 얼굴에 잡티 하나 없는 우아한 주부들이 넘친다. 친구는 요즘 부의 상징은 옷 보다는 명품 피부라고 말한다.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에 사는 여자들의 가장 큰 차이는 피부결 이라는 것이다. 백옥처럼 하얗고 광택나는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중동여자들처럼 눈만 내놓고 다니며, 햇빛 비치는 날 모자나 선블럭크림 없이 외출을 하면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 뙤약볕으로 유명한 텍사스에서 캔디나 나처럼 맨얼굴로 마당을 돌아다닌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과연 건강하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하고 되묻게 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과 스스로가 사랑한 삶은 확실히 표정부터가 다르다. 얼굴이 좀 타면 어떤가. 주근깨나 기미가 좀 있으면 어떤가, 이런 것들이 여자로서 실패한 인생의 흔적은 아닐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걱정과 불안으로 쫓기듯 사는 도시의 삶보다는 맨발로 땅을 밟으며 풀내음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석학 임어당선생은 “거죽의 비순수함과 위선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그리고 더없이 단순한 생각과 소박한 삶으로 되돌아가기 전에는 그 문명은 아직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고 역설했다. 캔디네 들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걸보니 이제 바야흐로 본격적인 텍사스여름이 시작 되었나 보다. 오늘따라 말썽꾸러기 캔디네 당나귀, 블루의 콧소리가 더 요란스럽게 온 동네를 깨우고 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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