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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여름의 맛

Last updated: 8월 13, 2021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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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이 지나고 중복 무렵부터 입맛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옛날 어른들이 여름이면 입맛이 없다며 걸핏하면 찬물에 밥 말아 짠지 한 조각 올려 식사하시던 이유를 알겠다. 이런 연유로 현명한 우리 조상들은 절기마다 어울리는 음식들로 이열치열하며, 더위와 질병을 예방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초복에는 삼계탕이나 초계국수,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중복, 말복에는 추어탕이나 장어구이, 전복, 콩국수 등 고단백 음식으로 몸보신을 해서 떨어진 기력을 보충했다. 또한 삼복더위에는 여행도 자제할 것을 권했는데, 이는 이웃이나 친척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요즘이야 시원한 실내에서 조리를 하니 그런 걱정이 없지만, 예전엔 무더운 여름에 손님이 오는 것처럼 큰 고역이 없다 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하고, 찬거리를 구해, 다듬어 대접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옛사람들은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절대 그냥 돌려보내는 일 없이 찬물에 미숫가루라도 한 그릇 타서 마시게 했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름에 누가 찾아오면, 동네에서 샘물이 가장 차고 맛있는 집에 가서 샘물을 길어오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도시였는데도 우물이 있는 집이 더러 있어 냉천수를 맛볼 수 있었고, 시원한 수박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24시간 냉방이 되는 미국살이를 하면 할수록 여름이면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소위 냉방병에 몸을 덜 움직이니 입맛이 생길 리가 없다. 이런 하소연을 했더니 이웃에 사시는 지인이 밥도둑이라며 고추 짜박이장을 주셨다. 원래 조리법인 땡초대신 할라피뇨로 만든 것인데, 밥에 넣고 비비니 정말 단짠에 매운맛까지 적당히 섞여있어 입안에 침이 확 고이며 입맛이 되돌아왔다. 

요즘은 오만가지 단어에 ‘맛’자를 붙여 심지어 ‘아내의 맛’이란 요상한 이름의 예능까지 등장했었는데, 암튼 입맛은 살맛과 아주 불가분 관계에 있는 것이 확실해보인다. 입맛이 없으면 당연히 살맛도 안 나고, 살맛이 안 나면 입맛도 뚝 떨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맛나는 일을 찾아다니며, 살맛나게 하는 영상이라도 부지런히 클릭하는 것이다.

얼마 전 종료된 도쿄 올림픽에서도 이렇게 살맛나게 하는 일이 많았다. 미국의 전설적인 체조선수인 시몬 바일스의 올림픽 경기 기권 선택에 대한 미국인들의 성숙한 태도가 참 사람들을 살맛나게 했다. 그 결정은 전쟁터에서 싸움을 포기 한 것과도 같은 것이었는데도, 미국인들은 도리어 온 세상을 가져도 영혼을 잃어버리면 소용이 없다며 그녀를 응원했다. 메달보다는 자신에게 더 정직했던 바일스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선수들은 금메달이 아니면, 메달을 따고도 행복한 표정을 짓지 않아 외신기자들의 주목을 받곤 한다. 결과 지상주의의 한국사회는 오직 드러난 결과만을 중시하며, 개인의 감정이나 결정은 사치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소수민족인 몽족 출신의 수니사 리의 활약도 대단했다. 난 처음에 그녀의 이름을 보며 한국계가 아닐까 했는데, 수니사는 태국, 라오스 등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그녀의 부모는 핍박과 차별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암튼 몽족은 수니사로 인해 온 세계에 존재를 알리게 되었다. 

또한 많은 입양아 출신 선수들이 성조기를 휘날리게 해서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캄보디아 고아출신의 다이빙 선수 조던 윈들은 미혼의 동성애자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지만, 그 아버지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다이빙 선수가 되었다. 

미국 남자 기계체조 선수인 율 몰다워도 조던처럼 입양선수다. 서울에서 태어나 콜로라도에 농장주 가정에 입양되어 자신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양부모 덕분에 미국 국가 대표선수가 되었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위대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고 주변 사람들 마음까지 살맛나게 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맛은 아무래도 자본주의 맛인 것 같다. 이 말은 탈북인들이 남한의 풍요로운 물질세계를 빗대서 한 말이었는데, 한마디로 돈만 주면 입에 착착 감기는 무엇이든 사먹을 수 있고, 어떤 것도 살 수 있는 그런 맛이다. 그렇지만 이 맛의 단점은 돈이 없으면 그날로 사라져버려 인간관계마저도 갈라놓는 냉정한 맛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자본주의 맛을 위해 저개발국가의 노동력이 값싸게 착취되고,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가 만들어지기도 하는 그런 무서운 맛이다. 이 자본주의 맛에 길들여질수록 우리는 끊임없이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씁쓸한 맛이기도 하다.  

 

이제 말복이 가까워온다. 올 여름의 맛은 예년보다 덜 무덥고 쓸쓸하다. 이제 코로나 19 정국도 2년째 접어드니 일상이 되었고, 처음처럼 조바심을 내지 않고, ‘어쩌면’이라는 불안한 수사를 자주 쓰게 된다. 가게마다 오랜 자가격리에 지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데 출구는 없다. 반려동물, 반려식물, 반려고독이라도 함께 키우며 버텨야 한다.

많은 해답을 가진 사람보다는 혼자 잘 노는 사람이 더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다. 여전히 텍사스 아침해는 붉게 타오르고 대추나무 열매는 잘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조용한 사막 같았던 여름의 맛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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