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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숨을 쉬어 봐요!

Last updated: 8월 20, 2021 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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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숨을 쉬어 봐요.” 살아 있으니 숨을 쉬는 거 아닌가. 내가 죽은 건가. 잠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나 숨을 쉬고 있는데.” 어리둥절해서 어리바리하게 답을 하고 나자 동생은 다시 “좀 크게 쉬어 보라고요. 왜? 숨이 안 쉬어져요?” 사투리 섞인 말에 힘이 담뿍 들어가서 재차 물었다. 그러더니 소리를 내서 쉬어 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되지 않는 내게 “언니, 와 그라는데, 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데?” 하며 야단치더니 소리를 내 숨을 쉬며 따라 해보라고 했다. 소리를 내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그렇게 쉬라고요.”하며 뭐가 그리 꽉 막혀서 숨도 못 쉬느냐며 억장 무너진다고 했다. 그리고는 숨쉬기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어찌 이리 되었을까. 인제 보니 나는 남들 다하는 숨쉬기 운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살았는가 보다. 무엇 때문에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참으며 살았던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운동을 같이하자고 조르던 동생이 일요일 아침에 특별히 나를 생각해서 클래스를 만들었으니 얼굴도 볼 겸 같이 시작하자고 연락을 했다. 언제부턴가 아침잠도 줄었고 특히 요즘 들어 오른쪽 어깨와 팔꿈치가 다시 심하게 아파 근심이 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처음으로 시간 맞춰 나갔다. 몸이 불편하니 마음도 우울해지는 것 같아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라 쉽게 결정을 할 수 있었다. 시간 맞춰 나가겠다고는 했지만 설마 했던 동생은 나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다.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이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앉아서 누워서 서서 또는 엎드려서 매트 위에서 하는 스트레칭은 마라톤을 뛴 것처럼 숨이 찼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동작도 낯익은 동작도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한 시간은 되었을까. 목이 타고 숨도 턱턱 막히는 게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다리에 힘이 다 빠진 게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힘에 부쳐 목을 축이고 앉아 있으려니 동생이 또 한마디 했다. “왜 언니는 땀도 안 흘리는데요?” 남들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나는 그것도 안 되는 것이었다. 내 몸이 이리될 때까지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살았단 말인가. 남들은 예쁘게 살도 찌울 줄 아는데 나는 피죽도 못 얻어 먹은 사람 꼴을 해가지고. 그래도 잘 버텨 두 시간을 다 채웠다. 동생이 첫날치고는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굳어 있진 않아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지도 못하고 옷만 갈아입고 누웠다. 남들은 줄줄 땀을 흘리는데 내 몸에는 냉기가 흘렀다. 넣어두었던 오리털 이불까지 꺼내 두 장을 겹쳐 덮었다. 그래도  추웠다. 한겨울도 아니고 한여름에 저체온증이라니. 그것도 두 시간 운동까지 하고 난 뒤에, 기가 막혔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창업자 더글러스 톰킨스도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는 오래전 뉴스까지 떠오르자 겁이 덜컥 났다. 

 

얼마 전에 친구가 물었다. 다시 30, 4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으냐고. 물론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너무 힘에 부치게 살아서 적당히 늙은 지금이 좋다고 했다. 어떻게 살았으면 숨도 크게 쉬질 못하고 얼마나 안절부절못했으면 골반이 다 틀어질까만,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는 없다. 그래도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면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는 살지 않겠다고 했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기도 하고 벚나무 그늘에 앉아 나풀나풀 아름답게 지는 법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가끔은 아무나가 되어 아무 이유 없이 아무렇게나 행복해지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은 가슴 열고 내 안의 비를 모조리 탕진해 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견디는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더 늦기 전에 같은 말 따위는 필요치 않게 허투루 사는 법을 일찌감치 배우겠노라고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 시인은 나 아닌 나로 살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아닌 당신이, 우리가 내가 되는 시간. 그 순간에 또 다른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당신의, 우리의 목소리를 받아 적으며 당신의, 우리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나의 인생은 이제 한낮을 지나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인생의 꼭짓점을 지나 내리막길에 간신히 걸려 있음을, 저물고 있으며 닥쳐올 어둠을 예비할 때임을 안다. 하지만 오늘이 내 생의 한가운데이며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지난겨울 한파에 다 죽어가던 나무가 잘라낸 밑동에서 연둣빛 숨을 뱉어내고 있다. 그래! 숨쉬기 운동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다.

 

생목의 꿈 / 김미희

 

아이스바를 다 빨아먹자

잘 다듬어진 조그만 기둥 하나만 남는다

 

몇 번이고 더 빨아대자

단맛은 사라지고

생목 냄새가 목젖을 친다

멍석말이하듯 얼음이불에 말리기 전

숲이었을 나무 냄새 그대로

 

얼음과자 하나면 다 되던 시절

혀끝에 묻어나는 달콤함에 

나도 사탕 얼음에 멍석말이 당하면 좋겠다 싶어

생목이 되기를 소원했었다

그땐 

모든 생각을 밀봉한 채 뼈대 하나만 간절했다

 

빨던 생목을 조곤조곤 씹는다

은유 같은 건 얼음 사탕 녹듯 금방 사라져버리고

젖은 생목은 무엇으로도 불을 붙일 수 없게 젖어 있다

 

잃은 듯 버려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을 만나고

타야만 닿을 수 있는 꿈도 있다는데

가슴을 데울 수가 없다

 

1막을 끝낸 생 하나

참았던 숨을 뱉어 놓는다

 

생목은 역시

얼어 있는 꿈속에 꽂혀 있어야 제격인가 보다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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