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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혜자의 세상 엿보기 (peek through the window)]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를 읽고

Last updated: 3월 18, 2022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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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고초를 당했다. 구약에도 왕이나 왕국의 흥망성쇠를 예언한 예언자들은 모두 왕들의 미움을 사서, 추방되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나쁜 꿈은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예언자들의 예언은 빗나가는 경우가 없어, 폭정을 일삼던 왕들에게는 더 없는 회초리와 교훈이 되었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고집 센 황소처럼 죽어라 말을 안 듣던 백성들도 지나간 예언자들의 예언을 되새기며 회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언자가 나타나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손홍규 작가의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를 얼마 전에 완독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4명의 실패한 개인의 꿈을 기록한 소설은 작가의 말처럼 역사라기보다는 그들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려 애쓰는 이야기이다. 

 

전봉건, 박헌영, 노무현, 세월호 참사자…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어 이들의 죽기 전, 하루를 이들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유추한다.

 

현상금을 탐낸 동료의 고발로 교수형을 당한 전봉준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다. 

 

‘따라오지 말아라, 나서지 말아라, 아비의 그림자를 밟지 말아라, 붙잡지도 말고 울지도 말아라.’ 그의 신념은 관념이 아니었기에 자신을 내거는 건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추수할 들판을 남기고 곡갱이와 낫을 들고 봉기에 앞장섰다. 저 노오란 들판은 지주 몇의 것이고 농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굶주리고 있었다. 세상은 늘 있는 자들의 것이고, 어느 시대나 탐관오리들은 호시탐탐 힘이 없는 백성들만 괴롭혔다. 녹두장군이라 불릴만큼 왜소한 몸이지만 눈빛만은 독수리처럼 날카로웠던 전봉준의 실패한 봉기를 지금도 우리가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선노동당 부서기까지 지낸 박헌영 역시 실패한 공산주의자다. 어머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서울 유학까지 한 그가 공산당원이 된 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1956년 숙청이 되고 지하 감옥에 갇히면서 그는 젊은 간수를 통해 그의 혁명이 실패했음을 인지한다. 지하독방에서 그는 러시아에 있는 아내와 딸을 생각하고, 이념이, 혁명이 그에게 무엇이었는지를 정의하려고 하지만, 그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이 확실한 혁명의 징표이다. 실패한 혁명가에게 이념은 휴지조각이 되고, 아쉬운 삶만이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혼령이 되어 떠돌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 대통령의 이야기는 더 암담하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 타며, 초췌해진 부인을 허깨비처럼 안았다는 그는 취재를 위한 헬리콥터가 버스 위를 맴도는 소리를 들으며 검찰청 앞에 도착한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이미 논두렁에서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노무현의 고뇌와 생각은 너무나 처절하고 고통스럽다.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었던 그의 죽음은 온 나라를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그를 지켜주지 못한 시민들의 애도는 끝이 없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잘잘못을 떠나 그만큼 사후에 사랑을 받은 대통령은 드물다. 소설엔 ‘원한을 푼다’라는 의미의 젊고 아름다운 해원(解冤)이라는 인물이 항상 등장해서 실패한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대변한다.

 

2004년 평범한, 너무 평범한 우리와 우리의 이웃 같은 부부는 결혼하고 티격태격하며 살다 임신을 하고, 입덧으로 고생을 하고, 만삭이 되어 딸을 순산한다. 

 

태명이 튼튼이였던 이 꼬마 여자애는 여느 대한민국의 딸들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성장하여 열 여덟살이 되던 해 친구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제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뱃머리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장난을 치며, 여행에 한껏 부풀었던 여학생은 곧이어 푸른 바다 속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이별을 하고 만다. 

 

해원, 알고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더라면, 수많은 후회와 원망이 팽목항을 애워 싸지도 않았겠지만, 생명의 소중함은 자본주의 논리에 져서 바다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버렸다.

 

실패한 역사를 되새기는 민족은 살아남지만 잊어버리는 민족에게 앞날은 없다고 한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실패만을 떠올리며 꿈을 꾸지 않는다면 내일은 없다.

 

한국의 대선이 끝났다.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승자는 결정이 되었다. 정치는 생물이어서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민심을 배반한 정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득 대선을 거치며 예언자나 좋은 분을 일컫던 ‘그 분’이라는 호칭이 비리의 몸통으로 끝없이 추락되었음을 느낀다. 

 

그래도 봄은 오고 꽃은 필 것이다. 예언자가 스쳐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그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채… 그럼에도 실패한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항상 우리를 설레이게 한다.

 

왜냐면 그들의 희생과 절규와 실패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늘, 조금씩 세상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봄,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예언자를 만나고 있는가? 벌써 삼월도 중순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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