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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조우

Last updated: 7월 22, 2022 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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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N NEWS’를 보던 남편이 빨리 와서 이것 좀 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부산 금정구의 한 골목길에 비가 내리는 장면이었다. 자세히보니 골목 전체에 내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한곳으로만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그 부분이 캄캄한 연극무대에서 주연 배우에게만 비춰주는 스포트라이트 같았다고나 할까? 오직 프레임 안에 갇힌 비만 보였다. 

조각구름이 햇빛을 가려서 ‘비’라는 배우가 설 자리에 그늘을 만들고, 바깥쪽은 환하게 밝혀 둔 듯한 역발상 연출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바람도 숨을 죽이고 구경하느라 불지 않았는지 주연배우는 그 무대에서 십여 분간 머물며 빗줄기로 난타 퍼포먼스를 펼친 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나운서는 그에 관해 “양팔 너비 정도의 넓이에만 비가 쏟아지는 믿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신기한 광경을 본 주민들은 복권을 사러 가야겠다며 행복해했다. 제보를 받은 기상청은 그 시간대에 강수 집계가 잡히지 않았고 레이더 영상에도 탐지되지 않았다며 소나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조각구름이 연출한 소나기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기상청이 잡아내지 못하는 비 소식은 아마도 셀 수 없을 것이다. 금정구에 반짝하고 나타났던 조각구름처럼 몰래 와서 퍼붓고 가는 깜찍한 소나기를 무슨 수로 다 찾겠는가. 그런 현상은 우리 동네만 해도 올여름에 두 번이나 발생했다. 지난 14일 일기예보에 비 소식은 없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었다. 마침 그 시간에 지인들과 단체 카톡을 하던 중이어서 가까운 거리에 사는 두 분의 집엔 비가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땅덩어리가 큰 텍사스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오른쪽 하늘은 맑은데 왼쪽은 장대비가 오기도 하고 어두운 비구름이 비를 뿌리며 옮겨 다니는 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소나기를 감지하는 촉은 기상청보다 내가 더 발달했다. 내 몸이 일기예보다. 적당한 명칭이 없어 ‘몸 예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겉보기는 멀쩡한데 속은 곯아서 비가 오려고 하면 삭신이 쑤신다. 올여름, 일기예보에도 없던 비를 두 번이나 맞춘 건 몸이 예보해주었기 때문이다. 해가 이렇게 쨍쨍한데 무슨 비가 오겠냐며 전화기로 일기예보를 찾아보곤 하던 남편과 딸이 지금은 내 실력을 인정한다. 첨엔 긴가민가했는데 지금은 명확하게 그 느낌을 안다. 실은 나보다 고수는 친정어머니였다. 아, 외할머니가 먼저인가? 아무튼 나도 이제 그 반열에 오른 듯하다. 음! 이것도 자랑이라고 떠드는 내가 한심하지만 사실이다. 

 

어머니의 몸 예보는 김동완 통보관보다 정확했다. 몸이 비를 감지하면 어머니는 비설거지를 하느라 바빴다. 행여 젖을까 봐 맨발로 뛰어나가 항아리 뚜껑을 덮고, 빨래를 걷고, 고추를 걷으며 비로부터 지켜야 할 것을 지키셨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는 밤새 앓는 소리를 하셨다. 어느 날, 그 신음이 듣기 싫어서 평생 후회하게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앓는 소리 내면 덜 아프냐고.

언니가 온 세상 사춘기를 다 끌어다 오랜 세월 앓으며 어머니 속을 뒤집는 바람에 나는 사춘기의 ‘사’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뭔가 단전 아래서부터 끓어오르는데 나까지 보태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착해서 사춘기를 수월하게 지나갔던 게 아니라 꾹꾹 눌러 삭였던 거다. 끝까지 참았어야 했는데 아마도 그날 뭔가 심사가 뒤틀렸던 모양이다. 그 뒤로 어머니는 앓을 때마다 내 눈치를 보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만회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마흔여덟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미안함이 심중에 옹이로 남아 아직도 아프다.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그래서 내가 몸예보를 벌로 물려받은 모양이다. 비가 올 때마다 오지게 앓으니 말이다. 이젠 안다. 신음은 내고 싶어서 내는 게 아니라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을. 

 

내가 앓는 소리를 하면 딸이 파스를 들고 온다. 혈 자리를 찾아 침을 놓아주셨던 아버지처럼 아픈 곳을 찾아 붙여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뭉클하다.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는데 나도 모르게 신음을 삼키곤 한다. 어머니에게 지은 죄 때문일 것이다. 불효의 손바닥 구름은 평생 주변을 떠돌다 난데없는 소나기로 변해 그렇게 퍼붓곤 했다. 백세 노인이 어머니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는 건 다 그래서가 아닐까. 죄송하고, 그립고, 가슴에 못 박은 게 한이 돼서 말이다. 

 

햇빛이 쨍한데 비가 오는 날이면 “호랑이가 장가가나 보다.”라고 하셨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하도 들어서 어렸을 땐 진짜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 줄 알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음성이 잊히지 않는다. 에티오피안 친구에게 그 말을 해줬더니 자기 고향에선 호랑이가 아니라 하이에나가 시집을 간다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곰인 나라도 있고 쥐인 나라도 있단다. 동물들은 왜 그런 날 결혼을 하는 걸까? 참 재밌다. 그 비를 기상학적인 용어로 ‘천루(天漏)’라고 써 놓은 기사를 본 적 있다. ‘하늘의 눈물’이라는 뜻이다. 제목만으로도 시 한 편이 써질 것 같아 구글에 검색해 보았는데, 정확한 근거를 찾진 못했다. 괜찮다. 어차피 나는 습관처럼 호랑이가 장가간다고 말할 거고 그리운 목소리를 추억할 테니까. 

 

조각구름은 누구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었을까? 살다 보면 그 비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올까.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내가 잘하는 건 뭘까. 그런 게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어머니를 만날 때 부끄럽지 않은 딸이나 되었으면 좋겠다. 

‘굵고 짧게!’ 개인기를 보여주고 추억과 악수하게 해준 비와 조각구름에게 트로피를 주고 싶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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