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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어느 ‘단체’의 부고(訃告) – 달라스 한인단체의 쇠퇴를 마주하며

Last updated: 10월 3, 2025 1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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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달라스.


태양이 작열하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드러나지 않는 차별과 무관심 속에서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유난히도 더웠던 어느날, 조용히 한 장의 부고(訃告)가 들려왔다. 


오랜 세월 지역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던 한 ‘단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죽음은 단지 한 조직의 종말이 아닌, 우리 한인사회 전체가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과거 달라스 한인사회는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강한 결속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한인회, 상공회의소, 무역인협회, 민주평통, 노인회, 부인회 등 다양한 단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지역사회와 모국과의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으려 애써왔다. 단체 간의 의견 충돌도 있었고,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다 갈라져서는 진정한 ‘원조’를 주장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그런 단체들이 일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들은 존재 자체로 지역사회의 중심축이었고, 많은 이들이 자비를 들여가며 헌신해온 기록이 존재한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인회장 한 사람이 10만 불, 20만 불씩 사비를 털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했다. 그만큼 명예와 책임이 따르는 자리였고, 실제로 그러한 헌신 덕분에 달라스 한인사회의 위상이 미국 주류사회 속에서 조금씩 우뚝 서기 시작했다. 정치인들과의 교류, 한미 우호 행사 주최, 동포 보호 활동 등은 단체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했다. 단체 활동은 단순한 사회적 명함이 아닌, 공동체의 존립을 위한 실질적 역할을 수행했다.


“내 돈쓰고 욕까지 먹는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봉사정신보다 회의감이 먼저 다가온다. “내 돈 쓰고 욕까지 먹는다”는 한탄이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명예는 퇴색하고, 희생에 대한 존중은 줄었다. 단체의 운영은 몇몇 이들의 부담이 되어가고 있고, 어느새 다음 회장을 자원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어떤 단체는 아예 다음 회장을 찾지 못해 해산 위기에 처했고, 또 다른 단체는 유령처럼 이름만 남아 있다.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첫째, 세대 간의 단절이다. 1세대 이민자들이 주도해 온 단체 운영은 이제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를 필요로 하지만, 1.5세와 2세들은 같은 방식으로 단체 활동을 이해하지 않는다. 단체의 존재 이유와 구조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도 많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소통의 부족이다. 영어 중심의 세대와 한국어 중심의 세대 간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 단체 내 행사나 회의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참여가 꺼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뢰를 잃어버린 한인단체들


둘째, 커뮤니티 내부의 정치화이다. 단체 운영이 특정 계파나 인맥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신뢰를 잃어갔다. 단체장이 되고자 하는 동기가 공동체 봉사보다는 개인적 명예, 혹은 실익에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참여자들의 열의는 식었다. 특정인 중심의 행사 운영, 선심성 지출, 밀실 결정 구조는 단체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이로 인해 실력 있고 헌신적인 사람들조차 단체 운영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젊은 세대에게는 단체 활동이 구태의연한 정치 싸움처럼 보이게 되었다.


셋째, 시대 변화에 따른 기능의 모호성이다. 한인회나 각종 단체들이 존재감을 가졌던 시기는 정보의 비대칭이 심했던 때였다. 이민 초기, 공공기관 정보, 의료 정보, 교육 정보, 심지어 한국행 항공권 정보조차 한인회를 통하지 않으면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과 SNS가 모든 정보를 쥐고 있다. 단체를 찾지 않아도, 구글 하나면 해결된다. 정보 전달자 역할을 잃은 단체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 단체의 존재 의미가 더 이상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넷째, 외부와의 연결이 약화되었다. 한인단체가 교량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미국 주류 사회와 한국 정부, 재외공관 등과의 소통 창구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공식적인 기능조차 흐릿해지고 있다. 외부 네트워크 없이 단체 내부 행사에만 집중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성을 해치고, 결국 단절을 초래한다.


한인사회 구심점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인 단체의 역할이 끝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공동체는 필요하고, 그 공동체를 지탱할 조직은 존재해야 한다. 다만 과거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변화해야 한다. 이제는 투명한 재정 운영, 상향식 참여구조, 젊은 세대를 위한 플랫폼 구축이 절실하다. 단체 운영은 더 이상 몇몇의 열정에만 기댈 수 없으며, 집단지성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몇 가지를 되새겨야 한다. 첫째, 단체의 존재 목적을 재정립해야 한다. 봉사는 물론, 문화, 교육, 정치적 대표성 등 다양한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세대 간 소통을 위한 교량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주도할 수 있도록 권한을 넘기되, 이들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단체의 언어와 구조를 바꿔야 한다. 셋째,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정보 제공 및 커뮤니티 연결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이번에 부고가 들려온 한 단체는 생전 말없이 헌신해 온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조용한 봉사자’라고 불렀다. 그의 삶이 증명하듯, 공동체는 이름 없이도 빛나는 손길들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이제 그 손길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손길이 사라진 자리를 채워야 할 이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큰 위기다.


우리는 지금, 단지 한 단체를 애도하는 것이 아니다.


 커뮤니티의 근간이자 오랜 시간 달라스 한인사회의 정신을 지탱해 온 한 세대의 퇴장을 함께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는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인가? 


이 부고가 단지 한 단체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한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커뮤니티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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