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몇 주간 달라스 한인 사회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이야기는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다. 주유소 가격판이 오를 때마다, 장바구니 물가가 무거워질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저 먼 중동의 충돌이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가.
답은 단순하다. 석유다.
그러나 석유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다. 검은 액체가 어떻게 쓸모없는 골칫덩이에서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자원이 됐는지, 그 긴 역사를 먼저 들여다봐야 지금 벌어지는 긴장의 본질이 보인다.
쓸모없던 기름이 세계를 바꾼 순간
1859년 8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Titusville)의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가 땅을 파다가 검은 액체를 발견했다. 그 전까지 석유는 땅을 오염시키는 골칫덩이에 불과했다. 농부들은 논밭에 검은 기름이 스며들면 한숨을 쉬며 다른 땅을 찾아 떠났다.
당시 세계의 조명 연료는 고래기름이었다. 바다를 누비며 고래를 잡아 기름을 짜내는 것이 최고의 산업이었다. 그러나 펜실베이니아의 검은 액체가 등유로 정제되면서 고래기름은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석유가 진정한 전략 자원이 된 것은 내연기관의 등장 이후다. 1908년 헨리 포드(Henry Ford)가 모델 T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석유는 단순한 조명 연료를 넘어 문명의 동력이 됐다.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가 날고, 배가 대양을 건너는 모든 곳에 석유가 필요했다.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은 미국 석유 시장의 90%를 장악하며 역사상 최초의 글로벌 에너지 독점 기업이 됐다.
석유가 전쟁을 만든 날
석유가 군사력의 핵심 연료가 되면서 세계는 달라졌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은 석탄에서 석유로 함선의 연료를 전환했다. 당시 해군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바다를 지배한다”고 선언했다. 그 순간부터 중동의 지도가 강대국의 손에 의해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석유는 전쟁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였다. 히틀러는 소련의 바쿠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스탈린그라드로 군대를 밀어 넣었다가 전쟁의 흐름을 뒤바꿨다. 일본은 동남아시아의 석유를 노리다 미국의 진주만을 건드렸고, 결국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을 맞았다. 석유를 향한 욕망이 역사의 궤적을 바꾼 것이다.
전후 중동 질서도 석유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1953년 미국과 영국은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크(Mohammad Mosaddegh) 총리를 쿠데타로 축출했다. 그의 죄목은 단 하나였다. 외국 석유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이란의 석유를 국유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쿠데타의 상처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돌아왔고, 지금의 이란 긴장으로 이어지는 긴 역사의 씨앗이 됐다.
오일쇼크, 그리고 달라스의 기억
1973년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갑자기 중단했다. 미국의 주유소 앞에 차들이 수 킬로미터씩 줄을 섰다. 유가는 4개월 만에 4배가 뛰었다. 전 세계 경제가 멈춰 섰고,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공포가 시작됐다.
그 충격은 텍사스에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오일쇼크 이후 석유 붐이 찾아오면서 달라스와 휴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가 됐다. 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한인 이민자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이 땅으로 몰려들었다. 텍사스의 번영 뒤에는 늘 석유가 있었다.
에너지 패권, 자원이 아닌 통제의 문제
지금의 긴장을 이해하려면 에너지 패권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패권은 단순히 석유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느냐의 문제다.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이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좁은 해협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의 동맥이다. 미국은 셰일혁명(Shale Revolution) 이후 에너지 자립도가 크게 높아졌다. 그럼에도 중동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이유는 석유 자체보다 이 통제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일본·한국·인도의 경제 안정성과 직결된다.
오늘의 긴장은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공급망의 지배를 둘러싼 경쟁에 가깝다. 그리고 그 경쟁은 중동의 충돌을 더 이상 지역 분쟁에 머물지 않게 만든다. 결국 달라스의 주유소 가격과 한 가정의 생활비로 이어진다.
검은 액체가 흔드는 우리의 일상
달라스 곳곳의 가격판이 오르는 것은 단순한 시장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어디선가 벌어지는 힘의 충돌이 우리의 일상으로 투영된 결과다.
1859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검은 액체는 결국 세계 질서를 움직이는 힘이 됐다. 처칠이 “석유를 지배하는 자가 바다를 지배한다”고 선언한 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 명제는 오늘도 유효하다.
문제는 석유가 아니다. 그 석유의 흐름을 누가 쥐고 있느냐다. 전쟁은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경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