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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고대진] 아 교관님, 필승!

Last updated: 7월 12, 2025 12: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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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진 작가


◈ 제주 출신

◈ 연세대, 워싱턴대 통계학 박사

◈ 버지니아 의과대학 교수, 텍사스 대학 , (샌안토니오) 교수, 현 텍사스 대학 명예교수

◈ 미주 문학, 창조 문학,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 무원 문학상, 미주 가톨릭문학상

◈ 에세이집 <순대와 생맥주>



오랜만에 아내와 유럽 여행을 갔다. 알람브라 궁전을 걷고 싶어 하는 아내와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는 나와 공통분모는 스페인이었다. 여행사에서 계획한 여행이어서 포르투갈과 모로코까지 포함되는 바쁜 여정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과 여행을 시작했는데 우리와 같은 식탁에 배정된 캐나다에서 온 부부와 서로를 소개했다.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인상이 좋은 부부였는데 내가 있던 샌안토니오에도 왔었다고 해서 물었더니 공군 장교로 파견 나간 것이라 했다. 혹시 공군 사관학교를 나오셨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기수를 물었더니 27기란다. “27기면 제가 미적분(Calculus), 고등미적(advanced calculus), 그리고 미분방정식까지 가르쳤는데…”라는 내 말이 끝나자 “아 <고대진다> 교관님!”하고 알아보는 것이 아닌가? 수업 시간에 나를 소개하면서 나는 제주도 고 씨라서 제주도 출신이고 이름은 ‘고대 진다’에서 앞 석 자 그래서 연세대학을 나왔다고 소개한 적이 있어서 그것을 기억한 것이다. 50년 전의 일을 기억하다니 머리가 좋은 생도였을 것이다. 알고 보니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연세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수재였다. 이 수재 최청호 박사는 뒤에 교수 생활도 하고 대령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군인보다는 학자의 모습이 더 어울는 듯한 제자 최 박사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했다. 뒤에 소식을 전할 때마다 “필승! 교관님”하며 생도 시절 인사를 하곤 한다. 


반 백 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두 살의 젊은 나이로 교수가 되어 바르고 총명한 공사 생도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나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사실 난 대학 졸업할 즈음에 빨리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유신 초기라 사회 전체가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한시라도 빨리 박사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입학 허가, 장학금 마련 등 유학 준비를 다 마치고 나니 군대 문제가 남았다. 가까운 친척 중에 방위병으로 일 년 만에 군대를 마치게 할 수 있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교제비로 십만 원(지금 돈 삼천 불 정도)이 필요하니 마련해달라는 내 말을 듣던 아버지의 얼굴빛이 붉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또 푸르죽죽한 이상한 색으로 변하더니 -난 도마뱀 종류만 색깔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천둥 같은 고함이 내 귀를 때렸다. “야 이놈아! 난 육이오 때 처자식을 남기고 총알이 핑핑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곳에서 군대 생활했다. 전쟁도 없는 이때 사지가 멀쩡한 녀석이 군대를 방위로 가? 이 나쁜 녀석. 백만 원을 들어서라도 꼭 널 해병대에 보내고 말 거다.” 아버지가 무서워 난 얼른 사관학교 교관 요원으로 지원하여 수학을 4년 동안 가르치고 공군 중위로 제대했다. 난 아버지들은 다 그러시는 줄 알았다. 최근 신문을 보니 다른 아버지들은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말도 어려운 “부동시”니 급성 간염이니 해서 군대 면제를 받는데 우리 아버지는 “군대 안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가 남자냐”라면서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셨으니. “총알이 핑핑….” 이라는 연설을 하시면서. 


사관학교 교관 요원으로 뽑히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뽑히고 나서도 5개월의 군사 훈련을 마치고 4년을 복무해야 하는 당시 공군 장교 복무규정에 따라야 했고 임관 후에도 공군대학에서 2개월의 교수법 훈련을 마쳐야 했다. 일 년의 방위 복무 대신 4년 반의 군복무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총알이 핑핑…”하는 연설 때문에.


일곱 명의 동료들과 공사 교수부 교관으로 임명받아 대방동에 있는 공군 사관학교를 돌아보니 호수도 있고 파란 잔디가 널리 펼쳐진 운동장이 있는 캠퍼스가 아름다웠다. 캠퍼스를 다니는 파란 제복의 생도들의 파릇파릇한 모습은 더 인상적이었다. 첫 학기 수업에 일학년인 27기 생도들에게 미적분(Calculus)을 가르치고 이학년인 26기 생도들에게는 고등미적(advanced calculus)을 가르치게 되었다. 27기 수업에 들어가 보니 긴장한 60개의 눈동자가 빤짝빤짝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대진다’ 소위다.”라며 내 소개를 했는데 이때 그 반에 있던 잘생긴 30명의 생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최청호 박사였다. 생도들은 고된 훈련을 받으면서 대학 과정을 마치고 있었는데 그들의 열성에 존경심이 들 정도였다. 이 나라의 하늘을 지킨다는 자긍심도 대단해서 “이 나라에 희망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이들과 같이 4년을 대학을 다닌다는 생각으로 지내자”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생도들과 같이 검도부에 들어가 검도도 배우고 수영선수 생활도 하면서 사관학교 교수 생활을 마쳤다. 특히 내가 처음 가르쳤던 27기 생도 중에는 열 다섯 명이나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내 군 복무가 방위병이 아니라 공사 교수였던 것이 더 자랑스럽고 아버지의 “총알이 핑핑…”하던 연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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