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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배신당하다

Last updated: 7월 16, 2021 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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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라는 속담이 매 순간 떠오른다. 자식이 이런 거라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주고 또 주면서 그래도 사랑했을까. 

다 저녁때 언니가 전화했다. 잘 있냐고. 좀 어떠냐고 묻는다. 오늘도 잘 참고 있었는데 언니 목소리를 듣자마자 꽉 차 있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씩씩하기만 하던 내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물기가 배어서인지 가슴이 아린가 보다. 무슨 일 있냐고 고쳐 묻는다. 

아직도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막냇동생이 아들을 여의었으니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한 모양이다. 

가끔 안부 전화 하는 게 다였는데 얼마나 쓸쓸할지 마음이 쓰이나보다. 매일 전화를 해서 안부를 챙긴다. 

 

결혼시켜 놨더니 코빼기도 볼 수 없다고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배신당했다며 울먹이자 괜찮다고 한다. 다 그런 거라고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놓게 되는 거라고, 자식 가진 사람은 누구나 다 겪는 일을 나도 겪고 있는 것이니 너무 애달파 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남들보다 오래 끼고 살았으니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괜찮아지는 날이 올 거라고 한다.

 

언니는 아들이 아닌 딸한테 배신당했다고 한다. 결혼 전날까지 마음 통하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던 딸이 결혼하자 매일 걸려오던 전화가 뚝 끊겼다고 한다. 그때 그 서운한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둘이서 외롭지 않고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서운한 가슴을 다독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혼집을 찾아갔는데 오래된 집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파 그 후 손주가 태어나기 전까지 6년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남이 살던 집은 아무리 좋아도 싫다며 늘 새집을 지어서 살던 언니는 딸 사는 모습이 큰 충격이었던가 보다. 

 

의사가 되려면 취미가 공부인 게 맞겠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책만 끼고 살았으니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건 당연하다며 6년 만에 쌍둥이 손주가 태어나자 언니는 달라스에서 딸이 사는 어스틴을 일요일 오후에 내려갔다가 금요일 오후에 올라오기를 몇 년을 했다. 

그러다 셋째 손주가 태어나며 하던 사업도 다 정리하고 아예 딸 곁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딸이랑 두 집 건너 나란히 집을 지어서 이사한 지 넉 달이 되었다. 손주들 챙기고 딸 집에 들러 살림을 거드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그날은 눈이 부시게 맑은 날이었다. 좋은 날이 확실했다. 하늘은 맑았고 들은 푸르고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에 실려 오는 여름의 향기는 활짝 웃어도 좋을 만큼 상쾌했다. 텍사스의 한여름 날씨답지 않게 볕 좋은 봄날 같았다. 

서른한 해 동안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준 어르신들을 모시고 결혼서약을 하기에 맞춤한 날이었다.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찾아와 마음을 다해 빌어주는 축복을 받고 첫출발하기에 더없이 찬란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런 날 나는 뭔 청승인가 싶게도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었다. 세상 무너진 듯 서럽게 울고 싶었다. 

신랑이 되어 그늘 한 점 없는 얼굴로 빛나게 웃고 서 있는 아이를 보면서 등에 업고 마당을 서성이던 엄마가 오버랩 되었다. 친손주들이 ‘홍이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바보들이라며 쓸쓸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라 눈이 시렸다. 

딸 넷을 낳고 첫아들을 얻었으니 꿈인가 싶어서 일하다 말고 들어와 고추가 맞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는 엄마가 그 며느리를 들이고 어머니 소리도 못 들어본다고 서운하다던 말이 생각이나 가슴이 아렸다. 

그러다가 시어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건가 싶었다. 어머니께서 시어머니가 되니 어떠냐고 묻는 거 같았다. 

그렇게 키운 아들을 멀리 보내놓고 어머니는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얼굴은 고사하고 목소리도 자주 들려주지 않는 자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자주 전화라도 드리고 몇 번 더 모시고 또 찾아뵐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면 무얼 하나. 이젠 이 세상 분들이 아닌데. 

하지만, 안면도에서 신접살림할 때 남편은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시집으로 향했다. 시골집에서 녹초가 되어 돌아오면서 한 주만 쉬자고 사정을 해도 끄떡도 안 했다. 

미국 들어가기 전에 시부모님과 정을 쌓아야 한다고 한 번도 쉬지 않고 끌고 갔다. 힘들다고 툴툴거렸지만,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따를 수 있었다. 

그렇게 끌려다닌 덕에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예뻐해 주셨다. 세상에 둘도 없는 며느리처럼 여기셨다. 

 

세상의 아들은 다 배신자다. 너희들만 잘살면 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바보들이다. 그립고 아쉬워 날마다 서성이는 버려진 껍데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엄마, 사랑해! 엄마, 알지?”라는 말에 속아 나는 오늘도 잠을 청하지만, 뿌리째 뽑혀 나간 가슴은 언제나 아물 수 있을지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어보려 한다. “그래, 너희들만 잘살면 된다.”

제가 처음 태어났을 때
세상엔 당신밖에 없었겠지요, 어머니
등에 업혀 잠이 들고 눈을 뜨면
두려움도 아픔도 없는
그저 환하기만 한 모든 것이었겠지요
처음 어머니라 부르던 날
제 가슴은 두근두근
세상을 온통 차지한 것 같아
진정한 아들이 되어
이제부턴 당신의 세상이 되리라 다짐도 하였지요
아흔 해 동안, 어머니
짧아져만 오던 당신의 가슴속 된바람 소리가 
이제야 들립니다
외로움을 혼자 지키시느라
늘어져 버린 눈물주머니가 이제야 보입니다
발걸음도 이제는 끌려오는 소리
미소는 지쳐 차라리 나의 슬픔이 되고 있지만
물리도록 들었던 머리맡의 기도 소리 그리워지기 전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렵니다
한 세기를 살아오신 오뚝 선 나무
세상 반쯤은 거느리고도 남는 넉넉한 품이신 당신은
여전히 제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어릴 적 그 사월처럼 지금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계셔서 내리는 이 꽃비는
속까지 촉촉이 젖어듭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
-김미희 (어머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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