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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겨울 난민

Last updated: 2월 19, 2021 9: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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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춥다. 아, 추워.” 잠결에도 추워서 뒤척이느라 잔 것인지 못 잔 것인지 모르겠다. 전기가 나가리란 걸 왜 예상 못 한 거지. 이불 한 장을 더 포개 덮으면서 이대로 자다가 얼어 죽는 건 아닐까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우리 아이들은 잘 자고 있을까 하다가 다 큰 아이들 걱정은 왜 하나 싶기도 하고. 추우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며칠 전에 만났던 오리들은 어찌 되었을까. 어디에서 이 한파를 견뎌내고 있을까. 정수기에서 마실 물이라도 좀 받아 놓을걸. 이대로 전기가 하루 이틀 안 들어오면 어찌 되는 것이지. 인간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가 싶은 게 어이없다는 생각도 들고. 당장 밥은 어찌 지어 먹어야 하나. 비상식량을 준비하느라 식료품 가게가 만원이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웃었는데 군것질거리와 물이라도 몇 통 사다 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한 게 영 추운 밤이다. 어쩌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내려주는 눈에 반가워 팔짝팔짝 뛰었는데, 전기까지 끊기고 나니 대책이 없다. 뒷마당 너머 호수가 얼고 수영장도 1인치가 넘는 두께로 밤새 꽁꽁 얼었다. 2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수영장이 얼어버린 건 처음이다. 현재 기온은 화씨 5도, 섭씨로는 영하 16도이다.

 

 어둡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다행히 사다 놓은 부탄가스가 남아 있어서 남은 나물들을 털어 넣고 식은 밥을 볶아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집에는 부탄가스라도 집마다 있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무장갑을 끼고 찬물로 씩씩하게 설거지를 했다. 평상시와 다르게 얼마나 알뜰하게 설거지를 했는지 모른다. 남편이 커피 마시겠냐고 묻는데 할 것도 없는데 일찍 잠이나 잘 거라고 답하고 수돗물을 받아서 보리차를 끓인다. 정말 할 것이 없다. 그래도 낮에는 햇볕 드는 창가에 앉아서 책도 이것저것 뒤적이기도 하고 사진첩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밤이 되니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찌어찌하다가 남편이 벽난로를 생각해냈다. 와! 이럴 수가. 가스 벽난로라서 살아있었다. 벽난로 앞에 소파를 끌어다 놓고 이불을 덮고 나란히 앉았다. 온기라고 해야 그저 그렇지만, 이거라도 있으니 의지할 데가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제부터 뭐하나. 

 

 전기가 나가니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다. 컴퓨터만 끼고 살아왔으니 오죽할까만, 아마 너나 할 것 없이 다 같으리라 본다. 인터넷이 안 되니 구글 창을 열어볼 수도 없고 촛불에 기대어 책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살아오지도 않은지라 딱히 나란히 앉아서 할 이야기도 없다. 그저 맹숭맹숭 앉아 뜨거운 보리차만 홀짝거린다.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제목이 “The Day After Tomorrow”이다. 이젠 가물가물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 딱 어울리는 영화라 떠오른 모양이다. 이 영화 역시 재난 영화에 귀재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작품이다. Independence day, 2012, Midway 등, 재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부분이라 이 감독의 작품은 즐겨보는 편이다. 기후학자 잭 홀 박사는 지구에 빙하기가 다시 한번 올 거라고 대비할 것을 제안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무시한다. 그런데 발표하고 멀지 않은 날에 그날이 오고 말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얼음덩어리들이 쏟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초강력 태풍이 순식간에 불어오면서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빙하로 뒤덮일 가능성이 적은 지구, 남부지방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홀 박사의 의견과 미국 정부와의 갈등으로 아까운 시간만 가고 북부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피난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한 편, 홀 박사는 퀴즈대회 참가하기 위해 뉴욕에 갔다가 그곳에 갇히게 된 고등학생인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향한다. 아들은 아빠의 말대로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대피해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벽난로에 책들을 태워 가며 최대한 몸을 따뜻하게 유지했던 아들과 그의 친구들은 살아남아 아빠와 재회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 현상이 일어나고, 코비드로 인해 비상사태에 들어간 지 근 일 년이 되어 가는 요즘. 있을 것 같지 않은 영화 속 이야기들이 먼 훗날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가로등마저 꺼져 불 한 점 없는 동네는 마치 세트장 같다. 촬영을 마치고 다들 떠나간 자리, 캄캄해서 바람마저도 서성이지 않은 세트장. 단전 일곱 시간이 지나고 있다. 뿌연 하늘에는 별도 달도 없다. 이런 날이 며칠 동안 이어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 될까. 

 

 단전 8시간으로 접어들며 불이 쨍하고 들어왔다. 우선 전화와 컴퓨터 충전기를 찾아 꼽고 샤워장으로 달려가 씻고 나왔다. 간식거리를 찾아 허기를 달랜다. 한 시간쯤 지나자 집안에 온기가 돈다. 몸이 저절로 풀어지니 살 것 같다.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서성이다 보니 1시간 20분 만에 다시 캄캄해졌다. 11시 30분,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온몸이 굳어 버리고 말 것 같다. 몸이라도 펴고 싶어 눕기로 한다. 

 

 세 장 이불로는 부족할 것 같아 한 장을 더 폈다. 오지 않는 잠을 몸 안에 억지로 우겨 넣는 기분이다. 자자. 잠아 어서 오너라. 억지로 눈을 감고 생각마저도 잠을 재우려 온갖 생각을 다 한다. 잠깐 잔 모양이다.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어 보니 훈훈하다. 온 집안의 전구란 전구는 다 눈을 부릅뜨고 있을 테니 나가서 재워 놓고 와야 겠다. 4시 반, 다행히 다 꺼져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수면 양말을 벗고 그대로 눕는다. 

 

 깨톡이 깨를 볶기 시작했다. 언제 또 단전이 되었는지 싸늘하다. 이불 밖으로 눈만 내놓고 전화기를 찾는다. 밤새 안녕을 묻느라 난리다. 그래도 잠은 잤고 날은 밝았다. 밝았으니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물푸레나무 가지에 터를 잡은 겨우살이 푸른 맨살 위에도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단수까지 된 곳도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 본다. 전기가 들어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적어본다. 

 

그리움도 

뿌리를 내리는가 봐

 

타도 타도 더 타야 하는 가슴에는

더욱 그러는가 봐

 

떨려서 

그렇게 떨려서 돋아낸

겨울가지 맨살들

그저 한 철 머물다 갈 생이어도

제 몸 되어버린 그리움을 어찌하리

 

겨우살이는 그렇게

가슴에 뿌리내리는 세월인가 봐

 

김미희, (겨우살이)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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