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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엄마라는 여인의 속내(川)

Last updated: 9월 20, 2019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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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김미희 시인 / 수필가

쿵!
지구의 자전이 멈췄습니다.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를 꺼내는 큰아이의 말에 동전의 양면 앞에서처럼 심장을 한 움큼 뜯긴 새처럼 서 있었습니다. 나만의 북극성이 궤도를 바꾸겠다는 전언이었습니다. 그 전언은 내 사랑의 물길을 동여매고 말았습니다. 아니, 내 사랑의 물길은 불꽃을 피우면서도 얼어 버렸습니다. 얼마 전 커플링을 끼고 와 자랑할 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나한테 오늘 같은, 딱히 무어라 설명이 안 되는 이런 낯선 기분이 생길 거라는 것조차 짐작도 못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란데 싹을 틔우지 못할 생각들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사랑의 첫발을 점화시키는 것일까요. 우연히 일어나는 운명일까요. 필연으로 가장된 실수일까요.

뒷마당에 나가 서성입니다. 불 꺼진 아이의 방을 자꾸 올려다봅니다. 수로를 돌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 찼습니다. 첫울음으로 금단의 덫에 걸린 듯 부딪쳐도 막혀도 기어코 흐르고야 말던 사랑의 물길. 그 물길을 어떻게 돌려야 하는 걸까요. 삼십 년을 품었으면 되었으련만, 물길을 돌리는 게 이렇게 큰일인 줄 몰랐습니다. 너무 오래 끼고 살았나 봅니다. 여자 친구와 저녁 먹고 놀다가 늦게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요즘 아이답지 않게 눈치란 눈치는 다 보며 말을 했건만 기다리고 있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요. 나의 온갖 촉수는 눈치도 없이 대문 앞을 서성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내 주인인 줄 알았습니다. 내 속에 이렇게 많은 내가 기생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직 외길로 흐르며 일렁이고 출렁였으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부터 하나씩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심장을 다 도둑맞기 전에 빠져나올 수로를 찾아야겠습니다. 하지만, 깊지도 넓지도 않고 더더구나 방죽도 허술한 속내(川)는 시시때때로 뒤집히고 넘쳐 수천의 빛깔로 넘실대는 막무가내(川)가 되고 맙니다.

그때,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케이크를 들고 처음으로 시부모님이 되실 분들께 인사를 다녀온 날이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생전 처음 내 머리채를 잡았고 마루에 있던 전화통을 토방으로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나를 그렇게 내치고 싶으셨겠지요.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는 엄마를 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맞선을 주선하고 있던 엄마 친구분한테 케이크 들고 남자와 손잡고 가는 내 모습이 현행범으로 딱 걸리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엄마가 쓰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었지요. 생전 처음으로 허락도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만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중죄인이 되었고 며칠 동안 외출 금지령에 걸려 눈칫밥을 먹으며 징역을 살았습니다. 이래저래 연락이 안 되는 나를 찾아온 그를 엄마는 끝내 내치지 못하고 막내 사위로 받아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가끔은 별것 아닌 일에도 역정을 내시고 가끔은 눈물을 보이며 훌쩍이셨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그건 사랑의 물길을 돌리느라 허술한 속내(川)의 둑이 대책 없이 무너졌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맞은 막내 사위를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막내딸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셨지요.

빈방을 들여다봅니다. 방 하나를 채우기 위해 어딘가로 불 밝히고 나간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이가 없는 방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일은 방이 숨소리를 잃어가고 온기가 사라지는 것만큼 아득합니다. 그러나 꿈을 꾸고 싹을 틔우느라 색색거리던 아이의 숨소리는 남아 나를 반겨줍니다. 아직은 내 안에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가 봅니다. 벌써부터 서운하고 허전한 모양입니다. 불 꺼진 방이 눈을 더 시리게 하는 것인지 자꾸 만 눈물이 흐릅니다. 채웠던 방을 하나씩 비우면서 엄마에서 어머니가 되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낮에 카페라테와 케이크를 들고 찾아와 수줍게 인사를 하고 가던 두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합니다. 그 예쁜 모습은 차라리 애잔했습니다. 언제 저만큼 큰 걸까요. 서툴지만 차근차근 수순을 밟아 떠날 준비를 하는 걸 보니 대견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꿈을 꾸며 한 세계를 설계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모두 신화의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들은 그들이 신화의 주인공인지나 알고 있을까요. 자기들이 살아갈 인생이 신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까요. 적당하게 따뜻한 커피는 여러가지 맛과 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생의 참맛이 그러하듯 달콤하고 쌉쌀하고 시큼하기까지 했습니다. 사랑의 묘약을 마셔버린 중세의 주인공처럼 부디 영원히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어찌 됐든 시시때때로 바람은 불고, 비가 오면 꽃도 나무도 젖는다는 것을 젖으면서 알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봄마다 꽃들은 만화방창(萬化方暢) 새롭게 핀다는 것도 알아가겠지요. “사랑은 가장 고요하고 고독한 행복이다.”라고 합니다. 어느새 구월도 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흐르는 세월을 생각하며 글썽해지는 가을입니다.

 

방을 들여다본다
네가 없다

불의 심지는 이미 그 어디론가 옮겨졌고
방의 소리는 아득하다
아주 사라진 것만큼

싹을 틔우던
숨소리를 더듬는다는 것은
내 안의 빈자리를 더 키워내는
네 이름이 누적(漏籍) 되고만 불 꺼진 방을 보는 것
눈만 더 시려 울 뿐이다

나는 빈방을 들어선다
아니
한 가슴 가득 품는 것이다
차라리

김미희, (빈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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