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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가족사진, 삶의 명암을 찍다

Last updated: 6월 21, 2019 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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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 아빠를 둔 우리 아이들은 카메라에 대한 울렁증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생긴 증상이 아니지요. 아이들이 철이 들 때부터였으니 족히 20여년은 되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통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방어벽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계가 풀리는 마법 같은 날이 일 년 중에 딱 하루가 있습니다. 그날이 바로 파더스 데이입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인내심을 다 발동시켜 고군분투합니다. “딸 하나 낳아줄걸.” 모델들도 사진사도 안쓰럽다 못해 눈물겹습니다.

사내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원하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걸 절실히 느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찾아낸 묘책이 바로 파더스 데이에 찍는 가족사진이었지요. “아빠가 원하는 선물은 가족사진 찍는 것이야.”라며 받고 싶은 선물로 지정했으니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요. 큰애가 대학 가던 해부터였으니 올해가 십일 년째입니다. 첫해는 그런대로 앨범까지 멋지게 만들어 우리 집 가보 목록에 올릴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후 강산이 변하는 동안 가족사진은 찍는 거로 만족하라는 듯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찍는 거로 끝이면 내년부터는 선물 없는 줄 알아!” 큰 소리로 유세를 떨었더니 큼지막하게 캔버스에 담아 벽에 걸어주겠다고 약속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남겨 주려고 저리 열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챙기면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에 야심 차게 준비했을 야외 촬영은 접고 아쉬운 대로 스튜디오에서 간단히 찍기로 헸습니다. 사진사 요구대로 정장과 캐주얼 두 벌씩 준비했습니다. 오늘만큼은 사진사를 존중하기로 마음을 비웠습니다.

내게는 가족사진이 없습니다. 엄마의 유별스러운 아들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공평한 사랑철한 탓인지 물론 돌 사진도 없습니다. 우리 집 돌 사진이라고는 사진관에서 고추 내놓고 찍은 큰 오빠 사진이 전부이지요. 엄마가 둘째 오빠 돌 사진을 찾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답니다. 그 후로 셋째 오빠와 나는 아예 찍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잃어버리면 재수가 없다는 미신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마 둘째 오빠 사진만 없으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에 그러셨을 겁니다. 그러고도 남으셨지요. 엄마는 누구 하나가 잘못하더라도 몽땅 다 불러 세워놓고 야단치셨으니까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기에 우리 가족사진은 큰 언니 결혼식 날에 찍은 것이 유일한 사진입니다. 그것도 일가친척 다 함께 찍은 것이지요. 생각해 보니 내가 여덟 살 때였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단둘이 찍은 사진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시절에는 집안에 대사나 있어야 사진을 찍었지요. 그러니 더더구나 시골에서 무슨 사진을 찍었겠냐며 가슴을 다독이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인생의 한 부분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것 같아 떠오를 때마다 서글퍼집니다.

비도 오고 잠도 달아나고 낮에 찍은 사진이나 보며 울적한 마음 달래볼까 했더니 남편은 벌써 몇 장 안 되는 부모님 사진들을 모니터에 올려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날도 날인지라 아버지가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물 건너 타향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무서운 게 새벽에 받는 전화라지요. 당장 달려갈 수 없으니 더하지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니 늘 죄인이지요.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갔을 때는 겨우 임종을 지키는 것이 다이니까요. 아니 임종만이라도 지킬 수 있기를 소원하며 달려가지요. 남편은 어머님 보내드리고 돌아오면서 아버님 영정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그리고 두 해 뒤엔가 새벽을 울린 전화 소리에 늦은 밤 책상처럼 앉아 영정사진을 만지며 등을 들썩이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들은 등으로 운다지요. 그때 알았습니다. 어느새 남편도 아버지가 돼 있었습니다.

“최고의 사진은 가족사진이다”라는 것이 남편의 사진철학입니다.. 가족사진은 그 가족의 나이테입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흐르는 세월을 봅니다. 그렇듯 삶의 파노라마가 그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가족사진은 두 아들과 함께 쓰는 작은 역사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좋은 향기와 멋진 추억을 소환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줍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큰 재산은 없지만, 같이 했던 시간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게 남편이 가족사진을 찍는 목적이자 의미인가 봅니다.

엄마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 사진은 다시 네 명이 되었습니다. 한두 해 지나면 큰애 옆에 예쁜 며느리가 서겠지요.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르면 고물고물한 새 생명이 보태질 테고요.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닮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신기하겠지요. 그렇게 또 몇 해가 흐르고 작은 아이 옆에도 예쁜 새 식구가 나란히 서겠지요. 하나하나 식구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는 어떤 걸까요.

모니터에
활짝 핀 꽃 네 송이
있다

키득키득
흔들흔들
저들끼리 웃음소리
피워낸다

벙글거리는 엄마 꽃 아빠 꽃
아이들 꽃
사철 내내 피어 웃는 얼굴들

그래
꼭 닮았다

김미희, (가족사진)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B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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