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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동네 책방 (Half Price 북스토어에서)

Last updated: 3월 13, 2020 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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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배추 한 상자만한 부피의 책을 계산대에 올렸더니 드라이버 라이센스를 달라고 한다. 헌 책을 파는데 왜 운전면허증이 필요한 것일까?
이 서점의 헌 책 파는 곳은 늘 알 수 없는 책들로 산을 이루고 있다. 종이가 흔한 나라여서 그런지, 이곳 책들은 대체적으로 두껍고 무겁다. 특히 화집이나 사진집 같은 것은 한 권 무게가 팔목 약한 사람에겐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담당직원은 내가 가져온 책을 쓱 한번 일별 하더니, 나중에 이름을 부를테니 그 때 오라고 한다. 어쨌든 이곳은 중고서점이어서 구경할 것이 많다.
오래된 음악 CD나 레코드, 80-90년대 유명했던 드라마나 영화 DVD 같은 것이 즐비하다. 달력이나 수첩, 각종 카드도 종류대로 있다.
난 가끔 이곳에서 오래된 파바로티 공연집이나 바하의 첼로 연주곡이 들어있는 CD, 몇 달 지난 새해 달력을 산다.
3월쯤 되면 에드워드 호퍼나 조지아 오키프 그림이 실려 있는 달력을 1불이나 2불쯤에 살 수있다. 고독한 아메리칸의 자화상이 들어있는 호퍼의 그림은 달력으로 봐도 좋다.
20세기 초 호퍼는 이미 산업화로 인해 고립되어가는 외로운 군상들을 ‘Nighthawks’이나 ‘Four Lane Road’같은 작품을 통해서 절절하게 표현했다.
조지아 오키프 달력 역시 뉴멕시코 산타페에 있는 그녀의 뮤지엄보다 대표작이 더 들어있다. 그녀의 작품은 미 전국에 다 팔려나가서 그런지,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뮤지엄엔 그녀의 대표작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녀의 꽃 그림을 두고 패미니스트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여성 ‘性’을 이야기 하며, 기발한 의견을 내놓는데, 정작 본인은 패미니즘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밋밋한 방안에 그녀의 그림이 들어있는 달력을 걸어두면 뭔가 강렬하고 원초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어쨌든 미국은 자본주의의 대국답게, 쉽게 예술의 대중화를 맛볼 수 있어 좋다.
픽션 쪽에서 에덴의 동쪽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주로 문 닫는 서적에서 책들을 가져오는지 어떤 책은 같은 본이 여러 권 있기도 하고, 간혹 저자별로 분류해 둔 것들도 보인다.
난 영독실력이 그저 그런데, 그래도 읽었던 소설은 쉽게 내용이 이해가 된다. 특히 한국이나 미국이나 유명작가들의 작품은 의외로 쉬운 단어로 썼다는 특징이 있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는 것이 마치 작가의 지적능력이나 되는 듯이 했던 시대는 지났다. 어려운 걸 쉽게 풀어쓰는 것이 작가적 역량이다.
대신 이들의 작품은 살아 생생하게 날뛰는 날 것의 언어와 삶과 상상의 세계, 겪었던 자들만이 고백할 수 있는 인생 엑기스들이 응축되어 있다.
제임스 딘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던 ‘에덴의 동쪽’도 대화체가 많다. 살까말까 그러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안사는 이유는 끝 까지 안 읽고 거실 구석에 처박히게 될 것 같아서이다.
직원은 대뜸 “그런데요, 책들이 너무 오래되어서 팔만한 게 없네요…” 하더니 1불 75전을 주겠다고 한다. 하긴 시아버지가 보던 화보 책들은 얼추 30년은 되었으니 색깔이 많이 낡아서 상품성은 없을 것이다. 애들 책이야 뭐 중간에 낙서도 좀 있고, 그러니… 그래도 1불 75전은 너무하단 생각이 잠시 든다.
직원은 그런 나의 표정을 눈치 채고 “아, 그럼 도네이션 하실래요” 하고 묻는다. 난 당연히 괜잖다고 한다.
이 무거운 걸 다른 곳에 가져간다는 것도 끔찍하고, 무엇보다 덕분에 책장 두 칸이 비었으니 나로선 공간을 얻은 셈이다. 문학잡지와 여기저기서 보내준 책들이 책장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이제 정말 종이책들의 시대는 지나갔음을 확연하게 실감한다. 하긴 사진은 스마트 폰에서, 책은 전자책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심지어 유튜브에 들어가면 책 읽어주는 여자들이 수두룩한데 굳이 뭐하러 돈들여서 종이책을 사겠는가…
남편은 오늘 받은 헌 책 값을 이야기 하자 대뜸 ‘나중에 당신이 보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갈꼬’ 하는 표정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그래, 너희들은 다 계획이 있구나” 했는데 나와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
아마도 기택네 살림이 홍수에 둥둥 떠내려가듯, 종이책들의 운명은 지금 계급사회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흙으로 다시 묻혀야 할지도 모르겠다. 위로 올라갈수록 인공지능이나 4차 산업 관련 상품들이 버라이어티 하게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헌 책 값과 맞바꾼 것은 북마크 네 장이다. 아, 그것도 하나에 50전이니 내 돈 25전을 보탰다. 그래도 좋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난 종이책들이 좋다. 원하는 페이지를 언제든지 들춰볼 수 있고, 좋은 문장을 보면 줄을 그어 옛친구처럼 오랫동안 기억할 수도 있으며, 책을 통해 전 세계 어디든 바이러스 검사를 받지 않고, 여행할 수 가 있으니까.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자가격리가 늘어나고, 불안한 뉴스들이 창궐할 때는 오랜만에 밀린 독서를 하는 것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가는 확실한 지름길이다.
거기다 올해 최고의 음반상을 받은 백예린의 ‘Oour love is great’에 실려 있는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면, 우울한 3월이 금세 물러나고 봄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다. 잠 안오는 밤 베개를 높이 세워두고 앉아서, 사각거리는 새 책의 감촉을 느끼며 읽는 시 한 줄에 히아신스의 향기가 그득한 봄밤이다.

박혜자
미주작가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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