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주권 인터뷰를 받으러 간 날, 그 자리에서 체포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루이스빌에 거주하는 한인 남성 양 모씨는 지난 8일 결혼 영주권 신청의 마지막 단계인 대면 인터뷰를 위해 어빙의 연방 이민서비스국(USCIS) 사무실을 찾았다. 합법적인 신분을 얻기 위해 스스로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린 날이었다. 그러나 인터뷰 도중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어왔고 양씨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ICE가 밝힌 이유는 ‘궐석 추방명령’이었다. 양씨가 이민법원에 출석하지 않아 지난 8월 31일 추방명령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법원 출석 통지를 우편이나 이메일, 전화는 물론 직접 전달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재판 통지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가 이 사건의 중요한 쟁점이 됐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 미국에 체류하는 사람이라면 이민법을 준수해야 하고 정부 역시 법원의 명령을 집행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자유와 한 가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라면 법이 집행되는 과정 역시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인터뷰실에서 공항까지
양씨의 사례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비슷한 일이 다른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가주에서는 시민권자와 결혼해 영주권 절차를 밟던 한인이 USCIS 인터뷰 직후 ICE에 체포됐다. 과거 주소 문제로 법원 출석 통지를 받지 못해 궐석 추방명령이 내려진 것이 배경이었다. 이후 이민판사가 기존 추방명령을 해제했지만 구금은 곧바로 끝나지 않았다.
뉴욕에서는 시민권자 배우자를 통해 영주권을 신청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던 한인이 가족여행을 떠나기 위해 JFK공항을 찾았다가 체포됐다. 과거 허용된 체류기간을 넘긴 기록이 문제가 됐다.
이미 영주권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텍사스의 한 대학에서 연구하던 한인 영주권자는 한국 방문 후 미국으로 돌아오다 공항 입국심사 과정에서 구금됐다. 과거의 경범죄 기록이 문제가 됐지만 이후 추방절차가 기각되면서 수개월 만에 풀려났다.
이 사건들의 법적 상황은 모두 다르다. 기존 추방명령, 체류기간 초과, 과거 범죄기록 등 체포의 배경도 제각각이다. 영주권을 신청하고 있는 사람과 이미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의 법적 지위 역시 같지 않다.
그럼에도 이 사례들이 한인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있다. 영주권 신청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서 과거의 이민 문제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래전의 기록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재와 무관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손에 쥐어도 끝나지 않는 불안
미국에서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국경을 한 번 넘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비자를 받고 체류 신분을 유지하고, 영주권을 신청하고 기다린다. 하나의 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수많은 서류와 절차, 기다림 끝에 합법적인 신분을 손에 쥔다.
그토록 어렵게 얻으려 했던 것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마음 놓고 일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가족과 여행하고, 저녁이면 내 집으로 돌아오는 것. 오늘 하던 일을 내일도 이어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요즘 이민자들이 느끼는 불안은 그 평범함조차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데서 시작된다.
오래전의 일이 어느 날 다시 현재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알지 못했던 기록 하나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나지는 않을까.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야 안심할 수 있는지 그 경계조차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이민자가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별 사건에는 저마다 다른 법적 사정이 있고 체포가 곧 추방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법원의 판단을 통해 기존 추방명령이 취소되거나 추방절차가 기각돼 가족에게 돌아간 사례도 있다.
다만 지금처럼 이민법 집행이 강화되는 시기에는 자신의 과거 체류기록과 법원 출석 여부, 주소 변경 기록, 범죄기록 등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그렇다고 삶을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아침이면 다시 출근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장을 보고, 고지서를 내고, 가족의 저녁을 준비한다. 교회에 가고 이웃을 만나며 다음 주와 다음 달을 계획한다. 마음 한편에 불확실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집을 나선 사람이 저녁이면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는 것. 오늘 하던 일을 내일도 계속하는 것. 가족이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다음 날을 이야기하는 것.
그 평범한 하루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직장이 흔들리고 가족의 생활이 달라지며 이미 세워놓았던 계획도 멈춰 선다.
이번에는 어빙의 한 인터뷰실에서 한 한인 가정의 일상이 갑자기 멈춰 섰다.
다른 곳에서는 인터뷰를 마친 뒤에, 공항에서 여행을 떠나려다가, 혹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슷한 순간을 맞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건의 이유도, 법적인 상황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어느 하나의 사례로 전체 이민사회를 설명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한 가지 사실이 남는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하루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지금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아메리칸 드림보다 훨씬 소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내일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감사하지 못했던 그 하루가 지금 우리에게는 어느 때보다 소중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