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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국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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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7월 14, 2026 8: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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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 수필가)

호숫가 산책로에는 다리가 있다. 오뉴월 땡볕이 아무리 뜨거워도 다리 밑은 시원해 보인다. 버들가지가 바닥까지 늘어져 있고, 호수의 물이 그쪽으로 흐르는 데다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호수에 기대어 사는 생물들에겐 그곳이 최고의 쉼터이자 놀이터다. 양쪽 난간에는 등을 말리는 거북이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오리들은 그 주위를 삼삼오오 몰려다닌다. 종일 하늘을 품은 호수와 힘차게 치솟는 분수, 운 좋으면 그라피티가 화려하게 그려진 화물 열차 지나는 풍경까지 볼 수 있는 그곳은 내게도 위로와 영감을 주는 최고의 공간이다.

생각이 복잡해서 한 바퀴 돌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날이 얼마나 더운지 반도 못 갔는데 목구멍에 단내가 올라왔다. 집안이 시원하니 밖이 그 정도로 더운 줄 몰랐고, 마실 물을 챙겨주던 딸이 없다는 것도 잊었다. 요즘은 깜빡하는 게 일상이다. 어차피 나선 길인데 되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호수로 향하는 길을 천천히 걸으며 남의 집 화단에 핀 꽃들과 나무를 보았다. 텍사스의 폭염에도 강인하게 살아 버티는 꽃들이 많다는데 새삼 놀랐다.

배롱나무 철인지 흰색, 붉은색, 진분홍색, 연보라색 꽃이 눈길 닿는 곳마다 환했다. 지금 사는 집을 지을 때, 회사 측에서 정원수를 몇 개 보여주고 선택권을 주었다. 꽃나무 한 그루도 내 마음대로 심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 연보라색 배롱나무를 골랐다. 그 덕에 거실 창밖에서 매일 피고 지며 새로운 서사를 쓰는 나무를 보며 좋은 에너지를 얻는다.

분수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 없는 호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리 밑에 새끼 오리와 어미가 있었다. 그 많던 오리는 다 어디로 피서갔는지 셋뿐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새끼 오리들은 천방지축 돌아다니고 어미는 뒤를 따랐다. 촉을 단단히 세우고 자식을 지키는 어미가 불안할까 봐 사진 찍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한 바퀴 돌고 내려다보니 어미가 부리를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새끼는 부리를 바닥에 박고 있었다. 꼭 엄마한테 야단맞는 아이 같아 웃음이 터졌다. 다리 밑에서 혼나는 오리라니, 일순간 머릿속에서 동화 한 편이 그려졌다. 이미 누군가 썼을 지도 모르지만, 출생의 비밀을 안 오리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어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정말인 줄 알았다. 혼자 오만가지 상상을 하고, 무서운 꿈을 꾸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가 된 것 같아 울기도 했다. 언니와

남동생은 엄마처럼 쌍꺼풀이 있고 닮았는데, 나만 닮은 데가 없었다. 어쩌다 시장에 따라가면 상인들이 꼭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나, 얘는 하나도 안 닮았네요.”

그러면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되받아 쳤다.

“얘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요.”

아주머니들은 깔깔 웃는데 나는 엉엉 울었다.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어른들은 툭하면 놀렸다. 엄마는 살가운 분이 아니었다. 다정하게 내 손을 잡고 걸은 기억도, 곁에서 잠든 기억도 없다. 늦은 밤에 돌아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주무셨다. 바쁘게 일하는 엄마 대신 식모나 외할머니가 돌보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에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그 믿음은 꽤 오래갔다. 5살 이전의 기억이 희미한데, 그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나중에 알았다. 내 친구들이 전부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는 걸. 다리 밑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아이를 탄생시킨 곳이고, 엄마들은 똑같은 대사를 써먹는 배우였다는 것을. 내게만 해당하는 줄 알았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 날, 나는 눈물이 나올 때까지 웃었다. 엄마들은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그.것.이.알고 싶다.

우리 엄마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내가 넘어지면 화를 냈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많이 먹으라는 말을 더 많이 했고, 칭찬보다 잔소리를 많이 했다. 돌이켜보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장난은 애정 표현의 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밥을 풀 때면 주걱으로 십자가를 그리며 자식의 하루를 기도했고, 내가 아프면 울며 밤을 새웠다. 표현에 서툴렀던 거지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똑같은 대사 한 줄로 나를 울리고 웃겼던 국민배우는 세상에 없다. 함께 장단 맞추며 깔깔거리던 조연 배우들의 행방도 알 길이 없다. 다 어디에 계실까. 혹시 살아 계신다면 지금도 그 대사를 손주들에게 대물림하고 있을까.

구름 사이를 빠져나온 햇살에 눈이 부셨다. 구름은 잠시 해를 가렸다 보여주기를 반복하며 한쪽으로 흘러갔다. 마치 연극무대 커튼처럼.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다들 안녕하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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