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가 먼저 말을 건다.
미국인의 56%가 불법체류자 전원 추방에 찬성한다. 놀라운 건 공화당 지지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당층의 53%,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37%가 찬성표를 던졌다. 범죄를 저지른 불법체류자 추방에는 무려 80%가 동의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71%다. 이건 더 이상 한쪽 진영의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이민에 대한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달라스에 사는 한 동포의 이야기를 들었다. 20년째 영주권자로 살아온 그는 지난해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크게 편찮으셔서 6개월을 한국에 머물렀다. 효도하고 돌아온 그를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맞이한 건 낯선 질문들이었다. 미국에서 세금은 냈는지, 직장은 여전히 있는지, 집은 유지하고 있는지. 당황한 그는 한참을 세관국경보호국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했다. 다행히 급여명세서와 임대계약서를 스마트폰 사진으로 가지고 있었다. 몇 시간 뒤 그는 풀려났다. “예전엔 그냥 통과됐는데”…라고 그는 말했다. 예전은 예전이다.
이번엔 포트워스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50대 여성 이야기다. 남편의 건강 문제로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어느 해엔 미국에 머문 날이 채 200일이 안 됐다. 그해 입국 때 그녀는 영주권 포기 의사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충격이었다. 이후 이 여성은이민 변호사를 찾아갔고, 재입국허가서를 미리 발급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제서야 알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는 억울함과 무력감이 섞여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들어 이민 정책의 무게추는 분명히 이동했다. 불법 이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합법적인 영주권자조차 “미국을 실질적인 주거지로 유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밴스 부통령이 “영주권은 미국에 무기한 체류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공항 심사대의 분위기는 달라졌다는 것이 이민 변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연방 세관국경보호국 CBP는 이전보다 훨씬 면밀하게 영주권자의 해외 체류 기간과 미국 내 생활 기반을 확인하고 있다. 법이 바뀐 게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온도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온도 변화는 56%라는 여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주권자가 해외에 6개월 이상 머물면 입국 심사에서 추가 질문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1년을 넘기면 재입국허가서(리엔트리 퍼밋) 없이는 영주권 포기로 간주될 수 있다. 더 조심해야 할 건 반복 패턴이다. 5개월 나갔다가 잠깐 들어왔다가 다시 5개월 나가는 식의 생활을 반복한다면, 체류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도 심사관은 “이 사람의 실질적인 삶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준비해야 할 서류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최근 급여명세서, 세금보고서, 임대계약서나 모기지 서류, 은행 거래내역, 건강보험 증명서. 이것들을 출국 전에 챙겨두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불안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영주권 만료일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료된 영주권을 들고 입국하다 낭패를 본 사례는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드물지 않다. 영주권 카드는 10년마다 갱신해야 하는데, 갱신 신청을 미루다 만료된 상태로 해외에서 돌아오면 입국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게 있다. 이민 여론의 강경화는 불법 이민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이 정책을 만들고, 정책은 집행의 강도를 바꾼다. 56%의 추방 찬성 여론이 공항 심사대에서 영주권자를 더 꼼꼼히 들여다보는 심사관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여론과 우리 일상이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건 불공평한 일이다. 세금 내고, 법 지키고, 미국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온 영주권자들이 이민 강경 여론의 불똥을 맞는 것은 억울하다. 하지만 억울함을 품은 채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 억울함은 더 커진다. 공항에서, 심사대에서, 혼자서 그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시민권자 배우자도 이제 안심할 수 없다는 보도가 나오는 시대다. 합법적으로 결혼해서 영주권을 신청한 배우자조차 추방 우려와 심사 강화에 직면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른다. 이런 환경에서 영주권자가 긴장을 늦춰야 할 이유는 없다.
가장 안전한 길은 단순하다. 미국에서의 삶을 실질적으로 유지하고, 그것을 서류로 입증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상황이 복잡하거나 불안하다면, 출국 전에 반드시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는 것이다. 개인별 체류 기간과 해외 체류 목적, 미국 내 생활 기반에 따라 적용되는 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일반적인 정보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론의 파도는 우리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파도 앞에서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는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는 것, 그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