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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달아 달아 밝은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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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4월 17, 2026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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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N 편집국장 유광진

인류가 다시 달을 향해 떠났다.

지난 4월 1일, NASA의 아르테미스 2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불기둥을 뿜으며 하늘을 갈랐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3년 만에 사람을 태운 우주선이 달 곁을 스쳐 지나갔다. 네 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운 오리온 우주선은 지구에서 25만 2,756마일 — 약 40만 킬로미터 — 떨어진 지점까지 날아가 인류 최장 우주 비행 거리 기록을 새로 썼다. 전 세계가 숨을 죽이며 그 장면을 지켜봤다. 반세기가 넘는 공백을 뛰어넘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뉴스를 보는 순간, 우주선보다 달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에 잡힌 달 표면 — 수십억 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그 회색빛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마당에서 올려다보던 그 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달은 달이었다. 그 변하지 않음이,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반가웠다.

한국인에게 달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다. 달은 우리 삶의 리듬이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조상들은 달의 모양으로 날을 셌다. 초승달이 뜨면 한 달이 시작되고, 보름달이 차오르면 온 마을이 들썩였다. 농사의 때를 달로 가늠했고, 혼례 날을 달로 골랐고, 제삿날을 달로 잡았다. 달은 달력이었고, 달은 시계였고, 달은 삶의 기준점이었다.

그중에서도 추석의 달은 각별하다. 음력 8월 15일,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되는 시절에 뜨는 둥근 보름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 달 아래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차례를 지내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정월대보름에는 첫 보름달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달은 신앙이었고, 달은 공동체였고, 달은 서로를 묶어주는 끈이었다. 그 달빛 아래서 우리는 가족이었고, 이웃이었고, 한 민족이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서 달은 언제나 따뜻했다. 토끼 한 마리가 혼자 방아를 찧고 있다는 그 이야기를 누가 처음 지어냈을까. 차갑고 먼 천체를 그리움과 온기로 채워낸 우리 조상들의 상상력이 새삼 경이롭다. 달을 보며 외롭지 않으려 했던 마음, 달을 벗 삼아 긴 밤을 버텨낸 마음이 그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려시대 시조에도, 조선시대 한시에도 달은 빠지지 않았다. 달은 시인의 언어였고, 나그네의 등불이었다. 이름 없는 민초들에게도 달은 늘 공평하게 빛을 나눠줬다.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에게 달은 더욱 각별하다. 이곳 텍사스 하늘에 뜨는 달과 고국 하늘에 뜨는 달이 같은 달이라는 사실 — 그 단순한 진실이 때로는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추석이면 슈퍼마켓에서 사 온 송편을 꺼내 놓고 창밖 달을 올려다보는 이 마음을,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은 안다. 달은 말이 없지만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수만 리 떨어진 이국땅에서도, 고개를 들면 어김없이 그 자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 아르테미스 2호 소식에는 남다른 사연이 하나 더 있다. 그 우주선 안에 한국의 장비가 실렸다. 한국천문연구원과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제공한 초소형 위성 ‘K-라드큐브’가 아르테미스 2호에 탑재돼 함께 발사됐다. 국내 기술로 만든 큐브위성이 유인 심우주 비행 임무에 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천 년간 달을 올려다보기만 했던 민족이, 마침내 달을 향해 무언가를 띄워 보낸 것이다. 소원을 비는 대신, 기술을 쏘아 올렸다.

K-라드큐브의 임무는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구를 도넛 모양으로 감싼 방사선 띠 ‘밴앨런대’를 비행하며 우주방사선이 우주비행사의 신체와 전자장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미래에 인간이 달과 우주를 더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기초 자료를 쌓는 임무였다. 달을 향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조용하고 묵묵한 과학의 일이었다.

그러나 결말은 쓸쓸했다. K-라드큐브는 발사 후 사출에는 성공했지만 지상국과의 교신에 끝내 실패했다. 위성은 대기권에 진입해 소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당국은 밝혔다. 첫 도전은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실패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달을 향해 무언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수천 년의 그리움이 행동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응답 없이 사라진 신호 하나가, 그래도 우주 어딘가에 닿았을 것이라 믿고 싶다.

아르테미스 2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달의 뒷면을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육안으로 목격했다.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달의 얼굴이었다. 수천 년간 시인들이 노래하고, 어머니들이 소원을 빌고, 나그네들이 그리움을 달래던 그 달의 이면을 — 인간의 눈이 마침내 마주한 것이다. 그리고 4월 10일, 오리온 우주선은 샌디에이고 인근 태평양에 안착했다. 네 명의 우주비행사는 모두 무사히 귀환했고, 이튿날 휴스턴 땅을 다시 밟았다. 10일간의 여정이 그렇게 마무리됐다. 달을 노래하고, 달에 소원을 빌고, 달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우리가 이제 달의 뒷면까지 들여다보고 무사히 돌아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달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달라졌다.

달은 늘 거기 있었다. 우리가 마당에서 올려다볼 때도, 타향에서 눈시울을 붉힐 때도,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도. 달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달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감정으로만 닿던 그 거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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