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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백경혜] 복 짓는 나라

Last updated: 11월 29, 2024 10: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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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가 집권하기를 간절히 바랐던 내 친구는 환한 얼굴로 가게에 들러서 신이 난 김에 점심까지 사주고 갔다. 희망으로 들뜬 친구의 소망대로 근심거리가 하나씩 해결되고 치솟은 물가도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인은 조국을 위대한 나라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를 수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에선 그것을 오만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 오기 전 내가 그랬으니까. 회사 일로 미국인을 대할 때 거침없고 자신에 찬 그들의 태도에 당황할 때가 있었다. 이곳으로 이주하고도 한동안은 관공서나 마트 직원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하고 겸손한 한국인에 비해 그들은 무표정하고 사무적이었다. 아마 안 들리는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어 더 그리 느꼈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하면, 나는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


첫째, 이 나라는 약자를 보호한다.


이민 초기에 아들 초등학교에서 열렸던 탤런트 쇼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파헬벨의 〈캐논〉 피아노 연주를 준비한 아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다. 한 소녀가 〈작은 별〉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조율이 안 된 악기로 서툴게 연주하니 나중엔 어느 부분을 지나는지조차 모호하게 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차분하게 끝까지 연주한 아이도, 환호하는 관객도 신기하게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미숙한 춤과 노래와 연주가 거듭되었고, 모두 빛나는 얼굴로 박수를 받았다. 열심히 연습한 아들도 큰 박수를 받았다. 아들은 무대 위에서 실수할까 봐 걱정했고 나는 연습을 강요했었다. 그런 한국 엄마와 한국 아들은 그토록 ‘편안한’ 무대를 지켜보며 어리둥절했다. 그 탤런트 쇼가 마음속에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무대는 열매를 뽐내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들은 무대 위에 가능성과 자신감의 씨를 뿌리고 있었다. 


초등학교에는 수업 중간에 놀이터에서 30분간 뛰어노는 리세스 (recess) 시간이 있다. 교과과정이 무리 없이 천천히 진행되어서인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 표정은 밝고 편안했다. 아홉 살까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피아노, 한자, 영어, 수학 과외를 받느라 지쳤던 큰아들은 농담처럼 하늘나라로 날아가고 싶다고 가끔 가슴을 철렁하게 했는데, 미국에 들어온 후 비로소 땅의 세계에 재미를 붙였다.


아이들뿐 아니라 장애우도 반려동물도 이곳에서의 삶이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공연장과 주차장의 좋은 자리는 장애우를 위해 비워둔다. 쇼핑센터엔 전동 쇼핑 카트가 잘 준비되어 있다. 반려동물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은 이민 초기에 알게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면 무표정하게 걸어오던 맞은편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은 빼어난 자연유산을 가지고 있다.


오종찬 원장님이 이끄는 달라스 한국문화원에 소속되어 ‘63개 미국 국립공원 돌아보기’를 도전하고 있다. 미국 국립공원은 연방정부가 자연과 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관리하는 특별 보호 구역이다. 달라스에서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다가 대륙 구석구석을 방문하게 되니 마치 호롱불로 발끝만 비추다가 LED 등을 하나씩 밝히는 듯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레드우드 국립공원 (Redwood National Park)에는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인 하이페리온이 살고 있다. 높이는 약 115.92미터인데, 정확한 위치는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 나무들이 대부분 하늘 높이 솟아있기 때문에 이 미터도 안 되는 사람이 고개를 바짝 들고도 가까이에서 하이페리온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 중엔 2,000년이 훌쩍 넘게 살고 있는 나무도 있다. 한반도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싹트기 시작한 나무가 여전히 푸른 잎을 반짝이며 수 세기에 걸쳐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경이로움에 가슴이 뛰었다. 


푸에블로 원주민의 고대 유적을 보호하는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 (Mesa Verde National Park)같이 문화 역사적 가치 보존을 위한 국립공원도 있다. 대부분의 공원에선 자연이 주인공이어서 떨어진 나뭇가지나 돌멩이 하나도 허가를 받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1916년에 설립된 국립공원관리청(NPS)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 원칙을 세우고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었다. 쓰러지고 타다 남은 나무도 동물의 서식지나 토양을 위해 남겨두었고, 방문객 수를 엄격히 조절하는 곳도 있었다. 오래된 문화유산뿐 아니라 잘 보존된 자연도 국민의 자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년설이 덮여있는 알래스카의 데날리 국립공원 (Denali National Park)부터 산호초와 열대우림이 아름다운 사모아섬의 아메리칸 사모아 국립공원 (National Park of American Samoa)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산명수려(山明水麗)한 자연을 광범위하게 품고 사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 으뜸일 것이다. 

이 땅에 마음 붙이고 사는 이유가 두 가지뿐이겠는가. 주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와 평등이라는 거센 줄기가 전체를 아우른다. 나에게 행복할 권리가 있는 것만큼 남의 행복할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러니 법을 지키는 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건가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땅의 사람들이 당당한 이유를 알게 된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변하고 있는 걸까. 

  

부디 새 리더가 복 많은 이 나라를 잘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복을 짓는 진정 위대한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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