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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코코헤드

Last updated: 12월 31, 2020 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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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필씨, 사람을 때리면 폴리스에 잡혀가서 무슨 벌을 받는지 알아?”

“어제 내가 누구를 때렸어?” / “나와 탱고를 추던 춤 선생님을 쳤잖아?”

“에쿠, 많이 다치셨나?” / “상필씨의 주먹을 피하려다가 넘어졌어. 다치지는 않았어. 다행이었지.”

“어떻게 사죄하면 되지? 사과할께. 기회를 만들어줘. 레이, 날 좀 봐줘.”

“상필씨, 미국에서는 폭행 현행범은 2년 이상의 징역 아니면 1만 달러 벌금형이야.”

“레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거야?” / “춤 선생님이 폴리스는 부르지 말라고 했어.”

“그럼 용서한거야?”

”하와인들은 모욕을 받으면 받은 대로 상대해주는 게 법이야. 쉽게 말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뜻이야.” / “그럼, 춤 선생이 결투라도 걸어온다 이거지?”

“춤 선생은 그의 애칭이야. 그의 이름은 리차드야. 리차드는 우리 클럽에서 유스 교육을 맡고 있는 이사님이셔. 결투는 피할 수 없게 되었어.”

“어떻게? 총으로 하나? 아니면 칼, 아니면 권투?” 

“상필씨, 지금 장난해요? 미국에서는 총, 칼 같은 무기로 결투하는 법이 없어진지 오래야. 해밀턴 시대가 아니라고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해요.”

상필이 미국에 와서 비즈니스를 하며 조심한 것은 절대로 나쁜 상황에 빠지지 않는 일이었다. 오지에 들어가 길을 잃는다든지, 술집에 가서 시비가 붙는다든가, 자동차 스피드 사고를 낸다든가, 여성들과 연애에 얽히지 않는다는 것들이다.   

“니는 우리 집 3대 독자다.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제?”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식사기도 대신 하던 아버지의 말씀이다.

“상필아, 몸을 잘 간수해야 한다. 몸만 성하면 된다.” 엄마도 이렇게 거들었다.

“오늘 오후 1시에 리차드와 코코헤드에서 만나기로 했어.”

“아니, 그럼 결정된 거네. 짜식… 술김에 한 번 친 건데, 맞지도 않았다면서 사과한다면 사과를 받을 일이지 그걸 갖고 결투를 걸어? 그 친구 몇 살이야?” / “상필보다 2살 많아.”

“그 친구 꼰댄줄 알았는데 32살? 좋아. 근데 코코헤드가 뭐야?”

“호놀룰루에 ‘헤드’라는 말이 들어가는 산이 두 군데 있어. 하나는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이고, 또 하나는 코코헤드(Koko Head)야. 다이아몬드 헤드는 호놀룰루의 명소로 잘 알려진 화산 산이고 코코헤드도 그와 못지 않은 명성을 가지고 있는 좀 거친 산이야.”

 

결투를 총이나 칼로 하자는 말이 없는 걸 봐서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닌가 보다. 지상천국이라는 하와이에 와서 사랑스런 레이도 만나고 앞으로는 레이와 꿈길을 걸을 것만 같았는데 결투라니, 말도 안되었다.  

코코헤드는 와이키키에서 한 20분 거리에 있었다. 72번 하이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서쪽 산골짜기에 묻혀있는 고급 주택들이 나오고 그 사이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오른 코코헤드가 보인다.

그리 높은 산 같지는 않았다.  파킹장에 그가 와 있었다. 턱시도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은 춤 선생 모습은 어리론가 없어지고 그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과시하듯 몸에 꽉 끼는 스포트 웨어를 입고 빨간 포르쉐 앞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있었다.

레이가 다가서자 레이와 포옹을 하고는 상필에게 다가왔디. 상필이 먼저 손을 내밀며 어제는 실례가 많았다고 사과를 했다. 그가 다 이해한다는 듯 상필의 어깨를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레이는 내 동생입니다. 이제 당신은 내 처남입니다.”

뭐야? 결투를 한다더니. 공연히 겁먹었잖아. 상필이 속으로 ‘천만다행’을 외쳤다.

“상필을 만난 기념으로 호놀룰루의 유명한 산 코코헤드 등산이나 할까하고 불렀어. 하하하!”

 

코코헤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아후 섬의 방어를 위해 이 산의 정상에 초소를 만들고 보급물품을 보관하던 곳이다. 산의 정상까지 무기를 운반하기 위해 철길을 만들어 이용했던 곳으로, 75여 년이 지난 지금은 철로와 받침목만 남아 있어 하와이 사람들이 즐기는 하이킹 코스가 되었다. 

다른 하이킹 코스와는 다르게 코코헤드는 정상까지 죽 계단으로만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철로로 산을 좌우 이등분 한 모양이 마치 ‘가운데 가르마’를 타놓은 듯했다.

상필이 얼른 이이폰으로 코코헤드를 탐색했다. 코코헤드는 바닥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이 약 1km이고 산의 높이는 약 360m라고 나왔다. 트레킹 난이도는 Medium이며, 보통 성인들이라면 정상까지 25분 소요, 강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 20분 소요, 강한 체력에 강한 의지의 소유자라면 17분이라고 토를 달아놓았다.

“저기 정상에 우리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어. 우린 여기 첫 계단부터 밟고 올라가는 거야. 계단이 1,048개야. 레이, 시작 신호를 보내줘.” / “오케이. 지금 1시 15분이야. 출발!”

이것들이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상필은 ‘나는 지지 않을 것이다’를 속으로 부르짖고 발을 떼어놓았다. 코코헤드는 완만하더니 점점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했고 거의 45도의 급경사가 되었다. 

360미터의 산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철로 받침목들이 땅과 떨어져 들떠있는 상태여서 발이 빠지기 십상이었고 받침목과 받침목의 넓이는 거의 1미터나 되었다. 이건 단거리 경주다.

“자, 천천히 등산하는 거야.”

리차드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여유를 부렸으나 발은 빠르게 움직이며 상필을 앞지르고 있었다. 일직선으로 뻗은 철로를 들어서 산에 옮겨놓은 듯한 삭막한 트래킹이었다. 처음엔 리차드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는데 리차드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상필의 투지력이 발동했다. 산의 정상을 올려다보니 까마득했다. 태양은 거칠 것 없이 내려 쪼이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리차드는 선 글라스에 모자도 쓰고 물병도 옆구리에 차고 있었다.

상필은 온 몸을 적에게 완전히 노출된 상태에서 총알을 피해 사투를 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자. 뛰자. 오르자. 넘자. 상필은 군대에서 가상 고지점령 하던 기억을 떠 올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상필은 급경사진 철길을 공중부양 하듯 튀어 올랐다.

“Arrived! Arrived! 와우, 상필 도착. 1시 25분. 10분 걸렸다. 기록이다. 기록이야.”

상필이 정상에 왔을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리차드, 도착. 1시 32분. 17분 걸렸다. 리차드의 평소 기록이 20분인데 3분 기록 갱신.”

리차드도 숨을 헐떡이며 상필 옆에 큰 대자로 누웠다.

“레이는 25분.” 레이가 상필에게 다가갔다. “수고했어. 잘 했어. 자랑스러워.” 하면서 물병을 건네주었다.

“상필이 이겼어!.” / “뭘 이런걸 가지고.”

상필이 멋쩍어하며 레이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자 리차드와 그의 친구들이 세례라도 하듯 물을 부우며 ‘Great! Great!’을 외쳤다.

멀리 하나우마 베이가 보이고 그 너머 끝없이 푸른 태평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코코헤드 정상에서 부는 바람이 흠씬 땀으로 젖은 상필의 몸을 금방 말렸다. 리차드가 ‘I love you’ 하와이 식의 손 싸인을 보내왔다. 필이 V자로 답례했다.

 

김수자

하와이 거주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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