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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이소離巢, 큰아이가 둥지를 떠났다.

Last updated: 5월 21, 2021 9: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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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뒤란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던 새 소리가 멈췄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간 모양이다. 이소離巢,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난다는 말이다. 

시간이 되면 떠나가는 것, 자연계에서는 흐르는 시간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 또한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연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이리 슬픈 걸까. 시끄럽게 울던 어린 새가 이소離巢를 해서 착지한 곳이 바로 내 안인가 보다. 

 

아침 일찍 이삿짐 차에 짐을 실어 보내고 늦은 출근을 했다. 허둥지둥,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내 안의 등이 다 꺼진 듯 아득하기만 했다. 심지마저 다 타버린 것 같다. 삼십일 년을 무사히 잘 키워 짝을 지어 살림을 내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급하게 흐르던 시간이 갑자기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슬프게 바라보면서 이 시간도 흔적으로 남으리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짐 풀어 정리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아 일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대충 정리를 하고 씻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마트에 들러 김치와 쌀을 사서 나오는데 아이들이 마중 나왔다. 이사하는 날은 자장면을 먹어야 제격이라며 자장면과 탕수육으로 저녁을 때우고 이사한 집으로 향했다. “아! 여기가 이제부터 우리 아이가 살아갈 집이구나!” 여기저기 살펴보며 “좋다! 좋다!”를 연신 기분 좋게 쏟아놓고 서성대는 아이가 애처로워 일찍 쉬라고 하고 일어섰다. 지난 며칠 동안 마지막 시험을 보느라 눈 밑 다크써클이 턱까지 내려왔던데 거기다 짐까지 꾸렸으니 아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위아래 층을 오르내리며 짐을 끌어 내리고 다시 새 둥지로 끌어 올리느라 녹초가 되었을 텐데 싱글벙글 마냥 좋은가 보다. 이제부터는 내 아들만이 아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데 아이가 달려와 꼭 안아주었다. “엄마, 사랑해! 잘 살게.” “그래, 우리 아들 잘 살아!” 하고 등을 토닥여 주고 돌아오는 길 내내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삶의 무게를 다 받아내야 할 등. 그 등이 휘도록 힘겹게 살아갈 모습을 생각하니 안쓰러워 또 울었다. 가슴 한 쪽을 뚝 떼어놓고 왔으니 아프고 허전해서 어찌 살아 갈까. 이대로 살아지기는 할까. 

 

불 꺼진 아이의 빈방에 불을 켰다. 아직은 아이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열두 살부터 서른한 살까지 십구 년 동안 아이를 품고 있었던 방. 하루아침에 주인을 잃은 방은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방은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주인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아이의 호흡, 숨을 다 받아낸 방.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잘 키워낸 방. 아이의 생각과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방. 마치 인큐베이터처럼 이 방에서 아이는 꿈을 꾸었고, 그 꿈에 색을 입히고 날개를 달았겠지. 기쁨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슬픔으로 방안을 흠뻑 적시기도 했겠지. 그 모든 것으로 가득 찼던 방은 서서히 아이의 체온을 내려놓게 되겠지. 

 

분가를 시키려면 짐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분가를 시켜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짝사랑에는 마침표가 없다고 한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자식에 대한 엄마의 짝사랑이 아니던가. 내 허락도 없이 엄마 마음대로 나를 낳아 딸로 만들었으니 죽을 때까지 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분명하다. 힘들고 아플 때마다 어찌 알고 기어이 꿈속까지 찾아오시는지 엄마만 보아도 알겠다. 돌아가서도 분가를 시키지 못하고 마음 졸이시는가 보다. 부모 자식으로 만난 인연이기에 비록 몸은 이소離巢를 했지만 마음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기는 한 건지 의문이 생긴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서툴렀다. 사랑만 해도 그렇다. 엄마라는 명분으로 내 방식대로 한 사랑은 설익은 것이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라고  얼버무리기에는 30년은 너무 긴 세월이다. 생각만 해도 부끄럽고 부끄럽다. 나의 자궁, 내 안의 궁전에서 키워 세상에 내놓았다고 유세는 또 얼마나 떨었던가. 엄마의 말이라고, 내 말이 다 옳다고 억지는 또 얼마나 부렸을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했던 발칙한 말과 행동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치부책이 있다면 가장자리도 빈 틈도 없이 꼼꼼히 적혀 먹빛 바다처럼 깜깜할 것이다. 내가 다 벌여놓은 일이니, 수습도 내 몫인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래저래 내 마음은 먹빛 바다 속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다. 서툴고 설익은 사랑이었지만, 진심을 다한 진정한 사랑이었다.

 

밤새 봄비만 내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출근하려고 준비를 하다가 거울을 보고 그만 놀라고 말았다. 퉁퉁 부은 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른쪽 눈에 핏줄이 터진 듯 붉은 노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로 시작되는 문정희 시인의 “쓸쓸”이란 시를 자주 떠올린다.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슬픔이다. 

 

방을 들여다본다

네가 없다

 

불의 심지는 이미 그 어디론가 옮겨졌고

방의 소리는 아득하다

아주 사라진 것처럼

 

싹을 틔우던 

숨소리를 더듬는다는 것은

내 안의 빈자리를 더 키워내는

네 이름이 누적漏籍되고만 불 꺼진 방을 보는 것

눈만 더 시려 울 뿐이다

 

나는 빈방을 들어선다

아니

한 가슴 가득 품는 것이다

차라리

 

김미희, (빈방)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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