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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소담 한꼬집] 풀의 연인

Last updated: 8월 19, 2022 11: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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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사모님을 달라스한인문학회 7월 모임에 특별 게스트로 모셨다. 코로나 이후 외부 행사를 하는 게 조심스러워 후일을 도모하고 있던 차에 생각도 못 했던 기쁜 일이었다. 

문학회에 새로 가입한 분이 섬기는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김현경 사모님의 손녀가 봉사하는데, 그분이 친할머니인 김현경 사모님 달라스 방문 소식과 할아버님이 김수영 시인이라는 걸 알려주셨다. 

달라스에 계실 때 문학회에 한 번 모시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고 연결해주셨다. 가뭄에 단비 같은 시간을 갖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 

사모님을 모시면서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낳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오신 회원도 귀한데, 그 귀한 분의 주선으로 또 다른 만남이 이루어지고, 문학회 회원과 사모님 사이에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이 생겼을 테니 말이다. 

연락처를 받고 전화를 드렸더니 흔쾌히 초대에 응 해 주셨다. 빨리 뵙고 싶어서 급하게 모임 장소를 알아보았다. 정기적으로 모였던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장소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럴 때 문학회 사무실이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딸내미 말에 의하면 시립도서실 미팅룸을 대여해 주는데, 방이 사이즈 별로 있고, 예약만 미리 하면 가격도 싸서 생각보다 괜찮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정말 그랬다. 크게 웃고 떠들지 못한다는 게 조금 불편했지만, 창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니 분위기도 식당의 전깃불보다 좋았다. 또 하나 배웠다, 시립도서실에 미팅룸이 있다는 거. 다음 모임도 그곳에서 하면 될 것 같다. 

김현경 사모님과 모임 전에 카톡을 여러 번 나누었다. 이것저것 모임에 관한 의견을 보내드렸는데 그중 하나가 호칭에 관한 질문이었다. 

사모님은 김수영 시인이 돌아가시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김수영의 연인』이라는 수필집을 출간하셨다. 그 책이 절판되어 다시 보완해 찍은 책이 『낡아도 좋은 것이 사랑뿐이냐』였다. 

수필집도 내시고 공저도 있으니 모임에서 호칭을 작가님이라고 불러드려도 되겠냐고 여쭤보았을 때 몹시 당황스러워하셨다. 

나는 김수영 시인의 아내로 낮아져야 한다며 절대 남편의 길에 누가 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이셨다. 그런 의지는 두 번째 수필집을 읽을 때도 느꼈다. 멋진 분이셨다. 

사모님은 9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곱고 건강하셨다. 건강 비결을 궁금해하는 분들께 아무거나 잘 드신다고는 말씀하셨지만,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도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똑같이 힘든 일을 겪고 산 사람이라고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냈느냐에 따라 얼굴이 다르다. 그래서 노후의 얼굴은 자신의 인생 성적표와 같다. 안달복달하는 형보다 긍정적인 마인드형의 얼굴이 훨씬 편안해 보인다. 주름살과 상관없이 말이다. 

책에서 만난 사모님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다락방에 갇혀 벌을 받으면서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아이였다.

무슨 일이 닥치든 주저앉아 울거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살길을 찾고 방법을 마련하는 진취적인 분이셨다. 

주저앉아 원망하고 앓을 누울 시간에 뭐라도 해보는 것이다. 시인의 아내로 사는 길, 시인을 시인답게 만드느라 애쓰는 길이 무엇인지 그분의 강의와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모님은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시다. 보청기를 끼어서 조금 크게 말씀드려야 하는데 일단 입력만 되면 그 많은 기억을 마치 어제일 말씀하시듯 이야기로 풀어내신다. 

재밌고 진솔한 진정한 이야기꾼이시다. 길이름, 사람 이름, 연도, 책 이름, 겪었던 일들을 말씀하시는데 마치  책에 있는 내용을 옆에 앉아서 육성으로 듣는 느낌이 들었다. 

사모님은 불편한 질문에도 지혜롭게 답하셨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솔직히 인정하는 멋진 분이셨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은 그런 아내를 사랑했던 것 같다. 

보석 같은 아내라며 자랑스러워했고, 애처로운 아내라며 안쓰러워했다. 문명된 아내가 해줄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초고를 청소해주는 일이었다. 필사를 해주고, 시에 대한 느낌을 나누고, 영화와 책을 이야기하고,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남편의 분노와 화를 받아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것은 사모님이 회원들에게 남편의 시 “풀”을 육필로 써서 사인하여 일일이 나눠주셨던 일과 내 손을 잡아주시며 졸시를 칭찬해주신 일이다. 

그 칭찬이 송구스러우면서도 힘이 되었다. 그분은 고래를 춤추게 하는 분이셨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으니 말이다.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으셨고, 작은 것까지 세심히 챙기셨다. 그분의 젊은 시절 연애담에 관해 올라온 기사나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 바라기는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그분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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