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사는 도시는 우리나라 서해안과 맞닿은 바다를 가지고 있는 <연태>라는 도시이다. 인천에서 배로 17시간, 비행기로는 1시간 반이면 가는 우리나라와 아주 가까운 중국 해안 도시이다. 비교적 중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덜 알려진 곳인데, 친구는 나와 국제통화를 할 때마다, 자기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추측하기를 우리나라로 치면 읍이나 면 정도 규모의 동네로 여겼다. 하긴 서울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의 기준으로 보면 웬만한 도시는 다 시골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빨간색 스튜디어스 복장이 인상적인 중국 동방항공을 타고 내린 연태 공항은 예상외로 국제공항이었다.
새로 지었는지 공항 내부도 깔끔했고, 규모도 제법 컷다. 아직 오전이어서인지 입국장은 한산했지만, 입국을 심사하는 직원들은 깐깐했다. 특히 미국 여권을 가진 우리에게는 어찌나 이것저것을 묻는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아무렴 미국시민이 중국에 불법체류할 일도 없을 텐데, 아무튼 요즘 미국이나 중국처럼 소위 강대국들의 공항직원들은 친절하면 국격이라도 떨어지는 줄 아는지,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친구 부부가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친구는 심지어 꽃다발까지 준비해서, 이런 환영에 익숙치 않은 나를 살짝 당황하게 만들었다.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였지만, 우리는 차에 타자마자 마치 어제 만난 듯 수다 보따리를 풀었는데, 친구는 우리가 연태에 머물 일주일 동안의 스케쥴을 모두 짜놨다고 말했다. 여전히 친구는 계획적이고 준비가 철저하다. 그에 비해 나는 즉흥적이고 미리 준비하는 걸 잘 못하는 편인데, 역시 세 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
친구가 만든 스케쥴은 도착 첫날부터 빡빡했다. 공항에서 집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있는 유적지를 한군데 보고 가는 일정이었다.(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다 했다) 당시 나는 사실 상하이여행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친구의 아파트로 바로 가서 딱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서울 비원의 몇 배는 될 성싶은 봉래각(펑라이거)이란 곳을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중국 4대 명루 중 한 곳으로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유명한 곳이었다. 상하이에서도 느꼈지만, 말로만 듣던 대륙 사이즈는 정말이지 어딜 가나 매머드급이었다. 면적이 경기도 보다 크고 인구가 700만명이 넘는 이 연태라는 도시가 중국 대도시 중 겨우 40-50위권 안에 속한다니 말이다.
친구네 집은 고래 조형물로 유명한 금사탄 해변이 바로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었다. 끝이 없는 해안가가 펼쳐져 있고, 주변에는 소나무숲으로 이루어진 산책길과 공원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청명한 바다는 자주 볼 수없었다. 스모그 현상인지 늘 해무가 서린 것처럼 바다가 뿌옇게 보였다. 중국이 개발되면서 중국 전역 대도시는 물론 우리나라까지도 스모그와 미세먼지가 시도 때도 없이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다.
연태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 후 교역이 가장 활발한 중국 도시 중 하나로 한때는 한인 인구가 십만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철수하고 몇몇 기업만 있어 한인타운은 예전만 못하다는데, 그래도 아파트 단지 내에 한인 상가가 형성되어 있어 생활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조식을 먹으러 하이야트 호텔엘 갔더니 손님 대부분이 주재원 부인들이었다. 친구는 골프 등 한국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를 이곳에서는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아마도 소득 차이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긴 하지만, 14억 중국인의 1인당 소득은 1만 3천불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3만 7천불 정도로 거의 중국의 2배가 넘는다. 그래서인지 물가도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암튼 나 역시 친구 덕분에 미국에서 못 누리는 호사를 누리고 왔다.
한국말이 가능한 중국인 가이드를 대동하고 몇 몇 관광지를 둘러보았고, 100년 역사의 조양가 거리 맛집 투어와 서구식 건물이 즐비한 인상적인 이언 해변가 산책, 청나라시대 감성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소청리에서 봄밤을 맞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소청리 골목마다 켜져 있던 홍등은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공리’ 주연의 영화 <홍등>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그 골목 작은 대문들은 청나라 시대 사람들의 흔적과 숨결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아 참 흥미로웠다.
나는 어떤 여행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아무리 근사하고 유명한 곳일지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냉대하거나 불친절하면 그런 곳은 쉽게 지워진다. 반면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날 남편은 친구 집에 있던 고가의 연태 꼬냑을 비우며, 상하이보다 연태가 더 좋다고 하였다. 나 역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연태를 더 기억할 것이다. 왜냐면 그곳엔 우리가 좋아하는 <논어>의 첫장 “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을 연상시켜주는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안개 낀 연태 바다는 지금도 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