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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소담 한꼬집’ ] 영화가 될 소설

Last updated: 2월 18, 2022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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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설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쓰는 작가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영화로 제작되어 성공하면 여러모로 좋은 거고, 아니면 단행본을 출간한 것으로 만족하면 되니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는 것이다. 그 강의를 들을 땐 그런가 보다 하고 심드렁하게 지나갔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이 자꾸 떠올라 곱씹게 된다. 한발 앞서가는 사람들의 발상은 남다른 것 같다. 영화가 될 소설이라니!  

 

한차현의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을 때 비로소 그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로 와닿았다. 한 작가가 사인해서 건네주었던 책이 바로 그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자극받기에 충분했다. 다음에 만나면 축하주를 사야겠다. 

비슷한 시기에 보았던 박태원의 소설을 재구성한 영화 《소설가 구보 씨의 하루》 또한 그러했다. 시대와 현실은 달랐지만, 다를 것 없는 하루를 그와 걸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였으니 그 또한 자극이 되었다. 내가 아는 작가들은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데, 나만 뒤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시기였다. 어느 순간부터 방향을 잃은 채 일에 휘둘려 지리멸렬해져 가는 삶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어떤 식으로든 자극이 필요했던 차에 참으로 잘된 일이다. 

 

한차현은 자칭 대한민국의 소설가다. 페이스북(이후, 페북)에서 처음 친구를 맺었을 때도, 그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는 쭉 소설이란 한 우물을 파 온 작가다. 작년에 출간한 『늙은이의 가든파티』까지 그의 소설을 아홉 권쯤 읽었으니 찐팬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고 사는 하늘이 달라 페북에 오르는 게시물로 소식을 알게 되니 어쩌면 나는 현실 속의 그를 잘 안다기보다 작품을 통해 만난 소설형 인간으로서의 그를 더 잘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를 생각하면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2018년 겨울, 서울을 방문했을 때 한 작가와 스타벅스에 갔었다. 차 먼저 주문하자고 줄을 섰는데, 등 뒤에 서 있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이번에 쓰고 있는 소설의 서두가 바로 이 상황이에요. 사람들이 많은 커피숍에서 차를 주문하려고 서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저기요 하며 아는 체하는 장면으로 시작되거든요. 어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첫 문장이 좋아야 읽고 싶어지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절반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소설 이야기만으로 환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뼛속까지 소설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좋다고, 재밌을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활기찬 목소리로 얼마나 재미있게 얘기를 잘하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이듬해 출간했던 소설이 『제1회 서울 역삼초등학교 1871 동창모임 준비위원회』였다.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정말로 그러했다.  

“저기요 혹시.” 

그 소설을 읽는 내내 저기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마치 내가 그 학교 동창이라도 된 양 흐뭇했었다. 그리고 잘 엮어낸 그가 자랑스러웠다. 

 

작년 12월, 2003년에 출간했던 장편소설 『영광전당포 살인사건』이 영화로 제작하게 되어 판권계약을 했다는 기쁜 소식이 그의 페북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달 초엔 시나리오를 받았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본격적으로 제작에 돌입한 것 같았다. 그 소설을 읽으며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살인, 복수, 권력, 판타지, 추리, 복제인간, 레플리컨트 등의 키워드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반전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쓴 소설이 영화가 되는 기분은 어떨까.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뿌듯하고 기쁠까. 오랜 세월 한 우물 파며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호랑이해의 좋은 기운이 모두 한 작가에게로 가는 것 같아 덩달아 기뻤다.

 

한 작가도 그 소설을 쓸 때 영화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쓰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인 나도 읽으며 그랬으니까. 생각해 보니 그에게 그런 끼가 없진 않았다. 『제1회 서울 역삼초등학교 1871 동창모임 준비위원회』의 마지막 부분이 그랬다. 소설이 끝나고 작가의 말이 나오기에 끝이구나 했는데 그 뒷장에 마지막 장이 다시 이어졌다. 그에 대해 그는 작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 중간에 나오는 쿠키 영상처럼, 언제고 꼭 한 번 이런 짓을 해보고 싶었단 말이다.”라고. 재미있었다. 그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책을 덮고 나서 한참 웃었다. 한번 활자화되면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책에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일까. 영화가 되는 꿈을 꾸어 본 사람만 저지를 수 있는 끼와 여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후편이 만들어질 것이다. 소설 말미에 등장한 인물이 또 다른 살인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혜영 시인의 시 ‘아무리 숨어 있어도’처럼 좋은 작품은 아무리 숨어 있어도 누군가 찾아내어 기어코 빛을 보게 하는 모양이다. 영화가 원작을 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무쪼록 책 속의 이야기가 잘 옮겨져 좋은 영화로 태어나 돈도 벌고. 책도 많이 팔려서 한 작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그의 성공이 밤을 하얗게 새우며 소설과 싸우는 무명작가들에게 소설 쓰는 일이 희망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 개봉이 기다려진다. 

박인애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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