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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박인애의 소소하고 담담한 이야기] 불경기 속의 크리스마스

Last updated: 12월 26, 2025 3: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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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ow Bend Mall은 우리 집에서 차로 5분이면 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혼자서 운전해 갈 수 있는 유일한 쇼핑몰이기도 하다. 우리가 캐롤톤에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 몰에는 Macy’s, Dillard’s, Neiman Marcus를 중심으로 수많은 소규모 매장이 입점해 있어서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푸드 코트는 물론이고 몰과 몰을 연결하는 통로조차 빈 부스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Neiman Marcus 앞 공간에는 크리스마스트리나 산타와 사진 찍기 등의 이벤트 공간이 설치되고, 매장마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 시절의 백화점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이 지역 사람들의 일상과 시간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곳이었다.

  아이를 키우던 시절, 그곳을 자주 찾았다. 학교가 끝난 오후, 푸드 코트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사주고 실내 놀이터에 들여보낸 뒤, 나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곤 했다. 텍사스의 무더위를 피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자동문이 열리면 작은 분수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린 소녀 동상이 우리를 반겨 주었고, 딸은 늘 그 소원을 빌며 그곳에 동전을 던지곤 했다. 

  그곳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처럼 보였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 줄 것만 같았다. 9·11 테러 이후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도 잘 버텼는데 코로나는 달랐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가장 먼저 흔들린 건 오프라인 상권이었다. 설상가상, 관세 폭탄과 이민자 정책 변화, 물가 상승과 고금리가 겹치며 불황은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 지속되는 흐름이 되었다. 한 번 꺾인 소비 심리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백화점도 버티지 못했다. 지난 3월 Macy’s가 폐점했을 때, 부지 소유주가 바뀌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Dillard’s는 내년 1월에 폐점할 예정이어서 클로즈아웃 세일 중이고, Neiman Marcus는 2027년 1월에 닫을 예정이다. 

  딸과 함께 Dillard’s에 갔다. 1층과 2층에 세일하는 물건들이 질서 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는 끈과 테이프로 막아놓았고, 구석마다 빈 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임박해서인지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많았다. 실패한 공간 속에서 철없이 반짝이는 조명, 끝까지 제 할 일을 하는 직원들의 웃음기 없는 얼굴도 모두 슬퍼 보였다. 그 직원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걸까? 불황 속의 크리스마스는 헛웃음조차 밖으로 내지 못하고 삼키게 하였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은 불 꺼진 곳이 많았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남편도 요즘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수입만 줄은 게 아니라 웃음도 줄었다.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도 이리저리 계산을 끼워 맞추며 버텨보려 애쓴다. 사업을 한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버는 일 뿐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불황은 더 아프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너무 쉽고 가볍다. 그래서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입에 발린 위로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

  백화점이 문을 닫는다고 그 곳에서의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아기 옷을 샀던 곳, 아이 손을 잡고 걸었던 복도, 지인들의 선물을 골랐던 어느 오후, 글을 쓰던 의자. 백화점은 사라져도 추억은 영업을 끝내지 않는다. 우리 동네 백화점의 시대는 저물어 간다. 쇼핑몰을 새로 인수한 소유주가 그 부지를 주거, 식당,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포함한 복합 용도 단지로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속히 지역 상권과 소규모 비즈니스, 커뮤니티 중심의 공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 관세와 정책의 재검토, 이민자와 소상공인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이 절실하다. 

  2025년 송년 특집 불후의 명곡 김준수가 부른 테스형이라는 노래가 훅 들어와 박혔다. 

  “그저 와 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이라는 노랫말이 이 시대를 힘겹게 버티는 가장들의 속엣말처럼 들렸다. 소크라테스는 그 답을 알고 있었을까? 답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도 온전히 알기 어려운 존재가 사람인데, 누가 누구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백화점의 불은 꺼져가지만, 질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묻고 있다.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든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럼에도 나는 조심스레 희망 쪽에 기대를 걸어본다. 크리스마스 전구가 마지막까지 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처럼, 불경기 속에서도 쉽게 희망의 불을 끄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방향이든지 문이 열려서 지금 현실을 지나 다시 일터로 돌아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아본다.  

  아무쪼록 기쁜 성탄 맞으시고, 새해엔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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