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의 후계자이자 첫 흑인 대선 후보… 향년 84세
미국 시민권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자 민주당 대선 경선에 두 차례 도전했던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가 84세로 별세했다. 가족 측 대변인은 2월 17일 새벽 그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잭슨은 1984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해 주요 정당에서 전국 단위 대권 캠페인을 벌인 첫 흑인 후보로 기록됐다. 1988년 다시 도전해 미시간 경선에서 승리하며 한때 선두 주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두 날개가 있어야 난다”
198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그는 “진보의 무한 확장도, 보수의 정체도 답이 아니다. 상호 생존의 임계점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날기 위해선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연설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노동자와 소수계 권익을 강하게 옹호하는 연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지지자들은 그를 소외된 계층의 대변자로 평가했지만, 일부 보수 진영과 평론가들은 그가 과도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남부 인종차별 속 성장
1941년 10월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난 그는 분리 교육이 유지되던 남부에서 성장했다. 1960년 백인 전용이던 공공 도서관에 항의하며 ‘그린빌 8인’ 시위에 참여해 체포됐다. 이후 앨라배마 행진에 참여했고,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 활동을 했다.
1968년 4월 4일 멤피스 로레인 모텔에서 킹 목사가 암살됐을 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이후 장례 행렬에도 동행했다. 그해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1년 시카고에 ‘오퍼레이션 푸시(Operation PUSH)’를 설립해 기업 불매 운동과 정책 개혁 운동을 벌였다.
대선 도전과 논란
1984년 대선 경선에서 그는 쿠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지지, 남아공 제재 강화 등을 주장했다. 다수 경선과 코커스에서 승리하며 흑인 후보로는 처음으로 실질적 경선 승리를 기록했다.
그러나 유대인 비하 발언 논란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결국 월터 먼데일 후보에게 패배했다. 1988년 재도전에서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클 두카키스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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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재와 후반기 활동
잭슨은 1980~90년대 시리아, 이라크, 쿠바 등을 방문해 미국인 석방 협상에 참여했다. 2001년에는 불륜과 혼외자 사실을 공개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당시 공개 지지를 표명했지만, 비공식 발언 논란으로 관계가 긴장되기도 했다.
그는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이후 진행성 핵상마비로 진단이 수정됐다. 2023년 레인보우 푸시 연합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며, 2025년 말 시카고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는 생전 “나는 녹슬기보다 닳아 없어지는 쪽을 택하겠다”고 말하며 마지막까지 공적 활동 의지를 드러냈다.
잭슨의 삶은 반세기 넘는 미국 시민권 운동과 민주당 정치사의 한 축을 형성했다. 흑인 대권 도전의 길을 연 인물로, 그의 정치적 유산은 이후 세대 정치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