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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세이 ] 김미희 시인의 영혼을 위한 세탁소 – 소풍

Last updated: 11월 19, 2021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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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고 돌아오니 새벽부터 출사 나갔던 남편이 돌아와 있었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먹을 빵을 사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초봄부터 Aspen으로 단풍 구경 갈 계획을 열심히 세웠었다.

 

내년으로 미루자는 내 제안에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재작년에 다녀온 오클라호마와 알칸소를 가로지르는 Talimena Scenic Drive라도 다녀오자고 10월 중순부터 주말마다 졸랐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작한 운동을 빼먹을 수가 없는 나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 남편은 끝내 포기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와야겠다며 정한 곳이 포트워스에 있는 Japanese Garden이다.

 

그곳에서는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Japanese Festival도 있다고 한다. 더구나 날씨도 좋아 나들이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거절할 핑곗거리가 없다. 

 

아침을 먹으며 갈까말까 민그적 거리고 있는데, 작은 아이가 한 술 더 뜬다.

 

“엄마 아빠 둘이서 데이트 하셔요”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아들 안 가면 나도 안 갈래.” 나는 슬픈 얼굴까지 하고 투정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냥 당신 혼자 다니는 게 더 편하지 않아?”라며 남편의 마음을 살짝 떠보았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털썩 몸을 떨어트리며 남편은 “그럼 가지 말지 뭐”한다.  살짝 삐진 듯한 남편의 목소리를 들은 작은 아이가 사태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벌떡 일어서며 “그럼 빨리 가자. 이러다가 해 떨어지겠다” 하며 위층으로 달음질친다. 

 

Japanese Garden은 아마 10여년 전쯤에 다녀오고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다.

 

 

조수석에 앉아 등을 기대니 몸이 주저 없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당연한 것이 세 시간 동안 스트레칭으로 안 쓰던 근육까지 풀어놓았으니 말해 뭐하나.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기쁜 통증으로 기분은 좋았지만, 몸은 나른하다.  

 

쉬고 싶다고 버틸 법도 했으련만 따라 나서준 우리 모자가 고맙고 미안한지 가는 동안 눈을 붙이라며 의자를 눕히라고 성화다.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들 알고 왔는지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되돌아 나와 찾아간 곳도 만만치 않았다. 할 수 없이 돌아 나오려는데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가족이 바로 우리 앞차 문을 여는 게 아닌가. 

 

횡재였다. 작은 아이가 차 밖으로 내려서 지나가는 차들을 정리하고 남편과 나는 차 안에 앉아 빨리 앞차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오늘이 무난하게 지나갈 것 같은 예감에 기뻐했다.

 

 

정문 앞에 도착하니 몇 대의 푸드트럭 앞으로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역시나 이곳에서도 먹히는 모양이었다. 긴 줄이었다. 

 

그 말에 우리도 덩달아 동조하다가는 장이 파할 때까지 서 있어야 할 것 같아 일단 장 구경부터 하기로 했다. 축제가 있다고 해서 웅장했던 코리안 페스티벌을 생각하며 조금 기대는 했었다.  별스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코리안 가든이 반듯하게 도시 한복판에 조성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구 부러웠다.

 

이곳 일본 정원은 1973년에 완성되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조경 디자인을 따라 꾸며졌다. 대나무와 벚나무 등 잘 다듬어진 소나무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조용한 연못정원에 맑은 햇빛을 받으며 조화롭게 서 있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는 단풍구경 나온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고도 남았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오작교가 재건축 관계로 폐교되어 있어 잠깐 아쉬웠다. 

 

 

어딜 가나 눈에 거슬리는 풍경은 꼭 있기 마련이다. 연못정원의 핫 스팟. 누구나 한 번은 그곳에서 포즈를 잡고 추억을 남기고 싶을 만한 곳. 

 

그곳은 가냘픈 수양버들 가지들이 연못에 닿을 듯 말듯 흔들리고 뒤에는 오작교가 있어 운치를 더해주었으며 배경으로는 단풍나무들이 가을빛을 한껏 받아 빛나고 있었다. 한 사내아이가 창피한 듯 혼자 뒷전에 서 있었다. 

 

아빠인 듯한 사내는 카메라를 잡았고 아이의 엄마인 듯한 여자는 그 핫스팟에 앉았다 섰다를 거듭하며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줄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기다리다가 보기 민망해진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늘 전용 카메라맨을 달고 다니는 나는 눈살 찌푸리는 일이 생길까봐 눈치껏 “빨리빨리”를 외치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그냥 가자”를 연발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고는 하나, 추억을 남기는데 그렇게 많은 포즈가 필요한 것일까. 

 

 

날이 저물기 전에 소풍을 마치기로 하고 서둘러 나오는데 정문 옆에서 스모 경기가 발을 잡았다. 티브이로만 보았던 스모 경기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스모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를 기초로 한 신을 모시는 행사였다고 한다. 건강과 힘을 타고난 남성이 그 힘을 다 바쳐 신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행위라고 한다. 

 

그 때문에 예의작법을 중시하는 일환으로 스모 선수는 마와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몸에 착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달라스는 물론 휴스턴에서 올라온 많은 선수가 짧은 레깅을 받쳐 입었지만, 두 선수는 마와시만 입고 경기를 했다. 

 

알몸에 가까운 복장 때문인지 경기를 보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린이들이 나쁜 영상을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새삼 생각났다. 

 

 

아침나절에 남편으로부터 사진 몇 장이 날아왔다. 어제 찍은 사진이었다. 달라고, 보여달라고 해야 겨우 몇 장 던져주며 인색하게 굴던 사람이 예전과는 달리 인심이 후해졌다. 얘기 꺼내기도 전에 자진 납세까지 하니 말이다. 

 

그런데 가족사진이 달라졌다. 어색하다. 가족사진 속에는 늘 네 명이 웃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세 명이 된 것이다. 

 

머지않은 날에는 남편과 나 둘만 남게 되리라 생각하니 벌써 허전하고 쓸쓸해진다. 넷이 다섯이 되고 또 여섯이 될 거라고 좋아했는데, 셋이 되고 둘이 되는 것에 먼저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인생은 소풍인 것이 맞다. 혼자 왔다 혼자 떠나는.

 

낙엽 같은 얼굴에 군데군데 구멍 난 웃음이 쓸쓸하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시 한 편 모셨다고 신바람 날리는 그에게

‘보여주시라’ 했더니

사진 한 장 보내왔다

 

개벽부터

일찍 이었으리라

돌인지 나무인지 구별 안 가는

석부작(石附作) 옆에 사선으로 서 있는 노송 한 그루가

초월 된 절창인 것은

 

바람을 세워 허공을 메운 문장이

그리움도 후회도 남지 않을 무영(無影)의 존재이고

그것은 아직도 그런 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남아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머리보다 더 큰 심장이어서

쉬 따라나서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바람, 한 줌

계속 기다리고 있다

꽃을 피울 줄 아는 소리 없이 오는 것들을 위하여

 

김미희, (인생 시),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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