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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전문가 칼럼

레오의 반란

Last updated: 8월 21, 2020 9: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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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지?” 나는 갑자기 어지러워서 뒤뚱거렸다. 마른 침을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왜, 왜 그랬는데?” 레오라고 바꾸면 레오나드로 디카프리오나 레오나드로 다빈치라도 될 거 같으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퍼부었다. 나 몰래 사기라도 치고 도망자 신세라도 되었냐고 다그쳤다. 그러다가 톤을 바꾸어서 길수보다 낫고, 지권이보다 낫다고 선하라는 이름이 얼마나 선하고 근사한 건데 그걸 버리느냐고 얼렀다. 당신한테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이름이 좋아서 좋아하게 되었노라고 달랬다. 하! 살다 보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질러댈 때가 다 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시민권은 무슨 시민권이냐며 한국 사람으로 남겠다고 하던 사람이 생각도 안 하고 단숨에 개명까지 하다니. 영주권으로 살겠다고 할 때 그냥 내버려 둘 걸 후회막심이었다. 

 

나이도 있으니 이쯤에서 시민권을 따는 게 낫겠다고 내가 졸라서 시작된 일이었다. 시민권 인터뷰를 통과하면 그 자리에서 이름을 바꾸겠냐고 묻는다.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미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것도 좋겠지만,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고 딱히 발음이 어렵지도 않고 이름에 대한 불만도 없었기에 바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남편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덜컥 이름을 ‘레오 김’으로 바꾸고 왔다는 것이다. 내일모레면 육십인데 살아온 세월은 다 어쩌려고 생각도 없이 그런 일을 벌였느냐고, 도대체 이름을 바꾼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제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고 해서 그냥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서른 살만 되었어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육십 년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남긴 흔적들이 얼마인데 그건 다 어찌할 건가. SNS 아이디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그 많은 서류에 일일이 이름을 바꾸는 작업은 또 어찌할 건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운명이 달라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려 작명가를 찾아가기도 하고 덕망 높은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나이에 이름을 바꾼다고 운명이 달라지면 또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춘분, 아주 오래전부터 진영이가 된 소꿉친구다. 그 친구는 오빠, 남동생과 여동생 향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까지 대가족이 함께 살았다. 물론 부모님도 계셨다. 그 친구의 고모를 따라 친구와 나는 이른 봄이면 달래 냉이를 캐고, 여름이면 깊은 산으로 산나물 캐러 가기도 했다. 가을이면 솔방울도 줍고 나무도 했다. 친구 따라다니며 처음 해본 것이 참 많았다. 동네 친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갔지만, 그 친구는 중학교마저 진학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상심이 컸던지 몇 날을 끙끙 앓다가 의원을 찾게 되었다. 그곳에서 별로 흔하지 않은 친구와 같은 여씨 성을 가진 원장을 만났다. 별다른 증상도 없는데 아프다고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마음의 병이었던 것을 알게 된 원장은 숙식 제공을 하며 보조간호사로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나는 가끔 그 친구가 일하는 의원에 찾아가 얼굴을 보는 거로 안부를 챙겼었다. 그러면서 차츰 잊혔고 그러다가 가끔 떠오르면 가슴 먹먹해지는 친구가 되었다. 

 

정말 싹싹하고 일을 잘하다 보니 친구는 보조간호사로 제법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 이미 춘분이는 진영이가 되어 있었다. 원래 예뻤지만, 더 예뻐진 데다 선머슴 같은 나와는 다르게 멋진 숙녀가 돼 있었다. 개명한 이름 덕이었을까. 전에 없든 당당함까지 있었다. 미국에 와서 살면서도 그 친구 근황이 궁금 할라치면 엄마가 소식을 전해 주셨다. 가슴 아프게도 그 결혼은 성사되지 않았다. 파혼 이후 무슨 연유인지 지금까지 아예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많은 돈을 모아 부모님께 논밭을 사주고 집도 고쳐 주며 가족을 위해 청춘을 다 썼다. 

 

오 년 전에 한국 갔을 때 하루를 함께 보냈다. 이른 나이에 하던 일 다 접고 골프와 여행을 하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거쳐 방통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쓸쓸해 보였던 것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그냥 부모님이 지어준 대로 춘분으로 살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조금은 펑퍼짐한 아줌마로 마음씨 좋은 남편과 둥글둥글한 성격을 가진 아들 두엇에 깍쟁이 같은 딸 하나쯤은 거느리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여전히 진영이란 이름이 나에겐 낯설다. 개명한 이름을 부르려면 왠지 멋쩍다. “춘분아!” 하고 부르면 봄 냄새가 묻어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고 시원한 산속에서 찔레순과 시영 꺾어 먹던 생각이 나 입안에 침이 고인다. 요즘은 개명이 성형만큼이나 흔해졌다. 이름을 바꾸면 타고 난 인성도 바뀌는 것일까. 

 

알아보니 선서식을 할 때 다시 바꿀 수 있다며 남편은 태평하다. 그때 가서 하려면 절차가 복잡해지니까 당장 가서 정정하라고 닦달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류는 여기저기로 옮겨가며 복잡해 질 건 당연지사다. 두 어 시간밖에 안 지났으니 담당자를 찾아가서 사정하면 그쪽에서 하는 말이 있지 않겠냐고 일단 가보라고 했다. 안 가겠다고 버티다 결국 내 극성에 못 이겨 작은 아이에게 끌려갔다. 다행히 퇴근 5분 전이었고 담당자를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었다. 살다 보니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다. 정확하게 이해도 안 되는 영어로 된 서류에 사인하는 일은 더더구나 하기 싫은 일이다. 

 

오늘 오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금 전에 다녀간 손님이었다. 본인 이름이 Ozanus가 아니고 Nauslar라고 정정해줬다. 얼마 전부터 단골들 이름은 고사하고 아이들 이름도 자주 섞인다. 아니, 얼굴은 떠오르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살던 대로 생긴 대로 살다 가고 싶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값이나 제대로 하며 아름다운 계집으로 살다 가고 싶다.

 

밥을 푸다가

손안에 쏙 안기는 따뜻한 밥그릇에

소복이 밥을 담다가

그 애는 너무 넘친다고 하던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칭찬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돼

출렁이는 마음이 넘치기라도 할까 봐

큰 그릇이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 그릇의 모양은 무시로 흔들렸다

 

더러는 문양을 그려 넣으며

빈속을 채웠고

때로는 색을 지워가며

덜어내는 법을 읽혔다

 

진흙탕에 사금파리로 처박히기 전

이름값은 하리라고

오늘도

용광로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다

 

김미희, (그릇) 전문

 

김미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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