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어져만 가는 아메리칸 드림’
부모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믿음은 흔들리고, 열심히 일하면 한 계단씩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의 사다리도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본지가 전한 ‘멀어져만 가는 아메리칸 드림’ 기획기사는 그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 앞에서 한인 이민 선배들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이민 선배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이 땅에 왔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작은 가게와 세탁소, 식당을 운영하고 공장과 건설 현장에서 땀 흘렸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내 집 마련이었다.
큰 부자가 되겠다는 꿈보다 먼저, 가족이 안심하고 살아갈 집 한 채를 갖고 싶었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 부모가 땀 흘리면 자녀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우리 이민 선배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어쩌면 ‘우리 집’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한국 사람에게 ‘우리 집’이라는 말은 특별하다.
내가 돈을 내고 산 집도 ‘내 집’보다는 ‘우리 집’이라고 한다. 결혼한 사람도 부모가 사는 집을 여전히 ‘우리 집’이라 부르고, 아이들도 학교가 끝나면 “우리 집에 간다”고 말한다.
아마도 한국인에게 집은 소유하는 물건이기 전에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에는 사람이 있다.
아침마다 밥을 차리던 어머니가 있고, 늦은 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아버지가 있다. 형제들과 함께 지냈던 방이 있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식탁이 있다.
세월이 흘러 그 집이 사라져도 우리는 기억 속에서 여전히 그곳을 ‘우리 집’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집은 부동산이면서도 부동산만은 아니다.
낯선 땅에 옮겨 심은 작은 고향
미국으로 건너온 한인 이민자들에게 ‘우리 집’은 더욱 특별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언어도, 문화도, 음식도 달랐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온 곳이 집이었다.
문을 열면 한국말을 할 수 있었고 익숙한 음식 냄새가 났다. 밖에서는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지만, 집 안에서는 잠시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민자의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 옮겨 심은 작은 고향이었다.
처음 집을 샀을 때 그 집이 크지 않아도 괜찮았다. 매달 모기지를 갚고 주말마다 잔디를 깎아야 해도 좋았다.
현관문을 열고 “우리 집에 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집은 낯선 나라에서 시작한 삶이 마침내 뿌리를 내렸다는 증거였다.
평범했던 꿈이 어려워진 시대
그런데 이제 우리는 자녀들에게 같은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지 묻게 된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너도 언젠가는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많이 배웠고 더 전문적인 일을 한다. 그런데도 높은 집값과 모기지 부담 앞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는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꿈이 너무 커서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 세대 전에는 평범했던 꿈이 다음 세대에게 너무 큰 꿈이 되어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집을 소유하는 것만이 성공의 기준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집을 사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최근 미국 의회가 주택 공급 확대와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한 초당적 주택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주거 문제가 미국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음을 보여준다.
정치권의 논쟁은 복잡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열심히 일하면 아직도 내 집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자신만의 ‘우리 집’을 마련할 수 있는가.
다음 세대의 ‘우리 집’
우리 세대는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 살아왔다. 자신은 아끼면서도 자녀의 교육에는 모든 것을 쏟았다. 자신이 겪었던 고생만큼은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이 사회에 더 익숙한 자녀들이 오히려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는 단순한 경제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나보다 더 잘 살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문을 열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도 편안한 곳.
‘우리 집.’
한국 사람에게 이 짧은 말은 건물보다 크고, 재산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 이민 선배들이 땀 흘려 이루었던 이 평범하고 따뜻한 꿈을 다음 세대도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이 오늘, 멀어져가는 아메리칸 드림 앞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가장 절실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