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 투자에 기업 본사와 인구까지 몰려 … 북텍사스가 성장 이끈다

캘리포니아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텍사스에는 이제 ‘실리콘 스테이트’가 있다.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미국 대기업 본사가 잇따라 텍사스로 몰리면서 미국 경제의 중심축이 남부로 이동하고 있다.
텍사스는 이미 미국 최대 반도체 수출 지역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포춘 500대 기업 본사 수에서도 캘리포니아를 제치고 전국 1위에 올랐다. 여기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북텍사스가 전국 최고 수준의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산업과 기업, 사람이 함께 모이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 반도체 공장, 잇단 가동·증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지난해 말 셔먼에서 4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생산시설 가동을 시작했다.
엔비디아와 윈스트롬은 포트워스 북부에 반도체 관련 시설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이며, 일론 머스크도 그라임스카운티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단지 ‘테라팹’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텍사스에는 현재 반도체 생산공장과 소재 제조시설, 연구개발센터 등 모두 57개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관련 산업 종사자는 4만7000명을 넘어섰다.
텍사스A&M대 반도체연구소의 스티브 푸트나 소장은 “1998년 이 업계에 들어온 이후 지금과 같은 성장은 본 적이 없다”며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지원이 텍사스 반도체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텍사스가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미 구축된 제조 기반이 있다. 텍사스는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집적회로를 개발한 곳으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과 테일러 파운드리 시설, TI의 북텍사스 생산기지 등이 연결되면서 생산과 연구개발, 인력 양성을 아우르는 산업 생태계가 확대되고 있다.
◈ AI와 데이터센터가 반도체 수요 견인
텍사스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는 AI 산업과 데이터센터 확대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엔비디아 등의 신규 투자는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AI 서비스에 사용되는 서버에는 그래픽처리장치와 메모리, 전력관리 반도체 등 다양한 첨단 칩이 필요하다.
텍사스는 현재 데이터센터 수에서 전국 2위권에 올라 있으며, 신규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조만간 미국 최대 데이터센터 시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넓은 토지와 상대적으로 풍부한 에너지 공급,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인구 기반은 데이터센터 운영에 유리한 조건으로 평가된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늘어날수록 서버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도 증가해 텍사스 내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 투자를 다시 확대하는 구조다.
푸트나 소장은 “반도체 수요 곡선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일부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지나치게 높아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최종 수요가 워낙 강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 포춘 500대 기업 본사 수 전국 1위
반도체 생산시설만 텍사스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본사와 경영 조직도 텍사스로 속속 모이고 있다.
포춘이 발표한 2026년 ‘포춘 500대 기업’ 집계에서 텍사스는 기업 본사 57곳을 보유해 캘리포니아의 56곳을 한 곳 차이로 제치고 처음으로 단독 1위에 올랐다. 뉴욕은 53곳으로 3위를 기록했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57개 기업의 전년도 매출 합계는 2조800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캘리포니아 기업들의 매출 합계 2조7000억달러와 뉴욕의 2조2000억달러를 모두 웃도는 규모다.
지역별로는 달라스에는 AT&T와 CBRE 등을 포함한 11개 기업 본사가 있으며, 오스틴에는 테슬라와 오라클 등 기술기업 본사가 들어서 있다. 또한 휴스턴에 셰브런과 식자재 유통업체 시스코(Sysco) 등 25개 포춘 500대 기업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텍사스는 지난해에만 포춘 500대 기업 본사 3곳을 새로 유치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05년 이후 377개 기업이 다른 주로 본사를 이전했으며, 이 가운데 152곳이 텍사스를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 개인소득세가 없다는 점과 비교적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 넓은 토지와 물류 접근성, 꾸준히 늘어나는 노동력 등이 기업들이 텍사스를 선택하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 삼성 미주본사도 플레이노로
북텍사스 한인사회에서 특히 주목받는 기업 이전 사례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미주법인은 뉴저지주 잉글우드클리프스에 있던 본사를 텍사스 플레이노로 이전하기로 했다. 본사 이전은 오는 9월부터 부서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돼 연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뉴저지에서 근무하는 약 1000명의 인력 가운데 상당수에게 텍사스 이전 기회가 제공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반도체 공장과 테일러 파운드리 시설, 플레이노의 경영·판매 조직을 연결해 텍사스 내 사업 효율성과 협업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본사 이전은 단순한 사무실 이동을 넘어 오스틴과 테일러, 플레이노를 잇는 삼성의 ‘텍사스 반도체 벨트’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플레이노와 프리스코, 리처드슨을 비롯한 북텍사스 지역은 이미 통신·금융·부동산·항공·방위산업 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삼성전자 본사 이전까지 더해지면서 북텍사스의 기업 생태계와 전문인력 수요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 기업과 일자리 따라 인구도 유입
기업과 산업 투자가 확대되면서 텍사스로 향하는 인구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25년 텍사스 인구는 약 3170만명으로 집계됐다. 1년 동안 늘어난 주민은 39만1243명으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많았다.
텍사스는 일자리 기회와 상대적으로 넓은 주택시장, 주 개인소득세가 없는 세금 구조, 따뜻한 기후 등을 바탕으로 다른 주에서 이주해 오는 주민과 해외 이민자들을 꾸준히 끌어들이고 있다.
기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늘어난 인구는 다시 주택과 유통, 교육, 의료, 교통 수요를 확대한다. 커진 소비시장과 노동력은 다시 기업 투자를 불러들이며 텍사스 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텍사스의 인구 증가는 단순히 주민 수가 늘어나는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인력 확보 능력을 높이고 소비시장 규모를 확대해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 산업과 부동산 시장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성장의 진앙은 북텍사스
텍사스 안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는 지역은 달라스·포트워스 광역권이다.
2025년 기준 DFW 광역권 인구는 847만7157명으로, 2020년보다 약 11% 증가했다. 이는 미국 5대 대도시권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연간 증가 인구는 약 12만3557명으로, 하루 평균 약 339명이 북텍사스에 새로 정착한 셈이다. 현재 텍사스 주민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DFW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 DFW로 이동한 인구는 약 27만명으로, 전국 대도시권 가운데 가장 많았다.
성장세는 달라스와 포트워스 도심뿐 아니라 외곽 도시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포트워스 인구는 2020년 이후 11.9% 늘었으며, 콜린카운티와 덴턴카운티의 교외 지역에서는 대규모 주택 개발과 기업 이전이 이어지고 있다.
셀리나는 2020년과 비교해 인구가 276.8% 증가한 6만4427명을 기록하며 텍사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셔먼의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반도체 공장과 리처드슨의 웨이퍼 공장, 포트워스의 신규 반도체 시설, 플레이노의 삼성전자 미주본사 이전은 북텍사스가 텍사스 경제 성장의 핵심 지역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때 석유와 목축의 땅으로 인식됐던 텍사스는 이제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대기업 본사와 인구가 함께 모이는 미국 최대 성장 거점으로 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빠르게 확대되는 북텍사스 산업·도시권이 자리 잡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가 미국 기술 혁신의 상징이었다면, 앞으로의 텍사스는 생산과 연구, 기업 경영과 인구 성장을 모두 갖춘 ‘실리콘 스테이트’로 미국 경제지도를 다시 그려 나갈 전망이다.
유광진 기자 ⓒ K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