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박사 박우람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석사
미국 Johns Hopkins 대학 기계공학 박사
UT Dallas 기계공학과 교수
재미한인과학기술다 협회 북텍사스 지부장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중후반은 PC 통신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시기였다. 새로운 기술에 환호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사회적, 경제적 영향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낙관이 팽배했다. 지나친 기대는 닷컴 버블과 붕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인터넷 보급과 정보화 사회가 우리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실제로 산업과 경제는 훨씬 더 성장했다.
얼마 전 대학생들과 사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 주제는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쳐 인공 지능으로 옮겨갔다. 지금의 20대가 맞닥뜨린 현실은 30여 년 전 내가 겪었던 상황과 너무 달랐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기술을 맞이하는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은 지금이나 30년 전이나 매우 비슷하다.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은 인공지능이 있다. 장밋빛 전망이 우세하던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이 점령하기 시작한 산업계를 보면 우리가 가지는 두려움은 괜한 망상이 아닌 듯하다. 작년에 나온 스탠퍼드 대학의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지능 기술에 노출이 큰 직군에서는 초기 경력자의 최근 3년간의 고용 추이가 다른 집단에 비해 약 16% 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이 직군에 속하는데, 실제로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중간 경력의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예전에는 신입 개발자들과 팀을 이루어 일했지만, 이제는 신입 사원 대신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코딩 능력도 뛰어나고 비용도 현저하게 낮다. 기업들은 이 선택지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비슷한 성장통을 겪어왔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의 직업을 사라지게 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실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낸 새로운 직업과 산업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부와 기회를 더욱 확대해주었다.
인공지능의 출현은 조금 느낌이 다르다. 우선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어떤 직업군이 새로 만들어질지 아직 모호하다. 비록 새 직업들이 생긴다 하더라도 사라지거나 축소될 직업군의 양과 질을 넘어설 지도 의문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이 인공지능 시대를 관통해야 하는 우리의 임무가 될 것이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한걸음 물러서서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좋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을 짚어보자. 그곳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인공지능은 이른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그 속에 숨겨진 패턴을 찾아낸 뒤, 질문을 받으면 그 패턴대로 답을 해주는 방식의 인공지능이다. 언어 혹은 데이터로 만든 정보만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데이터로 만들어지지 않은 정보에 기반을 둔 지식 혹은 패턴은 인공지능의 영역 밖에 있다. 인간의 행위와 판단에는 규정하기 어려운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들도 많고, 그런 것이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물리적 상호작용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 시기에 대부분의 대학이 대면 강의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였다. 나도 매일 강의 비디오를 찍거나, 화상 회의 형식으로 실시간 강의를 하곤 했다. 온라인 수업도 나름의 장점은 있지만, 대면 강의를 따라가기 힘들다. 지식을 전달하는 측면만 본다면 두 방식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표정과 자세, 눈빛을 직접 보며 하는 강의는 온라인 수업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해했다는 뜻의 표정, 때로는 모르겠다는 의미의 멍한 눈빛, 뭔가 깨달았다는 감탄사까지 모두 강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재료다. 학생들의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순간적으로 나의 강의 방향을 바꾸고 더 생동감 넘치게 한다. 먼 미래에는 이런 것까지 데이터로 축적하여 인공지능이 모사할지도 모르겠으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료화하기 어려운 정보가 매우 순간적으로 오가는 이 과정에 인공지능이 끼어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교육 현장에서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발견하였다. 내가 몸담은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는 매년 초중고 학생을 위해 수학경시대회를 연다. 이곳 북텍사스 지역에서는 약 1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하지만, 성적 우수상을 받는 학생은 24명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학생들의 참여는 의미가 없는가.
수학경시대회를 학부모에게 소개하면 대부분의 첫 반응은 ‘우리 아이는 상 못 받을 텐데요’이다. 그런 분들께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상을 받으면 당연히 좋지만, 상보다 더 값진 것을 학생들이 얻어간다. 모든 학생이 집중하여 시험을 보는 분위기, 1등을 하겠노라고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의 눈빛, 상을 못 받는 실망감, 운 좋게 받은 상이 주는 기쁨 등, 인공지능은 제공할 수 없는, 물리적 상호작용의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큰 소득을 학생들이 받아간다.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행위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을 더욱 고귀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지적 사고와 판단을 인공지능이 대신해 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더욱 인간다울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다양한 지식을 머릿속에 담은 사람이 훌륭한 현대인이라는 틀 속에 살고 있다. 그 틀에 갇혀 인간다움을 잃기도 한다. 이성적 판단과 지적 활동을 인공지능이 도와준다면, 우리는 좀 더 서로 소통하고 다독거리며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